예술의 전당에서, 6월 27일(토요일) 오후 8시, 백건우와 드레스덴필의 연주회가 있었습니다. 곡목은 피델리오서곡과 베토벤 피아노협주곡 4번, 교향곡 7번이었습니다. 음악회는 메르스영향으로 한산할 줄 알았는데, 예상과는 다르게 객석이 거의 다 차는 성황을 이뤘습니다. 저는 피아니스트 백건우가 드레스덴필과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4번을 친다는 소식을 듣고, ‘이 음악회는 꼭 보고 싶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언제였던가, 예술의 전당에서 피아니스트 백건우가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을 세인트마틴 인 더 필드의 네빌마리너와 협연했던 것을 들었던 기억이 났기 때문입니다. 그 때가 이번 연주회 팜프렛에 1999년이라고 나와 있었습니다. 엊그제 같은데 벌써 15년 전이었던 것입니다.

사 진 : 피아니스트 백건우가 연주를 마치고 청중들께 인사하는 모습
그 때 음악회가 끝나고 밤 늦게 버스를 타고 집으로 내려오면서 묘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마치 큰집에서 선조님들에 대한 제사를 모시고 돌아오는 듯한, 경건하고, 마치 내가 꼭 참석해야할 자리에 다녀온 듯한 기분이 들었던 것입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음악은 집에서 오디오로 들으면 그만입니다. 더구나 요즈음은 DVD를 보면 화질이나 음질이 얼마나 좋습니까. 이번 음악회에도 꼭 그랬습니다. 소리를 듣기위해라서기보다도 직접 그 자리에 참석해서 어떤 공동체의 의식을 함께 치뤄야 겠다는 생각이 우선 앞섰습니다.

사 진 : 객석의 청중 모습. 영화 ‘스타워스’에서 제국의회 장면 같았음.
피아니스트 백건우는 나이가 꽤 들어 보였습니다. 머리칼은 약간 성글어졌지만 아직 검은 그대로였는대도 발걸음에서 세월의 흔적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음악이 시작되고 피아노 음이 한 알 한 알 영롱하게 튀어올랐습니다. 오케스트라는 덮었다 걷혔다하는 어둠일 뿐이었고, 또 이리저리 몰려다니는 바람일 뿐이었고, 피아노 소리만 도드라져서 선명하게 반짝거렸습니다. 어쩌면 피아노 소리가 그렇게도 맑고 투명한지, 비 온 뒤, 물 위에 뜬 기름처럼 선명하게 색색으로 무늬졌습니다.

사 진 : 지휘자 미하일 잔데를링 모습(팜프렛 사진)
지휘자는 시종 모범적이고 아카데믹한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팜프렛을 보니, 미하일 잔데를링의 아버지 쿠르트 잔데를링(1912 – 2011)도 지휘자이고, 아들 셋이 모두 지휘자인 음악가족 출신이었습니다. 연주회 후반부는 베토벤의 교향곡 7번이었습니다. 1악장은 반복되는 싱코페이션 리듬이 색다릅니다. 지휘자 부르노 발터가 ‘음악의 해석’에 관한 글에서 이 부분을 인용하며 장황하게 설명을 했었습니다. 2악장도 아주 유명합니다. 멀리에서 부터 눈밭을 걸어서 사랑하는 사람이 찾아오는 듯 합니다. 눈밭을 밟는 발자국 소리가 점점 가까이 들려옵니다. 그러다가 모든 것이 그 발자국 소리에 묻혀버리고 맙니다. ‘리듬의 향연’, 이곡을 두고 리하르트 바그너가 했다는 말입니다. 3악장 4악장은 몰아 붙입니다. 특히 4악장은 숨 돌릴 틈도 주지 않습니다. 여름날 비바람이 몰아치면 산에 나뭇잎들이 뒤집어 집니다. 잎 뒷면의 하얀부분이 드러나서, 산은 머리를 산발한 것처럼 여기저기 뿌연해집니다. 거칠고 정신없기는 베토벤 6번 전원교향곡의 폭풍장면은 ‘저리 가라’입니다. 우리들이나 베토벤이나 마음속에 어떤 울분이 있기는 마찬가지 같습니다. 원인이 구체적으로 무엇이라고 설명할 수 없는 울분을 우리는 무슨 방법으로든 털어내야 합니다. 그것을 어떻게 털어내시겠습니까. 이 4악장과 같은 미친듯한 음악이라도 들어야지요.

