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 바이올린협주곡’, LP음반들입니다.

‘서양고전음악이란 무엇인가?’라고 가끔 스스로에게 물을 때가 있습니다. 인류가 문명을 일으켜서 기록으로 남기기 시작한지 수 천년의 역사 가운데 불과 300년도 못되는 짧은 기간 동안, 그 것도 제한된 지역에서, 고안되고 발전하여 잠시 꽃을 피웠던 음악의 한 형태가 그렇게 대단한 것인가라는 의문이 들기 때문입니다. 소위 서양 클래식음악이라는 것이 시대를 초월하여 오늘날에도 유효하고 중요한 것인지, 요즈음 세대들의 음악에 대한 취향에 비취어 볼 때, 매우 회의적인 생각이 들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사 진 1 : 오이스트라크-크뤼탕스-프랑스국립방송교향악단 녹음 복사판

바이올린이라는 악기와 음악에 대해서, 예를 들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바이올린이 처음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는 확실하게 알 수는 없지만, 1500년대 초반에 바이올린 비슷한 형태가 나타나기 시작해서 1600년이 되기 전에 이미 명기들이 나왔습니다. 음악의 화음에 대한 이론은 그리스 이전부터 알려진 바이지만, 음질이 맑고 음량도 큰 악기들이 등장한 것은 대충 1600년경이라고 보여집니다.

사 진 2 : 오이스트라크-크뤼탕스 프랑스 국립방송교향악단 녹음 복사판

1600년을 전후로 독일의 경우를 보겠습니다. 난시(Nancy)의 남쪽 보스게(Vosges) 산속에 미르쿠르(Mirecourt) 라는 작은 마을이 있답니다. 그곳에  최초의 조합 가운데 하나라는데, 바이올린 제작 조합이 생겼답니다. 처음에는 두 가문이 협업을 했는데, 각각 바이올린 만드는 장인들이 23명 25명씩 있었답니다. 그 뒤 미르쿠르(Mirecourt)가 가장 번성했을 때는 바이올린 만드는 장인만 830명이 넘었고, 인구의 5분의 4가, 즉 80%가, 악기제작에 관여했다고 합니다.  독일어를 쓰는 지역 가운데는 수데턴(Sudeten)과 보그트란트(Vogtland) 지역이 악기제작의 중심지였는데, 마르크노이키르헨(Markneukirchen)에만 939명, 쇤바하(Schonbach)에도 378명의 바이올린 제작자들이 있었답니다. 1800년대 초에 이르면 마르크노이키르헨(Markneukirchen)에 78개의 현악기가게와 26개의 활(bow)가게, 30개의 현(string)가게가 있었답니다. 크린겐탈(Klingenthal)지역에서만 평균 연간 최소 3만 6천대의 현악기가 제작되었답니다. 이것이 1800년대 내내 계속되었답니다. 이에 필요한 목재의 양도 어마어마했답니다.

사 진 3 : Walter Kolneder이 쓴 ‘The Amadeus Book of the Violin’ pp.26 부분

1896년 1월 1일부터 4월 8일까지 한칸에 10,000Kg(10톤)의 목재가 실린 화물차 81칸이 쇤바하로 운송되었습니다. 일년 동안에는, 무려 화물차 약 300칸 분량의 목재가 현악기제작을 위하여 매년 쇤바하에 공급되었습니다.  그렇게 엄청난 규모로 목재가 공급되다보니 악기 제작에 불리한 면도 있었습니다. 한번에 똑같은 재질의 나무가 소량만 제작자에게 공급되어서, 똑같은 나무로 악기의 특정 모델에 대한 개량을 위한 실험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보다 과거의 많은 악기제작자들은 다량의 목재를 비축해둬서 가능한한 오랜 시간 동안 똑같은 재질의 목재로 악기 개량 실험을 할 수가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그 보다 100년전인, 1700년대 말에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활동했던 ‘요하네스 쿠이퍼(Johannes Theodous  Cuypers d. 1808)는 그의 사후에 보니, 32년동안이나 더 제작할수 있는 양의 비축된 목재가 남아 있었습니다.    

사 진 4 : 오이스트라크-크뤼탕스-프랑스국립방송교향악단녹음 라이센스판

이야기가 장황했습니다만, 1900년대 초반까지 얼마나 사람들이 바이올린에 대하여, 즉 음악에 대하여, 열광했는가를 짐작해보기 위해 구체적인 예를 알아 본 것입니다. 오늘날은 어떻습니까.지금 왠만한 도시에 악기점이 몇군데나 있지요? 세상 정말 많이 달라지지 않았습니까?

