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여군 임천면 가림삼성을 다시 갔습니다. 추가로 글과 사진을 올리고, 성흥산성을 백제시대 때 명칭인 가림산성으로 고쳤습니다. < 편집자>
백제의 역사가 숨쉬고 있는 부여군 임천면 가림산성을 찾아 갔습니다. 산성안에는 대조사(大鳥寺)라는 절이 있었습니다. 관음보살이 새로 현신하여 날아와 앉은 곳에 터를 잡아서 붙인 이름이라고 합니다.

사 진 1 : 대조사 원통전과 3층 석탑

사 진 2 : 대조사 산신각
절 마당 원통전 앞에는 신라시대 양식의 석탑이 있었습니다. 석탑의 지붕만 있었는데 절 근처에서 탑신을 발견하여 온전한 형태로 맞춰놓은 것이라고 합니다. 탑의 상륜부 장식은 그 당시 양식에 따라서 최근에 만든 것으로 보였습니다.

사 진 3 : 미륵불
절 뒷쪽 산비탈에 규모가 대단히 큰 미륵불이 있습니다. 그 자리에 있는 자연석 깎아서 불상의 몸체를 만든 후, 목 윗부분은 다른 돌로 조각하여 올려 놓은 형태였습니다. 안내문을 읽어보니 불상의 가치를 다소 과소 평가한 것 같았습니다. 어떻든, 은진미륵을 비롯하여 지금의 충남지방에 미륵불을 모시는 현상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겠지만, 은진미륵보다 더 상호가 원만하고, 미적인 가치가 더 훌륭한 것 같았습니다. 부여와 가까운 지리적인 여건이 보다 국가적인 역량이 투입됐었지 안했겠나 하고 추측이 됩니다.

사 진 4: 미륵불 2

사 진 5 : 미륵불 3
가림산성으로 올라가는 길은 완만했습니다. 정상 부근은 암반으로, 천연적인 요새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돌로 쌓은 성의 둘레는 1350 m 이고 높이는 4m 랍니다. 백제가 부여로 도읍을 옮기기 전인 501년에 쌓았다고 합니다. 그 당시의 성이름은 가림성이라고 합니다.

사 진 6 : 가림산성 올라가는 길
삼국사기 백제본기의 24대 동성왕 23년(서기 501년) 부분에 “8월에 가림성을 쌓고, 위사좌평 백가로 하여금 이를 지키게 하였다”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이로써 백제시대에 쌓은 성곽 가운데 축성년대와 당시 명칭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뿐인 예로써 대단히 귀중한 가치가 있다고 합니다.

사 진 7 : 느티나무 1
전해내려오는 얘기가 있습니다. 당시 사좌평은 높은 관직이었는데, 산성을 지키도록하는 명을 받은 백가는 매우 못 마땅하게 여겼답니다. 이에 병이 났다고 핑게를 대고 사직을 했음에도 왕이 허락하지 않자 원망을 품게 되었답니다. 그러던 중, 동성왕이 사냥을 좋아하여 그해 11월(음력) 사비서원(부여)에서 사냥을 했는데 갑자기 큰 눈이 내렸답니다. 눈 때문에 길이 막혀 어쩔 수 없이 마포촌이라는 곳에서 머물게 되었답니다. 이 때를 틈 타서 백가가 자객을 보내 동성왕을 시해했다고 합니다. 동성왕을 이어 25대 무령왕이 즉위하지마자 반란군을 진압하고 백가는 참형되어 백마강에 버려졌답니다. 백가라는 명칭도 이상하게 느껴집니다. 혹시 다른 이름이 있었는데 참형을 당한 역적이라 이름을 없애고 백가라고 부르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사 진 8: 느티나무 2
가림산성 안에는 우물이 몇 군데 있었고, 성문은 세 군데가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우물 가운데 한 군데는 지금도 맑은 물이 고여 식수로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특히 산성안에 우람한 느티나무가 한 그루 있는데 장관이었습니다.

사 진 9 : 느티나무 3
산성의 높이는 높지 않아도 금강의 하구가 멀리까지 한 눈에 들어와 군사적인 요충지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런 까닭으로 1700년대까지 군사적으로 활용됐었다고 합니다.

사 진 10 : 느티나무 4
산성의 바로 아래는 부여군 임천면 소재지입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주민센터 등 관공서가 오밀조밀하게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사 진 11 : 산성에서 동쪽을 본 풍경

사 진 12 : 산성 우물 근처에서 잠시 쉬고 있는 모습

사 진 13 : 산성에서 임천면 소재지를 내려다 본 풍경
임천 가림산성 갔을 때 알아 둘만한 음식점이 있습니다. 소재지에 ‘임천식당’있는데, 백반이 좋았습니다. 김치찌게에 고사리나물, 열무김치, 비름나물, 명태채초무침, 꽈리고추볶음, 뽕잎장아치 등이 반찬인데, 6천원 받았습니다. 김치찌개을 중심으로, 불교에서 말하는 6도환생 처럼, 빙 둘러 6가지 반찬들을 쟁반채 차려 놓았는데, 보기가 좋습니다. 그 식당 때문에 일부러 가실 일은 아니겠지만, 가림산성 가시는 길이면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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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다시 갔군요.
다시 보니 현장이 다시 살아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