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한도(歲寒圖)

겨울 날씨가 따뜻하다고 좋아할 수도 없고, 며칠 춥다고 호들갑을 떨 수도 없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지구온난화 탓이라는데, 지역에 따라서 기후가 종잡을 수 없이 급격한 양상을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리 넓다고 볼 수 없는 우리나라의 지역에 따른 날씨를 보더라도 그렇습니다. 혹한이 몰아닥칠 것이라는 예보에도 날씨가 그냥 따뜻하게 지나갈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면 ‘일기예보가 틀렸나?’ 싶기도 합니다. 실제로 강원도 동해안 일원에는 혹한에 폭설이 내렸다는 뉴스를 들으면 먼 나라 얘기처럼 들립니다. ‘로마클럽’은 유럽의 지식인들이 1970년 정식으로 결성한 비영리단체랍니다. ‘지구온난화’라는 용어는 ‘로마클럽’이 ‘성장의 한계’라는 보고서를 1972년 내면서 쓰기 시작했답니다. 벌써 반세기도 넘는 오래전 일입니다. 이제 기후 온난화는 전 지구적인 현상이 됐습니다. 기후변화에 우리 삶도 예전과는 크게 달라질 것입니다.

기후 온난화는 전 지구적인 재앙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많은 학자가 해수면 상승뿐만 아니라 각종 질병의 창궐, 식량 생산량 감소 등, 인류의 미래와 생존 자체를 염려하고 있는 터입니다. 기후 온난화 문제는 당분간 쉽게 해결될 기미조차 보이지 않습니다. 온난화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탄소가스 배출에 대하여 세계 각국이 어떤 뚜렷한 묘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언 세계는 전면적인 전시상황으로 빠져들고 있는 듯합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갈수록 광역화하는 조짐을 보이고 있고, ‘팔레스타인-이스라엘 전쟁’도 중동 전역으로 확산이 되는 것 같습니다. 유엔을 비롯한 국제기구가 본래의 역할을 벌써 오래전부터 잃었고, 미국을 비롯한 몇몇 강대국조차 제 발등의 불 끄기에 바쁜 상황입니다. 인류가 문명의 쇠퇴기에 이른 느낌이 듭니다. 근래 들어서 각국의 정치지도자들 품격이 현저하게 떨어진 것도 사실이 아닙니까?

스산한 겨울 풍경 그림이 떠올랐습니다. ‘추사 김정희(1786-1856)’의 ‘歲寒圖(세한도)’입니다. 세한도는 추사가 1844년 ‘우선 이상적(1804-1865)’에게 그려서 줬답니다. 추사가 58세, 우선이 40세였습니다, 이상적은 중국을 오가는 통역관이라고 합니다. 추사의 서간문을 보면 주위 사람들에게 무엇을 구해서 보내달라는 부탁이 많습니다. 저 때에도 이상적은 중국에서 책을 가져와서 추사에게 한 보따리 줬다고 합니다. 문인화는 그림 자체보다 사연이나 품격이 중요하답니다. 추사는 ‘지금 그대가 나를 대하는 모습은, 내가 곤경을 겪기 전에 더 잘 대해 주지도 않았고, 곤경에 처한 후에 더 소홀히 대하지도 않았다. 나의 곤경 이전의 그대는 칭찬할 만한 하지 않겠지만, 나의 곤경 이후의 그대는 역시 성인으로부터 칭찬을 들을 만하지 않겠는가?’고 발문에 적었습니다. 자기가 어려움에 있을 때도 잘해줘서 고맙다는 것입니다.

‘세한(歲寒)’이라는 말은 논어 ‘자한편(子罕編)’에 나온답니다. 논어의 편별 제목은 각 편의 첫 구절로 붙였습니다. ‘자한(子罕)’의 ‘자(子)’는 공자이고, ‘한(罕)’은 ‘드물다’라는 뜻이랍니다. 즉 ‘공자님은 어떠어떠한 점이 드물다.’라는 문장의 첫 구절인데, 그 내용을 더 살펴봤습니다. 공자님은 평소에 이(利)와 명(命)과 인(仁)에 대해, 남의 질문에 답하는 경우 외에, 스스로 먼저 설명하시지 거의 않으셨는데, ‘자한편’ 27장에서 공자님께서 ‘이(利)와 명(命)과 인(仁)’에 대해서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추운 겨울이 된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다른 나무보다 뒤에 시들게 되는 것임을 알게 된다.(子曰 歲寒然後 知松柏之後凋也)”라고 설명해주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상황이 바뀌어 역경에 처하게 됐어도 소나무나 잣나무처럼 변함없으려면 평소 그런 마음가짐을 갖고 있어야 한다.”라는 뜻이라는 해설이 덧붙여 있었습니다.

우리는 역경에 처한 사람이 역경을 어떻게 헤쳐나가는지, 또한 역경에 처한 사람을 사람들이 어떻게 대하는지, 여러 모습을 보게 됩니다. 우리 속담에 ‘정승 집 개가 죽으면 문상 가지만, 정승이 죽으면 문상을 가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추사가 벼슬자리에 있을 때는 누구나 굽신거렸겠지만, 제주도로 유배 갔을 때는 가까운 사람도 멀리하는 경우가 많았을 것입니다. 세상인심이 대부분 그렇다고 생각하면서 스스로 위로했겠지만, 본인이 역경에 처해 있음에도, 누구든 옛날과 별 차이 없이 잘 대하여준다면 그 사람이 얼마나 고맙겠습니까. 곧 국회의원 선거가 있습니다. 권력이 무엇이기에 저럴까, 가끔 보기에 민망한 모습이 눈길을 끕니다. 쏟아지는 눈을 맞으며 누군가를 기다리다가, 90도로 허리를 굽혀서 인사를 하는 모습이 측은하고 슬퍼 보였습니다. 저런 사람이 역경에 처한 사람을 어떻게 대할 것인지 두렵기도 했습니다.

봄이 오고 있습니다. 시장에 냉이가 나온 지는 오래전입니다. 김장김치를 맑게 씻어서 썰어 넣고 끓인 냉이된장국이 구수했습니다. 엊그제 집사람과 함께 구례에 다녀오는 길에 오이를 몇 개 사서 무와 미나리를 넣고 물김치를 담갔습니다. 미나리는 지금이 제일 연하고 맛있을 때입니다. 곧 재래의 명절 구정입니다. 요즘 설날에는 예전에 있었던 세배라는 아예 없어진 듯합니다. 시골에서 옛날 어린아이들은 이때쯤이 좋았습니다. 연날리기, 자치기, 썰매 타기, 팽이치기, 쥐불놀이 등등, 눈만 뜨면 노느라고 하루해가 짧았습니다. 요즘 어린이들은 무엇을 하는지 이곳 시골에서는 아이들이 별로 눈에 뜨이지 않습니다. 먼 외딴집 노란 등잔불이며 문풍지 우는 소리를 더는 보고 들을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추사 선생의 ‘세한도’는 지금 국보로 지정되었답니다. 어쩌면 적막했던 어느 세월이 거기에 남아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을하

#시사전북 2024년 2월호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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