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그 여럿 가운데서도 야무지기로 따진다면 똑똑한 사람과 어리숙한 사람으로 갈린다. 총기로 따진다면 총명한 사람과 아둔한 사람일 게다. 판단력이나 물정을 아는 힘을 놓고 따진다면 준재와 바보로 나뉠 터다. 우리는 어리숙하고 아둔한 사람, 곧 바보를 곧잘 얕잡아 보기 마련이다. 하지만 바보도 바보 나름이다.
“주문하신 커피 나오셨습니다. 뜨거우시니 조심하세요.” 커피숍 직원의 말씨다. 커피와 뜨거움이 존대의 대상이 아니란 것쯤은 그도 안다. 허나 손님에 대한 과잉 매너 때문에 우정 존대를 남발하는 바보짓을 몸에 달고 산다. 잘라 말해 이 사람은 바보다. 물론 아주 셈 빠른 바보다.
신라 때 일이다. 인관(印觀)과 서조(署調)라는 사람이 있었다. 인관이 시장에서 솜을 팔고 있었다. 서조가 곡식을 주고 솜을 사오는데 그만 솔개가 솜을 낚아채 가버렸다. 솔개는 그 솜을 인관의 집에 떨구고 갔다. 인관은 생각 끝에 솜을 갖고 가 서조에게 주면서 말했다. “솔개가 우리 집에 솜을 떨어뜨렸으니 주인에게 돌려준다.” 서조가 답했다. “아니야. 솔개가 네게 준 솜을 내가 왜 받겠어?” “그렇다면 나도 네 곡식을 받을 수 없다. 곡식을 도로 가져가거라.” “내가 네게 주고 산 지 이틀이나 됐다. 곡식은 네 것이지 내 것이 아니야. 절대 받을 수 없어.”
둘은 받느니 못 받느니 옥신각신하다가 솜과 곡식을 모두 시장에 버려두고 각각 집으로 돌아가 버렸다. 시장을 관장하던 관리가 임금에게 이를 아뢰었다. 임금은 두 사람을 불러 벼슬을 내렸다. 삼국사절요에 나오는 두 바보 얘기다.
무슨 일이라도 난 듯 서조를 찾아가 솜을 돌려주려한 인관은 양심적이다. 솔개가 나꿔채 남의 집에 떨어뜨린 것도 하늘의 뜻이라고 돌려받지 않으려 펄쩍 뛴 서조도 또한 선량하다. 그들이라고 솜이 아깝고 곡식이 귀한 줄 왜 몰랐겠는가. 하지만 둘은 결국 솜과 곡식을 포기하고 각자 마음이 편한 길을 선택했다. 결과적으로 벼슬을 받긴 했지만 요즘 식으로 본다면 둘 다 바보다. 물론 착한 바보다.
혜월선사에게는 손수 개간하여 만든 논 서 마지기가 있었다. 한데 어느 날 마을 사람들이 유혹해 그 논을 팔고 말았다. 서 마지기를 두 마지기 값밖에 받지 못했다. 그러자 제자들이 펄펄 뛰면서 속았다고 했다. 모두 되물리라고 야단들이었다. 그러자 선사가 말했다. “두 마지기 값을 받고도 논 서 마지기는 그대로 있지 않느냐! 장사는 이렇게 해야지.”
밑지고 판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실은 선사가 마을 사람들에게 싼 값으로 넘긴 것이었다. 배를 굶주리는 마을 사람들에게 보시도 할 터인지라 그냥 넘기면 안 받을 테고 논값을 떳떳이 치렀다는 만족감을 줄 속셈이었기 때문이다. 이 또한 요즘 셈법으로는 바보가 아닐 수 없다. 허나 자애 넘치는 바보다.
보조국사에게는 누님이 있었다. 스님이 누님에게 항상 염불을 하라고 권할 때마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내게는 부처님같이 훌륭한 아우가 있는데 염불공부를 해서 뭐하겠어. 설사 내가 수도하지 않는다 해도 다른 사람까지 제도해주는 아우가 있는데 나 하나쯤은 극락으로 이끌어주지 않으려고?”
