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드나무 빛깔이 봄을 말해줍니다. 우리가 어떤 것을 판단할 때 각자 나름대로 어떤 기준을 가지고 있는 듯합니다. 저는 언제부터인가 봄이 깊어가는 척도를 버드나무 빛깔을 보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흘러간 유행가 ‘타향살이’는 ‘타향살이 몇 해던가 손꼽아 헤어보니’하는, 1절의 가사가 처량합니다. 2절도 청승맞기는 마찬가진데, 저는 ‘고향 앞에 버드나무 올봄도 푸르건만 버들피리 꺾어 불던 그때가 옛날’하는 3절을 좋아합니다. 한국 가곡, 김영삼(1922-1994 평양) 작사 변 훈(1926-2000 함흥) 작곡, ‘귀향의 날’도 그렇습니다. 가사는 원래의 시를 고쳤는데, ‘어디고 이 가슴속 반짝이는 생각에 버드나무 외따로 섰는 적적한 곳 내 고향 집’하는 부분의 2절을 좋아합니다. 테너 이상춘(1910-1991 부여)의 판이 있고, 바리톤 오현명(1924-2009)이 부르는 녹음이, 버드나무 빛깔이 짙어가는, 이 계절 부드럽게 파고드는 감칠맛이 있습니다.
자연은 아무리 흉내를 내려고 해도 따라갈 수 없는 오묘한 바가 있습니다. 몇 해 전에는 인공지능 바둑이 어떻다고 한동안 요란했습니다. 요즘은 대화형 인공지능의 한 종류라는 ‘챗봇’이 화재입니다. 앞으로 인공지능이 얼마나 오묘한 단계까지 발전할 수 있을는지 알 수는 없지만, 단순한 내용을 반복하는 역할은 상당한 부분까지 기계가 대신해 줄 것은 짐작이 됩니다. 여러 자연 현상을 과학적으로 해석하고 수학적인 원리를 규명하는 일은 매우 복잡하고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 할리우드에서 영화를 찍을 때, 인공으로 산의 모양을 자연스럽게 만드는 방법이 무엇인지, 번개가 칠 때 번갯불 모양은 어떤 패턴으로 됐는지, 그런 것을 어떻게 수학적으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인지 알 수 없었답니다. 컴퓨터의 성능과 모니터의 해상력이 점점 높아지기 시작한 1975년 이후에 소위 ‘악마의 수학’이라고 불리었던 ‘프랙탈(Fractal)’이 등장했습니다.
‘프랙탈(Fractal)’은 수학자 ‘망델브로(Benoit Mandelbro 1924-2010 바르샤바)’가, 유리창이 산산조각으로 깨진 모습을 연상하며, 1975년에 만들었답니다. 즉 어원을 ‘부서진’이라는 뜻의 라틴어 fractus 에서 가져온 표현이었답니다. 혹시 고사리잎을 잘 살펴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잎의 모양이 양의 이빨을 닮았다고 ‘양치류(羊齒類)’라 부른다는데, ‘자기상사(自己相似)’라는 형태랍니다. 잎 전체의 모양과 잎의 작은 부분의 모양이 서로 닮았습니다. ‘되새김질’이라고도 하는데, 부분과 전체가 끝없이 닮은 형태가 반복되면 이상한 형태의 그림이 됩니다. 마이크와 스피커를 마주 바라보게 놓으면, 마이크에 작은 소리가 들어가도, 순간적으로 귀가 찍어질 듯 굉음이 울립니다. 되새김질을 계속하면, ‘나비의 조그만 날개짓이 폭풍우가 된다.’라고 비유도 합니다. 초기조건이 조금만 달라져도 결과가 엄청나게 달라질 수 있다는 얘깁니다.
‘자기상사(自己相似)’는, 고사리잎 말고도, 자연의 현상 가운데 많습니다. 눈송이의 얼음결정도 그렇고, 번개 불빛의 패턴이나 풍화작용에 의해서 흙더미가 깎인 모습, 해안선의 굴곡진 지형 등등, 어쩌면 자연 현상의 근본적인 법칙인가도 모른다고도 합니다. 그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한의학에서 말하는 수상(手相) 족상(足相) 이상(耳相) 등등도 생각납니다. 우리 몸 전체와 오장육부며 손발 등등 신체 각 부분이 서로 닮았다는, 지극히 동양 철학적인, 생각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중생이 아프니 내가 아프다.’는 말씀도 있듯이, 불교에서 연기법으로 ‘제석천에는 무구한 구슬로 만든 인드라망이라는 그물’이 있다고도 했습니다. 그 구슬들은 서로 조응하면서 비춰주고 있다고 합니다. 우주 전체를 하나의 유기적인 생명체로 보는 것입니다. 생명체의 세포 한 개속에도 모든 유전정보가 들어 있다는 것이 아닙니까?
세상이 어수선합니다. 지금이 어느 시대인지, 춘추전국시대처럼, 세계 각국이 합종연횡하느라 숨이 가쁘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제가 생각할 때, 요즘 세상 돌아가는 형국이 마치 ‘프랙탈’의 ‘자기상사’를 닮은 것 같습니다. 세상이 어수선하듯, 각각의 나라들이 제대로 돌아가는 곳이 거의 없는 듯 시끄럽습니다. 각각의 나라들이 시끄러우니까 그 나라의 국민 개개인의 마음이 편하겠습니까?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사람들의 세포는 면역력이 떨어지고 각종 질병에 취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마이크로 소프트의 ‘빌 게이츠(1955- )’가 염려하는 것은 ‘코로나19’ 같은 인류의 감염병이라고 했습니다. 각국의 정치체제도 크게 흔들리고 있습니다. 지금 민주주의가 곧이곧대로 이뤄지고 있는 나라가 몇이나 된다고 보십니까? 우리나라도 말이 삼권분립이지, 제대로 이뤄지고 있습니까?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두고 무슨 얘기들을 하는 것입니까?
나라가 바로 서려면 민주주의의 근간인 ‘입법-행정-사법’의 삼권분립부터 존중되어야 합니다. 굳이 ‘삼권분립이 존중되어야 한다’라는 말씀은 행정부에서 입법부의 국회의원이나 사법부의 판사들을, 법적으로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빼내서 장관을 시키는 등, 마치 입법부나 사법부를 행정부의 부속기관으로 종속화시키려는 듯한 짓을 그만둬야 한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더욱 가관은 사법부의 판사를 했다는 분이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한 판사들 개개인을 조롱하는 듯한 태도입니다. 법무부 장관이 원고로써 국회를 상대로 재판을 했는데 헌법재판소는 국회의 손을 들어준 모양입니다. 국회에서 다수당인 야당이 법무부 장관은 책임지고 사퇴하라고 하니까, ‘국회가 지면 국회의원직을 사퇴하려고 했습니까?’라고 응수했다는 얘기가 들립니다. 어쩌면 그렇게, 자기상사처럼, 닮았는지, ‘삼권분립, 지켜질 것인가?’ 스스로 자문자답을 해봤습니다.
을하
#시사전북 2023년 4월호 게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