사 진 : LP 판 자켓 사진
집으로 돌아와서 찾아보니 지휘자의 아버지 쿠르트 잔데를링이 지휘한 LP음반이 있었습니다. 그가 냉전 이전의 동독에서 주로 활동해서 그랬던지 스비아토슬라브 리히터가 빈필과 협연한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3번을 녹음한 음반이었습니다.

사 진 : LP 판 자켓 사진

사 진 : LP 판 자켓 사진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3번 4번은, 5번 황제 못지 않게, 애호가들이 많습니다. 개인적으로는 3번과 4번이 짝을 이룬 아라우 판을 많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박하우스, 폴리니, 머라이 퍼라이어 등도 있고, 또 요즈음에는 화면과 함께 보는 바렌보임의 실황 DVD판을 자주 듣습니다.

사 진 : 서울대학교 수학과 김도한 교수님(왼편) 모습
이번 음악회는 영광스럽게도 대단한 음악애호가이신 서울대학교 김도한 교수님과 함께 동행을 했습니다. 교수님께서는 몇 천 장의 클라식 CD를 소장하고 계시고, 평소에 클라이넷을 즐기시는 분이십니다. 제가 어림으로 ‘악장의 바이올린이 스타이너인 것 처럼 보인다’고 말씀드렸더니, ‘바하의 유품 가운데 스타이너 바이올린이 3대 있었다고 하더라’ 하셨습니다. 어찌 그렇게 해박하시고, 그 동안 음악을 가까이하셨는지 짐작이 되어 깜짝 놀랐습니다. 함께 한 시간이 꿈과 같이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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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아니스트 백건우가 앵콜을 한 곡 쳤습니다. 귀에 익은데 곡명이 떠오르지 않았었습니다. 그런데 김도한 교수님께서 “앵콜곡은 포레의 무언가였다고 합니다.”라는 메세지를 보내오셨습니다.
** 피아니스트 백건우의 무대 매너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백건우는, 무대에 나타나자 환호하는 고국의 청중보다, 가장 먼저 악단과 악장에 대하여 정중하게 인사를 나눴습니다. 그러고나서 기다리고 있던 청중들에게 예의를 표했습니다. 그것은 연주가 끝나고 나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 베토벤 7번 교향곡을 연주할 때 약간의 얘기거리가 있었습니다. 2악장을 시작하고 조금 지나서의 일 입니다. 2악장의 첫 부분은 바이올린 파트의 연주가 없습니다. 콘트라베스가 그야말로 피아니시모로 “잔 잔짜 잔자… “만 한참을 반복합니다. 그때 제1바이올린 파트 맨뒤에서 두 번째 앉았던 한 여자 단원이 슬며시 일어서서 뒤로 빠져 나갔습니다. 가만히 보니 활에서 활털이 송두리채 빠져버렸습니다. ‘언제 다시 자리로 들어 올까’ ‘여분의 활은 있을까’ 궁금했습니다. 2악장을 연주하는 도중에 돌아오면 청중들이 음악을 감상하는데 심각한 영향을 끼쳤을 것입니다. 2악장은 극도로 감정의 기복이 크고 긴장감이 높은 악장이기 때문입니다. 그 바이올린 단원은 2악장이 끝나고 3악장이 시작되기 전 살짝 돌아와 자리에 앉았습니다. 2악장이 끝날 때까지 무대 뒤에서 얼마나 초조했겠습니까.
****팀파니 주자는 수시로 음정을 맞추느라고 애를 썼습니다. 악단이 한참 연주를 하는 중에도 귀를 바짝 들이대고 음정을 맞췄습니다. 팀파니는 북입니다. 북을 덮는 막이 가죽인데, 인조가죽보다 송아지 가죽이 음질이 좋답니다. 천연가죽은 습기에 약해서 장마철에는 음정이 불안정하답니다. 그렇습니다. 요즘 장마철이지 않습니까. 바이올린 줄감개, 페그가 눅눅해져서 여간 뻑뻑한 것이 아닙니다. 팀파니에도 음정이 있는데, 장마철에는 애로사항이 있겠구나하고 새삼 느꼈습니다.

오늘 낮에 KBS 1 TV 에서 백건우 – 드레스덴 필의 26일(금요일) 연주회 실황을 녹화 중계해준 모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