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혈당(弓穴堂)’이라 써봤습니다.

‘향선정(香禪亭)’

옛날 사람들은 이름을 여러가지로 지었습니다. 각각 그 때마다 적당한 이름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사람에게는 본 이름인 ‘명(名)’이 있고, 어린 아이 때는  ‘아명(兒名)’을 지어 따로 부릅니다. 아이가 웬만큼 크면 ‘자(字)’를 짓습니다. ‘자(字)가 젊어서부터 나이들어서까지 허물없이 부를 수 있는 이름입니다. 점점 철이 들기 시작하면 집안 어른이나 선배 또는 스승이 ‘아호(雅號)’를 붙여 줍니다. 어떤 뜻이 담긴 호칭입니다. 고향 이름을 많이 끌어서 쓰는데, 지명에는 대개 좋은 뜻이 담겨 있고, 고향을 잊지 말고 이름을 빛내라는 의미도 자연스럽게 들어가게 됩니다. 아호가 없는 사람들도 ‘어디 출신이라는 소박한 뜻’으로 고향 이름을 쓸 수도 있을 것입니다

거실에서 바라본 풍경

저희 집 서재, 서재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고 거실의 다른 이름이지만, 이름은 ‘염화실’ 입니다. 부처님께서 영취산에서, 산봉오리가 독수리 부리같다고 이름붙은 산, 설법을 하실 때, 가섭존자가 연꽃을 들고 미소를 띠었다는 얘기에서 나오는 ‘염화시중’에서 뜻을 따온 것입니다. 저는 ‘책을 사람이 피운 연꽃’으로 보고, 책을 들고 읽다가 뜻을 깨닫고 미소짓는 것은 곧 ‘염화시중’의 미소 못지 않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오디오 시스템

‘아호(雅號)’가 여럿인 사람도 많습니다. 본인의 삶에 대한 생각이 깊어지기 시작하면 좋은 뜻을 지닌 말을 골라, 흥취를 내어, 호를 짓습니다. 글을 읽다가 좋아하는 멋있는 구절이 있으면 그때그때마다 잠시 부르는 명칭을 정할 수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아호(雅號)’ 짓기를 꺼려합니다. ‘내가 뭐 예술가도 아닌데, 과분하게 무슨 ‘아호(雅號)’까지 만들기는 계면 적다.’는 생각에서 그러는 것 같습니다. 그럴 일이 아닙니다. 나이들어서, 친구끼리도 그렇지만, 누가 이름을 함부로 부르면 듣기가 부담스럽습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아호(雅號)’인데, 점잖은 별명입니다.

‘염화실’  전북대학에 계셨던  유재식 교수님 글씨

제가 음악을 꽤 좋아합니다. 마음같아서는 음악감상실을, 즉 ‘음악홀’을,  멋있게 짓고 싶지만 언감생심 어림도 없는 일이고, 그래서 기분내느라고, 이번에도 비어있는 한 쪽 벽 위에다, ‘궁혈당(弓穴堂)’이라고, 당호만을 써 붙였습니다. 무슨 뜻이냐고요? 음, 그거 설명이 쉽지 않습니다. 제가, 한국가곡도 좋아하지만, 주로 서양 고전 음악을 듣습니다.  그것도 요즈음은 바로크 시대의 류트음악을 즐기고 있습니다. 서양음악은 활로 현을 긋거나 구멍뚫인 관을 입으로 불어서 소리를 냅니다. ‘궁혈당(弓穴堂)’은, 영어로 직역하면 Bow & cave Hall’인데, 의역하면 ‘Music Hall for String & Wind  instruments’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동양에서 관악기를 구멍이 뚫려있다고 해서 ‘유혈악기(有穴樂器)’라고 합니다. 즉 ‘Bow는 현악기, Cave는 관악기’를 뜻합니다.

을하

This Post Has 2 Comments

  1. editor

     현(絃)과 관(管)의 하모니가 흐르는 집이군요.

    음악을 듣기도 하고, 직접 켜거나 건반을 누르기도 하고…

    참으로 분위기가 따스하고 감미로울 듯 싶습니다.

    그곳이 바로 무릉이 아닐는지요.   <화산> 

  2. 박천배

    저도 음악을 좋아하고 (지금도 듣는 중), 콧노래로도 가끔 흥얼거리지만, 을하님을 따라가기는 너무 뒤쳐진 듯 합니다.  집에서는 거의 음악을 못 듣거든요.

답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