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사꽃 능금꽃이…’라고 시작만 하면, 웬만큼 나이가 드신 분은, 금방 알아봅니다. “아하! 최무룡이 부른 외나무다리!” 그렇습니다. ‘장마루촌의 이발사’라는 영화가 있었는데, 그 영화의 남자주인공 배우 최무룡(파주 1928-1999)이 부른 주제가였답니다. 반야월 작사 이인권 작곡인데, 곡도 좋지만, 가사가 참 좋습니다. 여기서 1절만 보겠습니다. <<복사꽃 능금꽃이 피는 내 고향, 만나면 즐거웠던 외나무다리/그리운 내 사랑아, 지금은 어디, 새파란 가슴속에 간직한 꿈을/못 잊을 세월 속에 날려 보내리. >> 영화의 내용도 그렇고, 궁금해서 더 알아봤습니다. 1958년, 해방 10주년을 경축하는 기념으로, 서울중앙방송(현 KBS 전신)에서 라디오드라마를 상금 50만 환을 걸고 공모했답니다. 박서림(서천 1930- )의 ‘장마루촌의 이발사’가 당선작품으로 뽑혔고, 이듬해인 1958년 8월부터 라디오 연속드라마로 방송되었다고 합니다.
라디오 연속드라마 ‘장마루촌의 이발사’의 인기가 높았던 모양입니다. 곧바로 영화로 제작되어 1959년 10월에 개봉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때 출연했던 배우가 최무룡 조미령 김지미 등이고, 1969년에 두 번째로 영화가 제작되었는데, 그때 출연했던 배우는 신성일 김지미 남정임 등이랍니다. 애초에는 소설이었던 것을 방송드라마로 바꾸고 다시 영화화하는 과정에서 이야기의 배경이 과연 어디냐로 여러 얘기가 오가는 듯합니다. 당연한 얘기지만 처음 방송소설을 썼던 박서림 (방송)작가는 자신의 주변에서 소재를 찾았을 것이고, 실제로 그랬다고 합니다. 주인공 이발사도 작가의 고향 서천군 신송리에 이발소를 하던 다섯 살 아래 사촌 조카가 모델이었답니다. 그뿐 아니라, 박서림 작가의 말에 의하면, 소설에서 나오는 등장인물들의 이름인 동순 순영 등등도 모두 작가의 주변 인물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라 합니다.
‘장마루촌의 이발사’라는 영화의 얘기를 추적하다 보니 지나간 시절의 여러 사연이 겹쳐서 나타났습니다. 1969년 개봉된 두 번째 영화를 경기도 파주에서 촬영했던 모양입니다. 그 지역에 미군 부대가 있었고, 맥주 클럽이 여섯이나 있었답니다. 그런데 그 동네의 이름이 ‘3파(三坡)’라고 장파리(長坡里)-금파(金坡里)-동파(東坡里)였는데, ‘파(坡)’가 우리말로 ‘마루’니까, 장파리(長坡里)는 ‘장마루촌’이라고도 불렀답니다. 여섯 군데 맥주클럽 가운데 맨 끝에 있는 집이 ‘라스트 챤스(Last chance)’였답니다. 미군들이 부대로 들어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들렸던 곳이랍니다. 얘기에 의하면, 신성일과 김지미가 주연을 맡았던 1969년의 두 번째 영화를 촬영할 때, ‘라스트 챤스’에 윤항기(1943- ) 조용필(1950- ) 김태화(1950- ) 등이 출연했다고 합니다. 나이를 계산해보니, 조용필과 정훈희(1952- )의 남편인 김태화가 불과 18살 때였습니다.
영화는 아직 못 봤지만 ‘외나무다리’라는 노래는 저도 좋아합니다. 얼마 전 제가 사는 동네에, 트로트 가수가 몇 명 오는 등, 잔치가 있었습니다. 동네 어른 조문을 갔더니, 동네의 어른들이 제게 ‘이번 잔치에 나가서 바이올린을 켜 보시라.’고 권유하셨습니다. 제가 가끔 집에서 바이올린을 켰기 때문입니다. 제가 “예, 한 번 켜보도록 하겠습니다. ‘외나무다리’, 그런 것을 켜면 어떻겠습니까?”라고 하자, 그 자리에서 연세가 지긋하신 동네 어른께서, “좋지. 그거 최무룡이 부른 노래였지?” 하셨습니다. 며칠 뒤, 동네 통장님이 저의 집으로 찾아오셨습니다. 주최측이 바이올린 켜는 모습을 보내라고 했답니다. 저의 집 마당에서 찍자니 풍산개가 짖고, 거실에서 ‘외나무다리’와, ‘고향에 찾아와도’ 두 곡을 스마트폰으로 녹화를 했습니다. 그 얼마쯤 뒤에 주최하는 측이 ‘보다 빠른 곡을 원한다.’길래, 제가 무슨 뜻인 줄 알고, 출연을 취소했습니다.
드디어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만난다고 합니다. 이번 만남을, 국민의 한 사람의 눈으로 볼 때, 외나무다리에서 만나는 듯 위태위태하게 보입니다. 이솝우화에 두 마리 염소가 외나무다리에서 만나는 우화가 나옵니다. 우화에서처럼, “내가 많이 건넜으니 길을 비켜라.” “무슨 소리냐. 다리는 내가 먼저 올라왔으니 네가 비켜라.”라며 다투다가 둘 다 물에 빠질지 지레 걱정이 됩니다. 우화에서 하필 염소를 등장시킨 까닭은, 염소가 물을 싫어하는 점도 있겠지만, 고집이 세다는 점이 아닌가 싶습니다. 옛날 외나무다리를 상여가 지나갔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상여는 양쪽에 대여섯 명씩 멥니다. 양쪽이 균형을 맞추지 않으면 외나무다리를 건널 수가 없습니다. 그동안 두 사람에게 쌓인 감정을 그대로 토로하면 이번 만남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국민이 위정자들을 걱정하는 작금의 현실은 비극 아닙니까?
담양 소쇄원에 가면, 고목통류(刳木通流)라고, 통나무에 홈을 파서 물을 계곡 건너편으로 흐르게 하는 외나무다리가 있습니다. 한자로 ‘고(刳)’가 나무를 파내는 것이라면, 염(剡)은 나무를 깎는 것이랍니다. <<고목위주(刳木爲舟) 염목위집(剡木爲楫)>>은 “통나무를 파서 배를 만들고, 나무를 깎아서 노를 만든다”라는 뜻이 됩니다. 곰곰이 그 뜻을 생각할수록 아름다운 글귀라는 느낌이 듭니다. 커다란 통나무를 쪼아내서 배를 만들 수가 있다면, 그 배에는 노까지 있다면, 우리가 그동안에 가보지 못한 영역까지 가볼 수가 있지 않겠습니까?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염소끼리의 만남’이 아니고, 우리 모든 국민의 더 나은 삶을 위해, 전심전력, 통나무를 파서 배를 만들고 나무를 깎아 노를 만드는 장인들과 같은 만남이 되기를 바랍니다. 노래 가사처럼, 두 분이 ‘만나서 즐거웠던 외나무다리’ 같이 되시길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을하
#시사전북 2024년 5월호 게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