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전 박한영 대종사의 일생록이 나왔습니다.

석전 박한영 대종사 일생록이 출간되었다는 기사를 신문에서 봤습니다. 공동 저자 가운데 한 분이 군산에 있는 동국사 주지 종걸 스님이라는 것을 알고 동국사로 직접 스님을 찾아 갔습니다. 첫 날은 시간이 없어서 책만 받고 왔다가, 책을 읽고 난 다음, 그 다음 주에 다시 스님을 찾아뵈었습니다. 책은 판형이 크고 내용도 870 쪽이 넘는 방대한 규모였습니다. 종걸 스님께서 10여년간 자료를 수집했다가, 이미 상당한 자료를 가지고 계신 우곡 혜봉 스님을 만나, 의기가 투합, 공동 저자의 형태로 다시 5년간의 집필끝에 완성을 본 정성과 노력이 많이들어간 책이였습니다. 아마 현 싯점에서 모을 수 있는 자료는 거의 다 모아서 수록한 것으로 보

책의 체제는 일생록이라고하지만, 소설처럼 스토리를 꾸미지는 안 했습니다. 연대순으로 자료를 정리하여 약간의 설명과 함께 차례로 정리만했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내용이 매우 객관적으로 기술되었고, 저자 개인의 의견이 거의 반영을 의도적으로 안시켰다는 점이 대단히 높게 평가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자료를 바탕으로 석전과 동시대를 살던 분들의 육성을 통해서 내용들을 보완하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아쉬움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이미 불가능 일, 세월이 너무 많이 흘렀다는 것을 인정하지 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석전 박한영 대종사 일생록 출판기록

일생록을 읽고나니 석전이 우리 가까이 계셨다가 가셨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습니다. 우선 고향이 삼례 하리라는 곳이였습니다. 하리는 전주 송천동에서 삼례쪽으로 가다보면 있는, 만경강변 마을입니다. 선사께서는 어릴 때 고향마을에서 한문을 공부하셨답니다. 경허 스님이나 방한암스님 탄허 스님 같은 고승들은 모두 어릴 때 고향 마을에서 한학을 꽤 많이 했던 분들입니다. 스님들 뿐만이 아닙니다. 양주동 같은 여러 학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대개 12세 또는 15세까지 한문 공부를 하다가 신학문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석전 박한영 선사에 대해서는 미당 서정주 시인의 글과 시를 통해서 알려졌습니다. 미당의 글 가운데는 석전이 자기를 여러가지로 챙겨줬다는 얘기가 대부분이고, 선사의 면모에 대해서는 언급이 별로 없습니다. 선사가 말년에 백양사에 계셨는데, 그때 미당이 부부 동반으로 백양사에서 선사를 만났다고 합니다. 저 때는 선사께서 백내장 수술이 잘못돼서 한 쪽 눈을 실명한 이후였습니다. 미당은 그 당시 선사를 뵈었던 정황도 상당히 매몰차게 표현한 것으로 기억이 됩니다. 선사의 일생록을 보면 미당에 대해서 많은 기대도 하지 안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시나 좀 쓰겠다.”고 봤던 것 같습니다.

군산 동국사 주지 종걸 스님

동국사 주지 종걸스님께서는 전북대학교를 나오시고 원광대학교 교육대학원을 졸업하시고, 승가대 신문사 편집장도 역임하시는 등, 스님으로서의 활동뿐만이 아니라, 저술과 사회 활동도 활발히 하시는 분입니다. 공동 저자인 우곡혜봉 스님도 안동교육대학교를 나오시고 교직에 계셨답니다.  종걸 스님은 우리나라 근현대의 자료를 많이 소장하고 계신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제가 찾아 뵌 날도 군산대학교 박물관에서 학생들과 연구원들이 나와서 소장 자료를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군산 동국사 전경

소녀상 기념상과 범종각

군산에 있는 동국사는 일본 스님들의 사찰이었다고 합니다. 경내에는 문화재 해설사가 배치되어 있었고, 위안부로 강제 동원된 할머님들에 대한 기념인 듯한 소녀상 기념물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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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Post Has One Comment

  1. 박천배

    삼례 하리는 종종 지나다니는 곳이고, 그 근방에서 정착하면 어떨까 생각하고 둘러 보기도 한 곳인데, 그런 훌륭하신 분이 이곳 출신이라는 것이 신기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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