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올린, 빛깔처럼 음색이 매혹적입니다

바이올린은 그냥 보기에도 아름답습니다. 그 화려한 빛깔처럼 음색도 사람의 마음을 휘어잡는 매혹적이고 치명적인 바가 있습니다. 신화는 오래 된 이야기입니다. 그렇다고 오래 된 이야기가 모두 신화인 것은 아닙니다. 이야기가 어떻게 신화가 되는지, 역사와 신화가 어떻게 다른지, 바이올린 얘기를 듣다보면, 그런 궁금증이 생깁니다. 신들이 올림프스산에 살았다고 합니다. 그 올림프스산이 그리스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올림프스산에 정말 신들이 살았을까요? 지금 올림프스산을 찾아가보면 신들이 살았다는 무슨 흔적이라도 남았을까요. 바이올린에 대한 이야기도 그렇게 신비로운 이야기가 바야흐로 신화로 옮아가는 과정중에 있습니다. 바이올린은 누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왜 만들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바이올린의 제작에 대해서는 레오나르도 다빈치(1452 – 1519)의 이름이 등장하기도 합니다. 그 근거는  희박합니다. 바이올린의 형태가아직 미완성인 어느 싯점에 그 당시 최고의 천재인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아이디어를 보탰을 것이라고 추측하는 것입니다. 그 증거(?)로 “바이올린 앞면(배)에 뚫린 ‘에프’ 자 모양의 구멍(f-hole)”을 듭니다.  다빈치가 말년에 은혜를 입은 프랑수아 1세에 대한 보답으로 프랑수아 1세의 첫 글자 에프(f)를 새겼다는 것입니다. 바이올린의 구조가 단순하면서도 워낙 기능이 뛰어나기 때문에 다빈치 정도되는 천재를 생각해낸 것입니다.

사 진 1: 스트라디비리를 모델로 한 현대(20세기 초반) 이탈리아 바이올린

바이올린의 원형은 누가 만들었는지 모르지만, 완전한 형태의 악기는 이탈리아 크레모나의 안드레아 아마티(1505 – 1577)가 만들었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세상에 널리 알려진,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1644? – 1737)도 아마티 공방에서 일하다가 21세 쯤 독립하여 공방을 마련했습니다. 쥬세페 과르넬리(1698 – 1744)도 비슷한 시기에 크레모나에서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와 경쟁했습니다. 스트라디바리가 93세까지 장수한 것에 비하여 과르넬리는 46세에 요절한 천재였습니다. 스트라디바리는 안정된 가정을 이루고, 죽을 때까지 끝임없이 새로운 실험을 하고, 50세쯤부터 명기를 1400쯤 제작했는데, 지금까지 700여대가 남아 있다고 합니다. 과르네리우스는 다릅니다. 생활이 불안정하고, 목재도 무늬가 좋지 않은 경우도 있지만, 33세 이후에 제작한 몇 몇 악기는 스트라디바리 보다 힘이 더  있고, 더 좋은 소리가 난다고 합니다. 현재 200대도 채 못 남아있다고 합니다.

사 진 2: 사진 1의 앞면

동양적인 관점에서 보면, 무엇이고, 빛과 어둠의 명암이 있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모짜르트, 이백, 과르넬리우스, 스타인웨이 피아노, … ” 와  베토벤, 두보, 스트라디바리, 뵈젠도르퍼 피아노…”등으로 나누어 봅니다. 전자가 밝고, 타고난 천재들이라면, 후자는 어둡고, 노력형으로 보입니다.바이올린은 윗판은 가문비나무, 뒷판은 단풍나무로 만듭니다. 가문비나무는 침엽수로 목질이 연하고 부드럽습니다. 나이테가 고른 부분으로 악기를 만드는데, 대패로 깎아놓으면 누애고치 같이 표면이 하얗습니다. 단풍나무는 수령이 오래되면 위 아래로 뒤틀림(curl)이 생깁니다. 악기를 만들면 무늬(사진 3)가 나타납니다. 호랑이 무늬 같다고, ‘호피무늬(tiger grain)’이라고 부릅니다. 좋은 악기는 단풍나무 무늬가 대단히 아름답습니다.나무는, 12월부터 2월까지, 겨울철에 벱니다. 송진이 뿌리로 내려같갔을 때 베어야 악기를 만들었을 때 음색이 좋기 때문입니다.

