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녘 바람이 싸늘해졌습니다. 엊그제는 새벽 잠결에 홑이불을 끌어당겨 덮었습니다. 어느덧 사상 유례가 없었다는 ‘열대야’가 지나간 것입니다. 농촌에서는 지금이 딱 김장 채소를 파종할 때이랍니다. 전에 듣기는 ‘김장 채소는 처서 무렵에 심는다.’라고 했는데, 기후 온난화 탓인지, 열흘 남짓 더 늦춰진 셈입니다. 지난달 8월 22일 처서였는데, 그날 무씨를 뿌리려는데 동네 어른께서 ‘며칠 뒤에 뿌려야 좋다.’고 말리셨습니다. ‘지금 무씨를 파종하면 무가 너무 커서 안 좋다.’라는 것입니다. 저도 그런 것 같았습니다. 양파도 그렇고 고구마도 그렇지만, 무도 너무 크면 좋은 대접(?)을 못 받습니다. 무김치는 말할 것이 없고, 동치미도 무가 너무 크면 쪼개서 담아야 합니다. 저의 집도 겨우내 먹을 무를 살 때면 너무 크지 않고 육질이 단단하게 보이는 적당히 작은 것을 고릅니다. 채소 가꾸는 것도 다 시류에 따라야만 된다는 얘깁니다.
‘종시속(從時俗)’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 시절 다른 사람이 하는 대로 따라서 해라!’라는 뜻 같습니다. 서양 속담에 있는, ‘로마에 가서는 로마사람이 돼라.’와 비슷한 뜻이겠지요. 옛날에 우리 삶의 큰 매듭을 이뤘던 ‘관혼상제(冠婚喪祭)’를 치르다 보면 주변에서 이런저런 말들을 많이 했습니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라는 속담처럼, 당사자로서 누구 말을 듣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재래식 장례를 치르다 보면 묘를 쓰는데, 어디서 듣고 왔는지 어중이떠중이 ‘반풍수들’이 모여들었습니다. 그럴 때 상주가 웬만큼 똑똑하지 않으면 별별 소리를 다 듣게 됐습니다. 어디서 주워 들은 알량한 풍수들이 저 잘난 척을 해댑니다. 어느 시대 특정 지역의 관습을 획일적으로 모든 곳에 적용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공자님께서도 늘 다른 지역의 풍속과 음악이 어떤지 묻고 궁금해하셨다고 합니다.
‘아집(我執)’이 문제입니다. 자기가 ‘확실하다.’라고 여기는 것을 ‘확실하지 않다.’라고 생각을 바꾸는 것은 참 어려운 일입니다. 어느 낯선 곳에 갔을 때, 동서남북 방향이 머릿속으로 한번 정해지면, 제대로 된 새로운 방향 감각을 되찾기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아, 아집(我執)이란 이렇게 무서운 것이구나!’ 하며 깜짝 놀라곤 합니다. 우리가 눈으로 직접 보고. 손으로 만져봤다고 그대로 철석같이 믿어서는 안 됩니다. 요즘은 인공지능이라는 AI가 나와서 더욱 그렇게 되었습니다. 근래 자주 쓰이는, ‘딥페이크(Deep-fake)’라는 말은, AI 심층 학습을 뜻하는 Deep Learning과 가짜라는 뜻의 Fake를 합성한 새로 만들어진 용어랍니다. 지난번 광복절에 유관순 열사 사진을 AI로 합성하여 웃으며 만세를 부르는 사진이 떴습니다. 그때는 신기하다며 좋아했는데, 작금에는 ‘딥페이크’로 제작한 음란물이 사회문제로 떠 올랐습니다.
우리 사회는 지금 각 분야에서 ‘지역-세대-직업’ 갈등이 최고조에 이르렀습니다. 여소야대의 국회에서 여야의 합의 없이 야당만으로 통과시킨 법안은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에 의해 폐기가 되고, 고위공직자 임용 국회 청문회는, 국회의 동의와는 별개로, 임용되고 있는지 벌써 오래입니다. 우리나라에서 민주주의 대원칙인 ‘입법-사법-행정’의 삼권분립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심각하게 우려가 되는 상황이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의과대학 입학정원 2000명 증원으로 촉발된 소위 ‘의료대란’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의과대학생 학부모의 반발까지 고려하면, 심각합니다. 국민이 정말 궁금한 것은, 증원은 원칙적으로 필요하지만, 한 해 2000명의 숫자가 어떻게 정해졌고 어떻게 대학에 배분되었느냐입니다. 대통령은 과학적으로 2000명이 정해졌고, 정부는 정원 배분 회의록이 폐기됐답니다. 과학적이라니 어떻게 된 과학적입니까?
검찰이 문재인 전 대통령을 범죄 피의자로 적시하였다기에 인터넷에서 언론에 보도된 내용을 살펴봤습니다. 2018년 3월에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중진공)의 이사장으로 이상직 전 민주당 의원이 임명되었는데, 그 뒤 7월에 문 전 대통령의 사위인 서모씨가, 이상직 전 의원이 실소유주로 있던, 타이이스타젯 임원으로 취직을 했답니다. 사위는 매월 급여 800만원과 350만원가량의 렌트비 등을 받았는데, 퇴직할 때까지 총 2억 2300만원 가량이 된답니다. 검찰 측은, 만약 사위가 직업을 못 가졌다면 문 전 대통령이 그 액수만큼 사위 서씨 가족에게 줬을 테니, 문 전 대통령이 이상직 전 의원으로부터 총 2억 2300만원의 뇌물을 받은 셈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임종석 문 전 대통령 비서실장을 비롯하여 전 청와대 인사 관련 비서진들이 전주 지방검찰청을 다녀갔답니다. 어찌 스토리가 그럴듯하면서도 어딘가 좀 허술하지 않습니까?
여당인 국민의 힘은 문 전 대통령의 사위였던 서모 씨의 ‘항공사 특혜 채용’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이 문 전 대통령의 딸 다혜 씨의 주거지를 압수 수색한 데 대해 “법 앞에 평등을 보여줄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답니다. 또, 정광재 국민의 힘 대변인은 국회에서 기자들을 만나 “문다혜 씨 관련 의혹에 국민이 많은 궁금증을 갖고 있다. 특정인에게만 유리한 법 집행은 공정한 사회를 추구하는 윤석열 정부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답니다. 어쩌면 그렇게 주옥같고 공자님 말씀 같은 소리를 하는지, 우리같이 평범한 국민이 듣기에 감격해서 기가 찰 노릇 아닙니까. 논어 위정편에 ‘군자불기(君子不器)’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모름지기 군자는 한 가지 용도로 쓰이는 그릇 같아서는 못쓴다는 겁니다. 그래도 명색이 위정자라면, 시절에 따라 국민의 마음을 헤아려서, 제발 <<종시속(從時俗)>>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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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전북 2024년 9월호 게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