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문턱에 들어섰습니다. 때 이른 추위에 벌써 몸과 마음이 움츠러듭니다. 어느 세월인들 어수선하고 두서가 없었던 때가 있었나 싶지만, 지난 한 해 동안에도 세상 돌아가는 양상이 심상치가 못했습니다. 거의 실시간으로 알려지는 나라 안팎의 소식이 누가 옳고 잘못됐는지 분간할 수 없는 일들이 많았습니다. 누구의 말을 듣고 믿어야 할지, 옳고 그른 가르마를 타야 할 언론이 중구난방 얘기가 다르니,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국지적인 분란은 끊이지 않았더라도 그렇게라도 평화로운 시절이 끝난 것이 아닌가, 무차별적인 전란의 시대에 들어선 것은 아닌가, 불안해집니다. 언제들 세상 사람들이 모두 전쟁을 좋아해서 일어났던 것은 아녔습니다. 위정자들의 오판과 터무니없는 야욕으로 빚어진 경우가 대부분 많았었지 않습니까. 팔레스타인-이스라엘 전쟁만 보더라도 얼마나 많은 가자지구 민간인들이 희생되고 있습니까.
사람을 만물의 영장이라고 합니다. 세상의 어떤 생명체보다도 신성하고 존귀한 존재라는 뜻 아닙니까. 현생인류는 거의 수 만 년 진화과정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고 하늘이 움직이는 줄만 알았다가, 태양을 중심으로, 지구가 움직인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 불과 400여 년 전입니다. 그런 태양도 은하계의 중심을 회전하고 있고, 우주에는 무수히 많은 은하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불과 1920년대 이후의 일입니다. 허블이나 제임스웹 망원경으로 찍은 수많은 은하의 사진을 혹시 보셨을 때 어떠한 생각이 드셨습니까. 저는 하나의 별에 불과하다고 알았는데, 그것이 거대한 은하였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사진은 엄청난 충격이었습니다. 광막한 우주에서 인류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새삼스러웠습니다. 그 인류끼리 서로 증오하고 핍박하고 살육하는 현실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민중들이 얼마나 안락하게 지내느냐가 그 시대 그 나라의 중요한 척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어느 정치체제에서든 국민이 내는 세금과 맡겨준 권력으로 위정자들이 호의호식하며 별것도 아닌 알량한 지식으로 국민을 짓밟고 깔보려 하는 것은 절대 있어서는 안 되는 야만입니다. 생명체가 생존의 위협을 느끼고 벼랑 끝에 몰려 고통스러워하는 일은 슬픈 일입니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류 가운데 굶주리고 생명의 위협에서 벗어날 수 없는 상황에 있다면 우리 인류 모두 책임으로 느껴야 할 것입니다. 사고무친, 둘러봐도 하소연을 할 데가 없이 억울한 일을 당하는 사람이 없어야 합니다. 사람이 만든 법과 제도에 갇혀 만물의 영장으로서의 품위까지 잃는 상황까지 이르지 않도록 안전망이 갖춰져야 할 것입니다. 민중들에게 무언가 원한이 쌓였다면 어떻게 하면 풀어 줄까, 해원굿이라도 해야 할까, 심각하게 고민해야만 될 것입니다.
민담과 설화에는 권선징악과 함께 민중들의 애환이 담겼습니다. 어느 나라가 됐든, 기댈 곳이 없는 민중들은 민담이나 설화로부터 위로를 느끼고 희로애락을 함께 했습니다. 우리나라도 1950년대의 문맹퇴치운동으로 한글이 보급된 이후, 소위 딱지본을 비롯하여, 얘기책이 널리 유통되기 시작했습니다. 6-25 전란으로 피폐해진 살림살이에도 불구하고 밤이면 등잔불 아래 부녀자들이 모여서 얘기책을 읽는 시절이 있었습니다. 집집마다 전쟁으로 인한 상처가 없는 집이 얼마나 됐겠습니까만, 지금 생각하면, 그렇게라도 가슴속에 맺힌 원한과 응어리를 풀지 않았었나 싶습니다. 춘향전은 우리 고장 남원에서 있었다는 얘기로 비교적 가깝게 느껴졌던 점에 비해, 심청전은 장산곶이랄지 인당수 용궁 등, 어디 오래된 먼 나라의 얘기 같았습니다. 젊었을 때는 춘향전이 좋았었다면, 나이가 들고부터는 문득 심청전이 더 생각이 나곤 합니다.
제가 군산대학교에 재직하면서 초청 강연으로 모시는 등, 고 은(1933 – . 군산) 시인을 몇 차례 뵌 적이 있습니다. 그 인연으로 가끔 안부도 여쭙고, 전주에 다른 일로 오시더라도 뵙고 몇 차례 자리를 마련하기도 했습니다. 지난 6월에 9순 모임도 있었다는 말씀도 들었습니다. 엊그제 선생님이 장편 서사 시집 ‘청’을 내셨다는 소식을 듣고, ‘아직도 시를 쓰시나?’ 싶기도 하고, 반가운 마음으로 서둘러 책을 주문하여 받았습니다. 시집을 받아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무려 1189쪽, 서문과 차례 발문까지 뺀 내용만 1120쪽에 달했기 때문입니다. 먼저 서문을 읽고, 김형수 시인이 쓴 해설을 읽었습니다. 사실은 5년 전에 탈고해놨던 시집이라는데, 언제 그렇게 구상을 하고 쓰셨는지 감탄을 금할 수가 없었습니다. 심청전은 다 알려진 바인데 무슨 얘기가 그렇게 길까 궁금했는데, ‘해원-상생-대동’을 꿈꾸는 ‘해원굿’처럼 느껴졌습니다.
희랍의 연극은 잘 알려진 스토리들로 그것이 어떻게 정해진 운명대로 전개되는가를 즐겼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장편서사시 ‘청’도 마찬가지로 잘 알려진 스토리인데 어떻게 전개되는가를 노래한 것이라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표현하는 기법이 오묘하고, 소리를 내어 읽으면 무당이 신기를 받아 쏟아내는 무가와 같은 신령한 기운이 감돕니다. 푸념입니다. 신기가 들린 무당이 원한이 맺힌 사람에게 온갖 얘기를 쏟아내는, 그것을 푸념이라고 한다는데, 시를 입속으로 중얼거리며 읽으면서, 바로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샤먼이든 무당이든, 이 시대를 원한에 쌓인 채 사는 사람의 한을 풀려는 해원굿을 하는 무당의 푸념이 1120쪽 계속되는 것으로 저는 제 나름대로 읽었습니다. 도서출판 ‘그냥’에서 출간했는데, 서점에는 안 내놓고, 출판사에서 주문판매만 한다고 했습니다. 심청전, 윤이상 선생이 작곡한 음악도 궁금해졌습니다.
을하
#시사전북 2023년 12월호 게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