국사는 말로써 누님을 제도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다른 방법을 쓰기로 했다. 어느 날 누님이 절에 온다는 것을 안 국사는 방에 진수성찬을 가득 차려 놓았다. 누님이 들어오자 국사가 말했다. “오셨습니까? 않으시지요. 막 공양을 하려던 참입니다.” 국사는 혼자서 음식을 맛있게 들고는 상을 물렸다. 전에 없던 일이었다. 누님은 섭섭하다 못해 노여움이 치밀었다. “자네가 오늘 왜 이러나?” “무슨 말씀입니까? 누님?” “무슨 말이라니? 나 그만 집으로 가야겠네.” “진지나 잡숫고 가셔야지 먼 길을 그냥 가시면 시장하지 않겠습니까?” “밥을 줄 생각이 있는데 몇 십리 길을 걸어온 사람을 보고 자기는 푸짐한 음식을 먹으면서 한번 먹어보라는 말도 없으니 그게 사람이 할 짓인가?” “누님, 제가 이렇게 배가 부르도록 먹었는데 누님은 왜 배가 안 부르십니까?” “자네가 먹었는데 어찌 내 배가 부르단 말인가?” “제가 도를 깨치면 누님도 제도된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렇다면 동생이 배부르면 누님도 배가 불러야 하지 않겠습니까?” “무슨 말을 그렇게 하는가? 밥은 뱃속으로 들어가고 염불은 마음으로 하는 것이니 배부른 것과 극락 가는 것은 다른 것 아닌가?” “그렇지요. 제가 음식을 먹어도 누님이 배부르지 않듯이 제 마음으로 염불을 하면 내 영혼은 극락에 가도 누님은 갈 수 없는 것이지요. 누님이 극락에 가고 싶으면 누님이 염불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죽음도 대신하지 못하는 것처럼 극락도 대신 가지는 못 합니다.” 누님은 곧장 염불에 전념했다.
이 누님도 바보다. 자기 일을 남에게 의지하려는 바보다. 하지만 깨우쳐주면 아는 순진한 바보다.
별명이 바보인 대통령도 있었다. 바로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그는 사람 사는 세상을 부르짖으며 한국사회 모순과 질곡에 정면으로 도전했다. 모순의 근본원인 중 하나인 지역주의, 정확히 말해 영남패권주의는 완고하고 견고했다. 아직도 건재하며 보란 듯이 위세를 떨치고 있다. 그래도 그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퇴임 후 고향에 내려가 ‘아! 기분 좋다’라고 외쳤던 사람. 그는 국민이 지어준 별명 가운데 바보라는 호칭이 제일 좋다고 했다. 노무현은 한국사회 모순의 핵심을 향해 홀로 투신하는 방식으로 싸웠다. 그런 그가 끝내는 부엉이 바위에서 투신함으로써 오욕과 거짓으로 얼룩진 세상을 하직했다. 자신의 목숨을 버림으로써 자기를 마무리했다. 퇴임후 인기가 더 올랐고 서거 후 더욱 인간애가 부각되는 그였다. 그런 그도 분명 바보다. 그가 바보라는 것은 좌고우면하지 않는 그의 인생 궤적이 입증해준다. 하지만 존경받는 바보다. 우러름의 대상인 바보다.
여기까지는 견딜 만하다. 그러나 지금부터는 상황이 심각해진다.
글의 천재라고까지 인정받았던 이광수라는 인물이 있었다. 1922년 그는 잡지 ‘개벽’에 ‘민족개조론’을 발표해 국민들을 분노케 만든다. ‘나라를 뺏긴 것은 우리 잘못이다’라는 것이 민족개조론의 요지다. 민족 개조론은 먼저 조선 총독부에 의해 크게 선전된 독립불능론을 뒷받침했다. 그 근거로, 한국 민족 성격의 결함, 인종적 열악과 저능 등을 제시했다. 한국민족이 식민지민으로 전락하고, 또 못사는 것은 모두 한국민족의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또 독립 운동자를 비난하고 독립운동의 무위를 강조함으로써 민족해방투쟁을 포기하도록 설득했다. 게다가 모든 활동은 비정치적이어야 한다고 못박음으로써 일제의 후견아래서 문화운동을 전개할 것을 주장했다.
향산광랑(香山光郞). 이광수의 일본 이름이다. 우리민족이 열등하다고 자기를 부정했던 그가 당대 지식인 중 가장 먼저인 1938년 일본식 이름을 썼다. 일제가 창씨개명을 시행하기 벌써 2년 전의 일이다.
그는 또 논설 ‘의무교육과 우리의 각오’, 시 ‘조선의 학도여’, 수필 ‘성전 3주년’, 방문기 ‘자원병훈련소’ 등 여러 장르를 통해 일제를 찬양한다. 타고난 글재주를 오로지 일제를 칭송하고 떠받드는데 감격하고 또 감격하듯 봉헌했다. 그의 민족에 대한 비관론적 견해는 많은 비판을 면치 못했다. 반역사적이며 반민족적이라는 비난을 받는 것은 당연했다. 무엇보다 민족에 대한 배신을 도덕적으로 위장한 글이라는 혹평을 면치 못했다.
민족개조론을 목청껏 울부짖었던 춘원. 그가 아무리 뛰어난 인문적 바탕과 문학적 재능을 지녔다 한들 존경과 숭앙의 대상이 되지는 못한다. 바로 나라의 정신과 지식인의 절조를 팔아먹었기 때문이다. 춘원은 자기를 속이는 바보다. 못난 바보다.
