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드디어 대통령을 다시 뽑게 되었습니다. ‘장이 섰는데, 장돌뱅이가 장에 안 나가나?’는 후보부터, 옛날로 말하면, 영의정을 지낸 사람까지, 너도나도 대통령을 하겠다고, 뒤죽박죽들 나서더니, 이제 곧 정식으로 후보가 정해지려는 것 같습니다. 돌이켜 보면 아찔합니다. 지난번 어쩌다가 그렇게 허무맹랑한 사람을 대통령이라고 뽑았는지, 아마 제 손가락을 지지고 싶다는 사람 많았을 것입니다. 대통령을 뽑는다는 것이, 무슨 연애편지처럼 잘못 썼다고 구겨 버리고 다시 쓸 수 있는 것이 아녔는데, 그야말로 자승자박(自繩自縛), 자신이 마련한 오랏줄로 자기 자신을 묶었으니, 지난번 계엄 사태가 이렇게라도 마무리가 되어가는 것 같아서, 얼마나 천만다행한 일인 줄 모르겠습니다. 이제 대통령 선거 때까지 채 한 달도 남지 않았습니다. 저는 마치, 아주 오래전에 봤던, 수능시험을 기다리는 수험생이 된 기분입니다. 그렇게 떨립니다.
사람이라는 영장류가 굉장히 똑똑하고 영리하고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지만, 한편으로는 사람같이 둔하고 어리숙하고 감각이 엉터리인 존재도 없을 듯합니다. 우리가 철석같이 믿는 오감이라는 것이 기능적으로 문제가 많습니다. 우리가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피부로 느끼는 것이, 사람마다 제각각이고, 그렇게 전적으로 믿을 바 못 됩니다. 오감을 통하여 우리가 TV와 스마트폰 등으로 얻는 정보들이 옳고 그르다는 제대로 판단하기가 어렵습니다. ‘보는 것이 곧 믿는 것이다.’라고 여겼던 때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그것이 아닙니다. 페스트로 사람들이 그렇게 죽어도 페스트균 때문이라는 것을 몰랐었던 때가 있지 않았습니까.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이 가짜뉴스에 휘둘리는 것 보십시오. 사람이라는 영장류는 신체 기능보다 두뇌가 중요합니다. 악성 바이러스는 컴퓨터뿐만 아니라, 사람의 두뇌도 조심해야 합니다.
문명이 극도로 발달했다고 우리 개개인의 지능이 그렇게 뛰어나게 된 것 아닙니다. 우리가, 우리 전 세대들처럼, 자급자족하던 시절보다 얼마나 무능해졌는지 생각해보셨습니까? 지식이 전문화되고 분업화돼서, 또 직업이 그렇게 나누어져서, 우리는 단순한 몇 가지의 기능만 겨우 갖은 셈 아닙니까? 오늘날 지성인을 판별하는 척도는 달라져야 합니다. 그 사람이 가짜뉴스에 얼마나 분별력을 지니고 있느냐도 중요한 기준 가운데 한 가지일 것입니다. 이번 대통령 선거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별별 가짜뉴스들이 판을 칠는지 걱정입니다. 휩쓸리지 말아야 합니다. 주위에 사이비종교에 빠진 사람은 없으십니까. 가짜뉴스에 허우적거리는 사람들보다도 몇 배 더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정치인 가운데 ‘무속에 빠진 사람’이 많은 모양입니다. 높은 자리에 올라가서 으스대려고 하지를 말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봉사하려고 정치를 해야 합니다.
사람은 별 능력도 없는 사람일수록, 무슨 수라도 써서, 높은 자리에 올라가서, 잘난 척을 하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럴 때마다, 뜻도 잘 모르고 중학교 때 배웠던, ‘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구축(驅逐)한다.’라는 ‘그레샴의 법칙’이 생각납니다. ‘구축(驅逐)’이란 몰아낸다는 뜻인데, 아마 요즘 중학생들은 잘 들어보지 못한 용어가 아닐까 싶습니다. 하여튼, 왜 그렇게 선거 때 되면 얼레미(체)로 쳐도 빠지지 않는 돌멩이 같은, 함량 미달인, 사람들이 설치는지, 제가 볼 때, 모두 악화로 보였습니다. 옛날얘기지만, 경복궁 중수 때 ‘당백전’같이, ‘그레샴의 법칙’ 현상이 지속되면 그 나라 경제는 골병이 들고 망한답니다. 경제뿐 아니라 정치도 그렇지 않겠습니까? 함량이 미달하는 정치가들이 설치면 나라 꼴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 사람의 정책이나 말만 들어서는 알 수 없습니다. 오직 그 사람의 사람 됨됨이를 봐야 할 것입니다.
한덕수 전 총리가 망월동 민주화운동 묘역에서, “나도 호남 사람입니다!”라고 여러 번 외쳤다는데 측은하게 들렸습니다. 고향이 도대체 뭐기에 그럴까 싶어서, 백석의 ‘고향’이라는 시를 봤습니다. <<나는 북관에 혼자 앓아 누워서/어느 아침 의원을 뵈이었다.///……///…묵묵히 한참 맥을 짚더니/문득 물어 고향이 어데냐 한다.//평안도 정주라는 곳이라 한즉/그러면 아무개 씨 고향이란다./그러면 아무개 씨 아느냐 한즉/의원은 빙긋이 웃음을 띠고/막역지간이라며 수염을 쓸는다//나는 아버지로 섬기는 이라 한즉/의원은 또다시 넌지시 웃고/말없이 팔을 잡아 맥을 보는데/손길은 따스하고 부드러워/고향도 아버지도 아버지의 친구도 다 있었다>> 여기서 나오는, ‘아무개 씨’는 조선일보를 설립한 ‘방응모’랍니다. 시의 내용대로, 백석의 부친과 방응모는 둘 다 평북 정주 출신으로, 백석 부친이 조선일보에 근무했고, 잘 아는 사이랍니다.
‘수구초심(首丘初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원래의 뜻은, “여우가 살던 곳을 떠나 객지로 떠돌다가 죽을 때는 마지막으로 고개를 살던 데를 향하여 죽는다.”라는 뜻이랍니다. 고향을 떠나 객지에 사는 사람이 여느 때에도 보통 쓰는 말인데, 그 뜻을 알고 보면 앞으로는 가려서 쓸 일입니다. 한덕수 후보가 본적을, 어느 때부터였는지, 전북에서 서울로 옮긴 모양입니다. 이제 언론에서 여러 얘기가 나오고 있는데, 전북 도청에서 예산 확보 로비를 할 때, 중앙행정부에 있던 한 후보가 적극적이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고건 회고록’에는 고건 총리가 노무현 대통령 대행을 맡고 있을 때, 국무총리실에 있었던 한 후보의 얘기가 왠지 찜찜하게 나와 있습니다. 우리가 이번에 뽑을 대통령은, 겸손하면서, 좀 교양이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잘난 체하고, 술판에서 혼자서 떠드는, 그런 잡다한 지식뿐인 사람에게 우리가 질렸지 않았습니까?
을하
#시사전북 5월호 게재 칼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