사 진 3 : 사진 1의 뒷면

바이올린은 일반적으로 이탈리아에서 만들어졌다고하지만 유럽 다른 지역에서도 독자적으로 만들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이탈리아 피렌체의 메디치가는 고리대금업으로 많은 돈을 벌었습니다. 막대한 부를 이용하여 예술가들을 모았고, 많은 공예품을 사들였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쓰고 있는 ‘아트(art)’라는 말의 어원도 피렌체 수공업조합의 이니셜에서 따온 것이라고 합니다. 피렌체는 르네상스의 발상지가 되었고, 음악을 연주하기 위해 새로운 악기도 필요했습니다. 크레모나는 피렌체와 베네치아 사이에 있습니다. 베네치아는 지중해 아드리아 만 깊숙히 위치한 무역항입니다. 베네치아에는 배를 만들기 위해 유럽 각지에서 많은 양의 목재들이 들어왔습니다. 악기 제작자들이 베네치아에서 좋은 나무를 선별하여 구했답니다.

사 진 4: 바이올린 목(neck)의 비교 그림

바이올린의 모델은 크게 두 가지가 나눕니다. 배(앞판)가 불뚝 나왔느냐(사진 7),  평평하느냐(사진2)는 것입니다. 배가 나오면 음의 울림은 좋습니다만 소리가 멀리 뻗지를 못한답니다. 배가 평평하면 울림은 상대적으로 좋지않지만 소리가 멀리 뻗는다고 합니다. 아마티나 스트라디바리 등, 이탈리아의 악기 제작자들은 배가 평평한 바이올린을 만들었고, 이탈리아의 다른 제작자들도 거의 모두 그 모델를 본 떠서 바이올린을 제작했습니다. 유럽, 특히 보헤미아나 티롤지방에서는 거의 1800년대 초반까지, 스타이너 모델이라고 부르는, 배불뚝이 바이올린을 만들었습니다. 옛날 아마티나 스트라디바리의 바로크 시대 바이올린은 목이 짧았습니다(사진4 참고).

사 진 5: 사진 1의 머리와 목 부분

이미 1700년 경에 스트라디바리는, 바이올린을 크게 만들기도 하는 등, 소리가 큰 바이올린을 제작하려는 시도를 했답니다. 1750년까지 대부분의 바이올린들은 음악회에서 연주되는 음정도 낮았고, 에프-구멍( f-hole)도 작았으며, 현이 가늘고, 음색도 비교적 가벼웠습니다. 과르넬리 모델의 바이올린은 나무판이 두꺼워서 그렇게 소리내기가 어려웠다고 합니다. 그래서, 주로 프랑스에서, 소리가 가볍게 잘 나게 하기 위해서 바이올린의 앞 뒤 판을 얇게 깎았다고 합니다. 1800년 경에 수 많은 바이올린들이 거의 모두 그렇게, ‘프랑스식으로(all’ uso di Parigi: in the Paris manner)’ 개조가 이루어졌답니다. 그 시기에 특히 주목할 것은, 유럽의 대규모 음악홀들이 그 즈음에 건축되었다는 점입니다.  파리 스피리투엘(1925년), 라이프찌히 게반트 하우스(1781년), 파리 콩세르바뜨와(1828년) 들이 줄줄이 그 시기에 건축되었습니다. 음악홀이 커지니, 악기의 음량이 커져야 했고, 많은 청중들에게 소리가 잘 들리도록, 음악회에서 연주되는 음정도 높아지게 되었답니다. 그러기 위해서 바이올린의 구조를 바꿀 수 밖에 없었는데, 목을 길게하고, 브릿지를 높이고, 현의 장력을 세게 하면 음량도 커지고 음역도 넓어지기 때문입니다. 수 많은 악기들이 그래서 프랑스식으로 개조되어 옛 명기들이 오늘날까지 제 모습을 갖고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것입니다.

