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동규의 일대기, ‘배추가 돌아왔다.’

책갈피에 방동규 선생을 소개한 글부터 옮겨보겠습니다.

본명보다는 ‘배추’라는 별명으로 더 유명한 남자. 1935년 황해도 개성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각종 운동에서 두각을 보였으며 중고시절에는 뜻하지 않게 여러가지 사건을 겼으면서 ‘사라소니 이후 최고의 주먹’이라는 명성을 얻기도 했다. 1954년 체육특기생으로 홍익대 법학과에 입학했고 백기완, 구중서, 김태선 등과 함께 나무를 심고 계몽운동을 펼쳤다. 서른이 되던 해에는 파독 광부생활을 했고, 4년여 파리에서 유랑생활을 하기도 했다. 고국으로 돌아와서는 양장점 ‘살롱드방’을 운영했고 1973년에는 강원도 철원의 ‘노느메기밭’에서 공동생활의 꿈을 이뤘다. 그 와중에 뜻하지 않게 간첩혐의로 형무소생활을 하기도 했다. 1979년부터 2년 동안 중동 아랍에미리트에서 근무했고 1986년에는 <말>지 사건으로 구속됐다. 1991년 서해화성 CEO로 취임했고 1994년에는 중국공장 대표이사로 활동했다. 2001년에는 헬스클럽 강사로 깜짝 변신했고 현재(2006년)는 경복궁 관람안내 지도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이어서 책 내용 가운데 “아이쿠, 형님!”라는 제목의 글을 옮기겠습니다.

방동규

내 삶에서 백기완을 만난 것 자체가 사건이지만, 백기완은 또 다른 선물도 안겨줬다. 나는 이 선물을 평생 가슴에 품고 다닌다. 적잖이 강파르고 급한 성격의 나에게 풍류를 일깨워준 어른을 만나게 해준 것이다. 그 분이 다름 아닌 백기완의 부친 백홍열(1903 – 1984)선생이다. 백기완이 내게 부족한 그 무엇을 일깨워준 교사라면, 내 가슴을 키워준 사람은 바로 백홍열 선생이다. 백홍열 선생은 한마디로 조선 제일의 풍류객이었다고 할 수 있다. 선생은 젊었을 적부터 쳇바퀴 삶을 거부하고 살았다.살아생전에 선생은 이런 말을 자주 하곤 했다. “세상에 이름을 남긴다고? 원 세상에 잔망스럽기 짝이 없구만. 이름을 남기느니 차라리 내가 먹다 남은 밥상을 남기지…” 그는 세상의 명성이나 업적 혹은 이름 따위를 우습게 봤다. 세상살이 자체에 대한 미련 같은 것을 훌쩍 뛰어넘었던 것인데, 그런 데서 나오는 멋스러움과 여유 때문에 내 눈에는 신선이 따로 없는 것처럼 보였다. 모눈종이에 갇힌 지루한 삶을 박차버렸다는 점에서 때로는 무책임해 보일 수도 있지만, 무책임임하다고 해서 누구나 천하의 한량, 천하의 풍류객이 될 수 있는 건 아니지않는가. 기질과 그릇의 크기 자체가 중요한 것이다. ‘백홍열 타계’ 그 어른이 여든한 살을 일기로 돌아가셨을 때의 일이다. 그 날 전화로 소식을 들은 나는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허둥허둥 빈소를 찾았다.

고 백홍렬 선생(백기완 선생 부친)

김영삼, 김대중 등 정계 거물들까지 줄줄이 문상을 왔다, 문익환, 김지하 등 재야인사들도 인산인해를 이루었으나 그 누구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구두를 벗는 둥 마는 둥 빈소에 들어가 영전사진 앞에 엎드려 통곡을 했다. 생전에 때때로 ‘아버지’라고 부르던 그 어른의 마지막 길이 그렇게 허망하고 서러울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나도 모르게 헛소리가 튀어나와 버렸다.”어이쿠 형님, 이렇게 가시다니…”곁에서 함께 “아이고, 아이고!”하면서 곡소리를 하던 백기완이 대뜸 고개를 조금 든 채 눈을 부라리며 바짝 낮춘 목소리로 한 마디를 던졌다. 손님들로 가득찬 접객실 쪽에 제법 눈치가 보였던 모양이다. “야, 인마, 배추야!” “……” 순간적이지만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엄연히 문상객인데, 어느 녀석이 감히 네게 인마라고 할 수 있냐 싶었다. 그것도 점잖아야 할 상주 신분의 사람이…  내가 인상을 찌푸리자 백기완이 이제는 아예 대놓고 꾸짖기 시작했다. “배추야, 너 도대체 정신이 있냐, 없냐? 야, 이 자식아, 홍열이 형님이라니, 대체 그게 뭐야?” “어, 그래? 내가 그랬냐? 그런데 나 지금 그렇게 됐다. 정말 나도 모르게… 어이구, 우리 형님, 홍열이 형니임.” 그만 하면 내버려둬도 좋으련만 백기완은 그런 나를 꾸짖는다고 따져 묻고, 내 귀에는 아무 소리도 안 들리고… 그러는 와중에 이 엽기적인 ‘빈소 말씨름’ 때문에 저쪽 접객실은 난리가 났던 모양이다. 뒤에 알게 됐지만, 고인을 떠올리며 얘기를 나누던 문익환, 김지하 등 문상객들은 웃을 수도 없어 킬킬대는 웃음을 애써 참아가며 베꼽을 쥐었다고 한다. 나는 상주인 백기완을 올려다보면서 말했다. “그래도 나는 홍열이 형님이라고 계속 부를 거야! 나한테는 진짜로 형님이란 말야!” 이미 나는 눈물 콧물로 얼굴이 범벅이었다. 백기완이는 더는 뭐라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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