사 진 5 : 캄포리 – 크립스- 런던 필 녹음 라이센스 판

우리가 음악을 듣고 싶은대로 골라서 들을 수 있게 된지는 불과 얼마 되지 않습니다. 인터넷이 보급되고, 최근에는 스마트폰의 기능이 놀랍도록 향상된 이후라고 생각이 됩니다. 옛날에는 좋아하는 음악 듣기가 어려웠습니다. 실황연주를 듣는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FM이 나오지 않았을 때는, AM의 음질도 음질이거니와, 라디오도 보급이 별로 안되었고, 고전음악프로 자체가 드물었습니다. 1970년대만해도 손바닥만한 소니라디오로 가정희망음악 정도를 듣는 것이 고작이었습니다.

사 진 6 : 펄만 – 줄리니 – 필하모니아 녹음  원판

우리나라 대중들에게 전축이 보급되기 시작할 때가 언제였습니까. 별표전축이라고 생각이 나십니까. 턴테이블의 수준도 수준이거니와 LP음반에서 음을 뽑는 바늘도 물론 구식이였습니다. 그 뒤에 여러 회사에서 외국과 기술제휴하거나 부품을 수입해서 전축들을 팔았습니다. 그 당시는 스피커가 크면 좋은 전축이라고 알고 있었던 때였습니다.

레코드 판도 복사판 뿐이었고, 원판은 미군부대에서나 흘러나오던 때입니다. 건전지로 작동하는 포터블-야외전축을 들고 다니면서 트위스트 추던 사람들이 지금 60대 중반쯤까지 될 것입니다. 음질은 별로 따지지 않았고, 저음만 쿵쿵 울리면 좋았습니다.

사 진 7 : 수크 – 콘비츠니 – 첵코 필 녹음 라이센스 판

그때 클래식음악 애호가들이 즐거찾던 음반을 몇 가지 소개하고자 합니다. 우선 떠오르는 것이 베토벤 바이올린협주곡입니다. 오이스트라크 – 크뤼탕스 판이 유행이었습니다. 몇 번이고 복사판이 찍어져 나왔는데, 나중에 원판이 나와서 들어봐도, 귀가 어떻게 되었는지, 그 찌걱거리는 복사판 음질이 더 친근감이 갔습니다.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의 라이센스판으로 캄포리 판이 청량감이 있습니다.

사 진 8 : 아돌프 부시 – 프리츠 부시 – 뉴욕필 녹음 라이센스 판

LP 레코드 판은 어떤 전축으로 어떤 턴테이블에 어떤 바늘로 듣느냐에 따라서 음질이 다릅니다. 바늘은 크게 보면 MM – 타입과 MC – 타입이 있습니다. MM은 무빙 마그넷트, MC는 무빙 코일의 준말입니다. 코일에 자석을 대면 전기가 발생합니다. 소위 ‘유도 전기’라는 것입니다. 전축바늘도 그 두 가지 방법 가운데 하나로 전기를 얻습니다. 코일을 감은 속에 작은 막대자석을 움직이는 방법이 MM이고, 둘레에 자석이 있는데 가운데 코일뭉치가 움직이는 것이 MC입니다. 구조적으로 MM이 유리한데 ‘슈어(Shure)’라는 회사가 특허를 갖고 있어서 다른 회사에서는 그 방법으로 만들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나온 것이 MC인데, 구조적으로 무거울 수 밖에 없었고, 가격이 비쌀 수 밖에 없었고, 바늘만 교체할 수도 없었습니다. 게다가 MC는 발생되는 전류의 양도 적어서, 전압을 높이는 앰프를 하나 추가로 달아야 했습니다. 그런데도 음질은 MM보다 좋았으니!  그래서 MC는 그 당시 음악 애호가들에게 일종의 비극적인 복음이었습니다.

사 진 9 : 마르스너 – 나이드링거 – 남서독필 녹음 라이센스 판

요즈음도 바늘값은 여전히 비쌉니다. 대부분 바늘이 제작 중지 되었고, 바늘 부분만 교체할 수 있는 슈어 제품은 공인된 복제품을 대용으로 쓰기도 합니다. 턴테이블도 구동되는 것이 드물고, 현재까지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린(Linn LP12) 등과 같은, 제품들은 매우 높은 가격으로 거래되고 있습니다. 방송용으로 쓰였다는 EMT라는 턴테이블은, 상태에 따라, 지금도 천만원이 훨씬 넘습니다.

사 진 10 : 하이펫츠 – 뮌시 – 보스톤 교향악단 녹음 복사판

사 진 11 : 야마시타(기타) – 유키노리 – 뉴저팬필 녹음 라이센스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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