사 진 6: 바이올린 음정에 관한 내용

바이올린 현은 오랫동안 양의 힘줄을 사용했습니다. 줄을 만들기도 힘들었지만, 줄이 늘어나서 연주하는 중에도 음정이 변했고, 낮은 음(G선)은 아예 소리가 잘 나지 않았답니다. 코렐리(1653 – 1713)는 될 수 있으면 낮은 현(G선)을 사용하지 않도록  곡을 썼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오늘날 바이올린이나 피아노의 낮은 음을 내는 현은 철선에 다시 알미늄이나 구리선을 감았습니다. 가운데 든 철선이 높은 장력을 견디고, 알미늄이나 구리를 감아서 현의두께를 굵게 했습니다. 악기제작자들이 현을 그렇게  만들기까지는 수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습니다. 금속으로 된 현이 양의 힘줄로 된 현처럼 부드럽게 만들게 된 것은 극히 최근(1960년대 이후)의 일 입니다. 결과적으로 오늘날 철선을 쓰는 바이올린들은 엄청난 장력을받게 됐습니다.

사 진 7 : 독일 쇤바하 지역에서 1793년경에 만든 바이올린

악기 제작자들에게는 교향악단들이 연주할 때 음정이 차츰 높아지고 있는 점도 문제 입니다. 1988년에 바이올린 제작자들이 이탈리아의 크레모나에 모여서 살인적(?)으로 높아지고 있는 음정에 항의하는 모임을 갖었습니다. 피아노의 열쇠 구멍 근처에 있는, 라(A)의 음 높이를 진동수가 432 회/초( cycle/second)로 제한하자, 더 높이지 말자라고 제안을 했습니다.  ‘라(A)’음을 맞추는 ‘Y’자 모양의 포크가 있습니다. 헨델(1685 – 1759)은 A = 392  c/s  를 썼는데, 오늘날 A=440 c/s로 조율했을 경우, 바이올린의 가장 낮은 음인 솔(G)에 가깝습니다. 1788년경 프랑스에서는 A = 409 c/s 가 쓰였으며, 모짜르트의 음정이라고 불리는 것은 A = 421 c/s 입니다. 1850년 비엔나와 베를린에서는 이미 A = 442 c/s 으로 상승했고, 1858년  빠리 회합과  비엔나국제 회의에서 A = 435 c/s 으로 정하여 더 음정을 높이는 것을 제한하려고 했습니다. 1939년 런던에서 A = 440 c/s 로 올렸는데, 요즈음 교향악단에 따라서는 A = 450 c/s 으로 연주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사 진 8 : 사진 7의 앞면

옛 장인들이 만든 바이올린의 명기들은 현의 장력이 4Kg 정도를 견디도록 제작했답니다. 오늘날 철선을 낀 바이올린이 받는 장력은 14Kg쯤 된답니다. 바이올린을 연주하기 시작하면 장력은 더욱 증가하는데,  G선 : 6.25 Kg,   D선: 6.32 Kg,   A 선: 6.87 Kg,  E선 : 8.96 Kg,   합계 : 28.42 Kg 의 장력을 받는 답니다. 옛날 4kg의 장력만을 견디도록 만들어진 바이올린들이 현재 28Kg의 장력으로 짓이겨지고 있는 것입니다. 칼 프레쉬(1873 – 1944)는 바이올린 연주자들에게 연습용 악기를 따로 구입하도록 권유하고, 악기의 소리가 나빠지면 네 줄을 다 풀고 24시간 악기를 쉬도록 조언했습니다. 실제로 오래 된 바이올린 명기로 연주하다가 연주중에 악기가 파열하는 수도 있습니다.

