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에 모임이 있어서 간 길에, 옛 기억을 더듬으며, 마곡사에도 들렸습니다. 마곡사는 근대 조선 탱화의 발상지로 유명합니다. 얼마전 범어사에 계시던 ‘석정(石鼎)’도 마곡사에 계셨던 탱화 그리시는 스님, 불모(佛母), 3세손 되는 제자라고 합니다. 김제 부용에 은사가 계셨습니다. 몇 년 전 국립 공주박물관에서 마곡사 탱화에 대한 기획전시를 했고 도록도 만들었습니다.

대웅보전은 가람의 맨 윗쪽에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고색창연한 모습이 아름다웠습니다.

대웅전의 바로 아래 대광보전이 있습니다. 역시 고색창연했습니다.

대광보전 앞에 석탑이 있는데, 고려시대 양식이었습니다. 탑 장식이 특이했습니다. 안내문을 읽어보니 라마교의 영향을 받았다고 합니다.


대웅보전 현판 글씨는 표옹 강세황(1713 – 1791)이 썼습니다. 강세황은 어린 때부터 피부에, 표범처럼, 얼룩이 있었다고 합니다. 호를 표범 ‘표(豹)’자를 넣은 까닭입니다. 표암은 ‘시 – 서 – 화’에 능한 3절로 불립니다. 어느 글을 읽으니 표암과 안평대군에 얽힌 재미있는 일화가 있었습니다. 안평대군이 호걸이어서 많은 사람들을 끌고 다녔습니다. 몽유도원도를 그린 겸재 안견도 그 중 한 사람입니다. 몽유도원도 끝에 여러 선비들이 몽유도원도를 감상한 글을 붙였습니다. 몽유도원도에는 사람이 한 명도 없습니다. 어찌됐던, 성삼문을 비롯해서 거기에 글을 붙인 대부분의 사람들이 세조에게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러기 전에 표암 강세황은 안평대군의 집에서 먹을 훔쳤다가 미움을 받아서 멀리하게 되었습니다. 먹을 훔친 것 자체가 의도적인 행위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백범 김구 선생이 마곡사 심검당에서 피신해 계셨을 때가 있었습니다. 예사날 심검당 사진과 함께 백범 선생의 기념사진도 있었습니다.

옛날 백범 선생이 머물던 심검당 사진입니다. ‘심검(尋劍)’은 번뇌를 끊는 칼을 찾는다는 뜻입니다. 불교에서 깨닫는다는 것 자체가 번뇌를 끊는다는 뜻이니까 심검당은 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건물이름입니다. 마곡사 경내에서 스쳐 보았던 모습들을 담은 스냅사진을 몇 장 올립니다.


상사화는 8월 중순 장마가 시작되면 피기 시작합니다. 마곡사 경내에 노랑 상사화가 피어 눈길을 끌었습니다.

을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