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이 벌써 나왔어요?”
“그럼! 필요하면 줄게 가져가요.”
“글씨가 아주 큰 것이잖아요?”
“왜? 글씨가 클수록 좋지 않아?”
집으로 돌아오다 동네 어르신을 태워드렸더니 하시는 말씀입니다. 여사님은, 농협 대의원도 하셨고, 지업사에 도배일도 나가셨는데, 지금은 모두 그만 두시고, 병원에 자주 다니십니다. 제가 집에 배추를 절여놓았는데 ‘간이 짠지 싱거운지 걱정’이라고 했더니, 직접 저의 집까지 오셔서 간을 봐 주셨습니다. 배추속이 살아있는 것을 보니 ‘아주 짠 것은 아니다’라고 하셨습니다. 김장 배추를 절여놓고 너무 늦게 씻어서 짤까 걱정을 했는데 다행이었습니다.
여사님이 다녀가신 다음에 보니 말씀하셨던 달력을 놓고 가셨습니다. 펼쳐보니 아니나 다를까 글자가 큼직큼직한 사무실용 농약사 달력이었습니다. 여사님께 말씀은 못 드렸지만 저는 그런 달력은 대단히 촌스럽다고 여기고 있었습니다. ‘글자가 클수록 좋다’라니, ‘뭐, 내가 벌써 그런 할아버지가 됐단 말인가?’하는 어패감정이 있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시집간 딸아이가 아들을 낳았고, 30년 가까이 이 동네에 살고 있으니, 영락없는 ‘시골 할아버지’인데, 그것이 싫다는 얘기 아닙니까. 첫 번째 얻은 달력이라 거실에 걸어보니 당장 시골 농부의 집 같은 분위기가 났습니다. 글씨가 굵고 큼직하니, 아닌 게 아니라, 참 잘 보였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어릴 때 고향 모습이 자주 떠오릅니다. 고향 동네는 어두웠습니다. 겨울이면 더 어둡고 침침했던 사랑방 정경이 기억됩니다. 일꾼들이 새끼를 꼬고, 한 쪽에서는 목침에 ‘쓰럭초’라고, 잎담배를 썰었습니다. 짚 냄새, 담배 냄새, 인 냄새가 새끼 꼬는 지푸라기에 뿌옇게 날렸습니다. ‘인 냄새’는, 요즘 집사람이 저한테서 노인 냄새가 났다고 성화인데, 그 ‘홀아비 냄새’가 아닌가 싶습니다. 고향집 사랑방 땟국 묻은 벽에도 한 장짜리 달력이 붙어 있었습니다. ‘국회의원 달력’이었습니다. 월별로 날자 넣으랴, 절기 넣으랴, 국회의원 사진 넣으랴, 알 수 없는 글자가 깨알 같이 박혔었습니다.
부잣집에 가야, 한약방에서 나온, 하루에 한 장씩 뜯는 책자 같은 달력이 있었습니다. 일력을 찢은 얇은 미농지는 담배 종이로 그만입니다. 미농지는 찢기는 결이 있습니다. 더러는 면이나 학교에서 나온 미농지로 담배종이를 했습니다. 두루마리로 말아서 조금씩 찢어서 담배를 말았습니다. 1970년대에 대학들이 많이 생겼습니다. 대학마다 반듯한 건물 모습들을 담아 달력을 만들었습니다. 그 중에는 주제를 정해서 ‘고지도’나 우리나라의 문화재 등을 소개한 품위 있는 달력도 있습니다. 명화가 곁들여진 달력은 예나 지금이나 귀한 대접을 받습니다. 명화가 그려진 달력은 어디에 걸어둬도 고급스런 분위기를 연출합니다.
바다낚시를 좋아하면 수협에서 나온 달력이 좋습니다. 음력은 물론이고, 물때가 나오기 때문입니다. 정초에 어느 사찰에 가더라도 달력을 얻을 수 있습니다. 지난해는 순천 선암사에 갔을 때 종무소에 들려 달력을 몇 부 얻었습니다. 스님께서는 몇 부나 어디에 쓰려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제 방에도 걸고 단골 막걸리 집에도 줘야겠다고 했더니, 막걸리 집에 걸면 부처님께서 뭐라고 하시겠냐고 물으셨습니다. “웃으시겠지요. 뭐라고 하시겠습니까.”했더니, 스님께서도 웃으시고 말았습니다. 연하장이 어디 따로 있겠습니까. 그렇게라도 얻은 달력이나마 가까운 사람들에게 나눠 주면 어떻든 연초 새해인사는 되는 셈입니다.
‘당나귀 해’라는 말이 있습니다. 영원히 돌아오지 않는 무엇을 뜻합니다. 12간지에 당나귀 해란 아예 없으니까요. 중국의 신찬이라는 스님이 방안에 벌이 들어왔다가 나갈 구멍을 못 찾고 창호지만 들이 받는 것을 보고 한 말입니다. “세계가 저렇게 넓은데, 나가지 못하고, 창호지만 두드리니, 나귀의 해에나 나가려나.(世界如許廣闊不肯出 佔他故紙驢年去)”고 했답니다. 말이 창호지이지 그것은 불경이요 지식입니다. 공부를 많이 하고, 이론에 밝으면 무엇 합니까. 책만 읽고 깨달음을 얻지 못하면, 종이(故紙)를 들이 받는 벌과 같습니다. ‘당나귀 해, 여년(驢年)는, 어릴 때 쓰던 말로, “깨구락지(개구리) 수염 날 때”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내년은 정유년입니다. ‘닭띠 해’라지요? 정유재란은 임진왜란보다도 더 지독했다고 합니다. 임진왜란은 조선을 거쳐 명나라를 치러간다는 구실로 일으켰다면, 정유재란은 조선을 초토화하기 위해서 쳐들어온 전쟁이었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풍신수길이 죽고, 이순신 장군께서 노량해전(1598년)에서 왜군을 섬멸하여 전쟁이 끝났습니다. 그 후 일본은 2차 세계대전을 일으켜 또 패망을 했습니다. 요즘 일본의 정치지도자들이 국민을 선동하며, 또 다시 전쟁을 하겠다니, 정말로 불쌍한 민족입니다. 일본의 정치지도자들에게 평화란 끝까지 기대 난망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우리 정치지도자들도 정신을 차려야 할 텐데, 그 때가 언제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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