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품성은 어떻게 가꿔지는가.

우리나라는 사계절이 뚜렷한 금수강산(錦繡江山)이랍니다. 그렇게 배웠고, 그렇기에 봄은 3월부터 5월까지라고 여겨지고 있습니다. 그렇게 배울 때는 몰랐지만, ‘금수강산(錦繡江山)’이란 ‘산과 강이 비단실로 수를 놓은 듯 아름답다.’라는 뜻이었습니다. 봄이 되어 산과 들에 신록이 돋기 시작하면, 우리는 비단실로 수를 놓은 수틀에 놓여 있는 듯합니다. 봄이 되면, 무엇보다, 낮이 길어져서 좋습니다. 아침저녁으로 엷은 안개가 자주 끼고 곳곳에 신선들이 사는 곳인 양 선경(仙景)이 펼쳐집니다. 태양계에서 지구가 태양으로부터 아슬아슬하게 알맞은 거리에 놓여 있답니다. 조금만 더 멀거나 가까웠어도 지구상에 생명체가 생겨나기 어려웠을 것이랍니다. 그 얘기를 들을 때마다, 저는, 우리가 사는 한반도가 지구상에서 지금의 위치에 어떻게 놓였는지 참으로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사계절이 뚜렷하다는 것은 대단한 축복 아닙니까?

윤석열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했을 때가, 작년 12월 3일이니까, 두 달이 넘었습니다. 그보다 앞서 처음 ‘계엄 얘기 운운’한 사람은 더불어민주당 김민석 의원입니다. 신원식 국방부 장관을 대통령실 안보실장으로 옮기고, 당시 경호처장이었던 김용현을 국방부 장관으로 지명했을 때였습니다. 김민석 의원이 뜬금없이,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할 것 같다.’기에 ‘무슨 당치 않은 헛소리 하는가?’ 싶었습니다. 그 얼마 뒤에, 그 얘기가 국회 청문회에서 다시 거론되는 장면도 있었습니다. 누군가 그 당시 김용현 국방부 장관 후보자에게 ‘계엄 얘기가 있는데 사실이냐?’ 물었던 것입니다. 그러자 김용현 국방부 장관 후보자는 너털웃음을 웃으면서, ‘이 시대에 계엄이 가능하다고 보십니까?’ 하면서 시치미를 뚝 뗐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윤석열 대통령은 측근들과 술판을 벌이면서 여러 차례 ‘계엄 얘기’를 했을 것으로 짐작이 됩니다.

3월 첫 주말,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탄핵에 대한 최종 판결을 앞두고 곳곳에서 대규모 찬-반 집회가 있었습니다. 말이 집회지, 어느 쪽이나, 군중대회요 데모였습니다. 특이한 것은 ‘탄핵 찬성’보다도 ‘탄핵 반대’의 사람들이 월등하게 몇 배나 많았다는 점입니다. 양편에는 여-야 다수의 국회의원도 참석했다고 합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저는 ‘타초사경(打草蛇警)’이라는 중국의 고사성어가 생각났습니다. 중국의 고사성어 가운데는 원래의 뜻과 달리 쓰이는 경우도 많습니다. 원래의 뜻은 ‘네가 풀 섶을 두드리지만, 나는 뱀이 몸을 숨기듯 이미 경계를 갖추었다.(여수타초/아이사경,汝雖打草/我已蛇警)’랍니다. 그러나 ‘풀 섶을 두드리면 뱀이 놀란다.’라는 의미로도 자주 쓰인다고 합니다. 지금 대한민국 우리나라는 누가 풀 섶을 건드려서 숨어있던 뱀들이 쏟아져 나온 형국이 아닌가 싶습니다. 무섭고 징그럽습니다.

심리학자 제롬 케이건(Jerome Kagan 1929-2021)이 쓴, ‘무엇이 인간을 만드는가 (원제:On Being Human, Why Mind Matter 2016)’라는 책을 봤습니다. 케이건은 유아기 특정 행동이 청소년기의 다른 행동 패턴을 예측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유아의 기질’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상당히 지속되는 안정적인 것으로 봤답니다. 그는 심리학자답게 “공부를 해서 얻는 것은 더 현명하고 나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라며, 인간을 만드는 몇 가지 요소들을 나열하였습니다. “언어/지식/배경/사회적 지위/유전자/뇌/가족/경험/교육/예측/감정/도덕” 등등이 그런 요소랍니다. 도덕성이나 윤리 규범은 모호하고 새로운 상황에서 적응하고 변화해야 하는 가변적 개념이랍니다. 자기 시대에 도덕적 귀감이 되었던 사람은 많지만, 모든 시대를 통틀어 귀감으로 남아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답니다. 인간의 품성을 결정하는 요소는 그렇게 복잡하답니다.

소셜 네트워크의 영향력이 커짐에 따라서 젊은이들이 자신의 개인적 도덕 규범을 지키기가 더 어려워지고 있답니다. 미국의 경우, 청소년 중 90 퍼센트 이상이 하루에 적어도 한 번 이상은 또래들과 메시지를 주고받고 있답니다. 비록 2012년 통계이지만, 그 가운데 1/3이 사이버 왕따를 당했다는 보고가 있답니다. 조지 오웰이 쓴 어둠의 소설 ‘1984년’에서는 사람들이 독재 정부에 의해서 감시를 받았지만, 지금 우리 세대에서는 자기 친구들에게 감시당하는 사회가 됐다는 것입니다. 각 시대는 전 시대에서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규범을 만들게 되는데 그러므로, 항상 ‘뒷북’을 치게 된답니다. 철학자 헤겔이 말했던,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에만 날아오른다.” 속에 담긴 뜻도 그렇답니다. 위기가 지난 다음에야 공동체의 구성원들을, 전 시대에 있었던, 어떤 특정한 윤리적 주장을 뒤늦게 이해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어느 시대에나 있었던, 사이비 종교의 폐해는 어느 정도 우리 모두 어느 정도 알고 있습니다. 인간은 잘한 일에 대한 칭찬뿐만 아니라, 남모르게 잘못한 행위에 대해서도 어떤 방법으로든 처벌을 받고 죄책감에서 벗어나려는 성향까지 있답니다. 우리 시대 소셜 네트워크에서 잘못된 정보와 가짜뉴스에 휩쓸리는 것도 인간이 갖는 ‘칭찬/속죄’을 하고 싶은 성향에서 비롯된 것 같답니다. 대가족제도에서 갖고 있던 규범들이 핵가족이 되면서 ‘칭찬/속죄’ 기회를 잃었고, 사이비 종교나 소셜 네트워크에서 찾게 됐답니다. 심리학자들 견해로는 인간의 품성이란 유아기 때부터 길러진다고 했습니다.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앞두고 극심한 혼란들이 걱정입니다. 모두 우리 업보로 알고 꾹 참으며 견뎌내도록 합시다. ‘헌법재판소를 쳐부수자.’라고 부르짖는 패거리의 난동은 결국 우리 기성세대의 잘못된 가정교육과 사회교육 탓 아니겠습니까?

을하

#시사전북 2025년 3월호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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