사 진 9 : 사진 7의 뒷면

핀커스 주커만이 연주하다가 그랬다는데, 서울바로크앙상블을 이끄는 김민 교수님이 직접 보셨답니다. 청중 가운데 누가 주커만을 유태인이라고 야유를 하니까 주커만이 정색을 하고  그 청중에게 ‘나가라(Get Out!)’고 하더랍니다.  주커만의 감정이 격해져서 그랬는지, 연주중에 바이올린이, ‘팍’하고, 터지더랍니다.  바닥에 떨어진 바이올린 조각을 주어서 고치면 다시 쓸 수가 있을 텐데, 줍지도 않고, 다른 바이올린을 가져오더니 연주를 계속했다고 합니다. 아마 요즘 싯가로 최소 10억원은 넘는 악기로 추측됩니다. 하여튼, 많은 바이올린 제작자들이 이대로 가면 조만간에 명기라고 불리우는 바이올린들은 모두 망가질 것이고, 앞으로 바이올린의 구조 자체를 높은 장력을 견딜 수 있도록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사 진 10 : 사진 7의 머리( ‘grafted’라고, 두 부분을 이었습니다.)

바이올린은 30년 남짓 되면 아교의 접착력이 약화된다고 합니다.  수 많은 바이올린이 만들어지고, 또 그 만큼 악기를 수리하게 될 필요가 생기는 것입니다. 1896년 1월 1을부터 4월 8일까지 10톤 짜리 화물칸으로  81량의 목재가  쇤바하(Schonbach)에 있는 악기제작자들에게 공급 되었답니다. 매년 10톤 화물칸으로 300량이 쇤바하에서만 악기 제작에 쓰였다는 것입니다. 쇤바하에서만 바이올린이 연간 3만대 가량이 생산되었답니다. 마르크노이키르헨(Markneukirchen)에는 939명의 제작자가 있었고, 쇤바하에 378명, 그라스리츠(Graslitz),에 33명이 있었답니다. 1677년에 마르크노이키르헨에서 최초로 제작자 조합(guild)가 결성되었답니다. 1800년대 초반에도 어마어마한 양의 현악기들이 제작 되었답니다. 마르크노이키르헨에만 78개의 바이올린 제작자의 가게가 있었고, 26개의 활 제작자 가게, 30개의 현 제작자 가게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바이올린은 장인 혼자 만드는 경우는 거의 없고, 견습공(apprentice)와 견습을 마친 숙련공(journeymen)의 도움을 받았답니다. 나무를 대충 깎아 놓으면 장인이 정밀하게 손질하는 방식이었다고합니다.  1820년에는 이미 쇤바하에 바이올린의 각 부품을 만들어 파는 가게가 있었답니다. 장인들이 칠(varnishing)을 마치면, 윤내기(polishing)은 전적으로 여자들의 몫이였답니다. 산업혁명이후 1850년경 부터는 거의 모든 제작자들이 기계를 사용했답니다. 1862년에 마르크노이키르헨의 슈스터 주니어(Michael Schuster, Jr.)가 수력을 이용한 기계를 고안했는데 곧 이어서 전기를 이용하게 되었답니다.  그렇게 바이올린을 대량 제작하므로서 바이올린의 명기들은 명맥을 잃게 되었습니다. 우선 제작자들이 음향에 대해서 연구할 틈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음향을 개선하려면 똑 같은 나무로 시간을 두면서 여러 모델를 만들면서 실험을 해야하는데, 산더미 같이 나무를 쌓아 두고, 똑 같은 모델만 대량으로 제작하는 상황에서 옛 장인들이 만든 것과 같은 소위 ‘명기’가 만들어 질 수 없었다는 얘기입니다.

을하

This Post Has One Comment

  1. editor

     이 방대하고 상세한 지식은 바이올린에 대한 자상하고 친절한 안내이자 따뜻한 배려인듯 합니다.

    궁금한 대목의 갈증을 속시원하게 해소해주는  참으로 유익하고 꼼꼼한 해설에 감사드립니다.

    더불어 꼼꼼한 사진해설도 이해를 돕는데 아주 유용했습니다.

    섬세하고도 폭 넓은 내용의 기사는 마치 가족신문 독자들께 전하는 새해선물과도 같이 여겨집니다. 다시 한번 감사말씀 올립니다.  화산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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