요즈음 같은 난세에 춘원을 능가하는 한 구세주(?)가 나타났다. 바로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다. 그 위인은 자칭 언론인이요 기독인이라면서 의기양양해 한다. 그가 과거에 떠벌였던 말이나 끄적였던 글조각들이 평지풍파를 일으키고 있다. 무엇보다 가관인 건 그가 툭하면 하나님을 앞세운다는 점이다.
“우리 나라를 일본 식민지로 만든 것은 하나님의 뜻이다.” “너희들은 이조 500년을 허송세월 보낸 민족이다. 너희들은 시련이 필요하다.”
“남북 분단을 만들어 주신 것도 하나님의 뜻” “그 당시 우리 체질로 봤을 때 한국한테 온전한 독립을 주셨으면 우리는 공산화될 수밖에 없었다”
그 위인이 한술 더 뜬다. “조선 민족의 상징은 게으른 거야. 게으르고 자립심이 부족하고 남한테 신세지는 거, 이게 우리 민족의 디엔에이(DNA)로 남아 있었던 거야” 우리 민족을 비하하는 발언들, 어디서 많이 익은 표현이다. 바로 춘원의 민족개조론에서다. 이는 일본의 식민지 지배가 불가피했다는 일본 극우세력과 친일파들의 논리와 빼닮았다.
그는 스스럼없이 ‘이조(李朝)’라는 명칭을 사용한다. 이 또한 춘원을 판박이했다. 일제는 조선을 ‘이조’라 폄칭했다. ‘한 나라가 되지 못한 이씨의 부족사회’ 수준으로 깔보는 멸칭이었다. 그래서 조선백자는 ‘이조백자’, 조선왕조실록은 ‘이조실록’ 따위로 깎아내렸다. 이런 못된 습성은 한국의 식민사학자들이 따라 하고 아직도 잔재가 남아 있다. 문 후보자가 일제시대 교육을 받을 만큼 나이가 많은 것도 아닌데 어디서 역사교육을 어떻게 받았는지가 의문스럽다. 과연 그런 그에게 바로 잡힌 역사관이 깃들어 있을지 모를 일이다.
“전형적인 식민사관이 DNA로 몸에 배어 있는 분” “기본이 흔들린 역사인식을 갖고 있다”
“이런 사람이 어떻게 대한민국 총리 후보자가 됐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평이 벌써부터
온 천지에 넘쳐난다. “문 후보자의 발언들은 일본 극우주의자들의 망언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이라며 “이런 사람이 어떻게 총리가 될 수 있겠느냐”는 목소리도 높다.
일제 강점이 하나님의 뜻이고 그로 인해 우리가 발전했다는 문 후보자 논리대로라면 독립운동이 무슨 의미가 있으며 목숨을 바친 독립선열들은 도대체 무슨 일을 했다는 말인가. 이런 생각과 표현들이 헌법 전문으로 규정된 기본정신마저 부인한 것이 아니면 뭐라고 할지 말문이 막힌다. 백보 양보해 문 후보자가 학자라면 자기신념이 하나의 극단적인 주장으로 평가받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라 전체의 일을 이끌어 갈 총리가 돼서는 안 된다.
그는 결코 언론인의 양심과 절조도 갖추지 못했다. 차라리 약점을 지닌 사람들을 갈취하고 그것으로 입에 풀칠하는 삼류 언론인조차도 못된다. 그런 그를 일국의 행정권을 좌지우지하는 총리후보로 내세웠다. 도대체 인사추천과 검증은 어떻게 하길래 이 따위로 신념이나 국가관이 제멋대로인 사람이 버젓이 추천을 받는단 말인가. 국민들의 상처받은 마음을 어루만지고 감싸주기는 커녕 외려 가슴에 부아를 지르는 결정을 눈 하나 깜짝 않고 내리는 청와대가 한심하다. 무능한 것인지 고집이 센 것인지 분간이 안 된다.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하여 뇌물을 주는 사람에 대해 그것을 거부한 사람이 있다. 동한(東漢)의 양진(揚震)이다. 대낮처럼 밝은 세상이 어디 먹구름 잔뜩 낀 암흑세상인줄 알았단 말인가. 참 아둔하거나 벽창호가 아닐 수 없다. 하물며 대명천지에 자기 입으로 말한 내용을 마치 아닌 것처럼 생각한 것도 우습다. 게다가 한 술 더 뜬다. 언론인이랍시고 버젓이 써낸 칼럼을 아닌 것처럼 우겨댄다.
문 후보는 결코 준재가 아니다. 넋 빠진 바보다. 한 걸음 더해 교활한 바보다. 어찌어찌 해서 총리 한번 해보겠다는 약삭빠른 생각이다. 제 생각과 안목도 갈무리하지 못한 주제에 어찌 국민의 아픈 가슴과 쓰린 마음을 달래겠단 말인가.
호랑이의 줄무늬는 밖에 있고 사람의 줄무늬는 안에 있다고 했다. 티벳 라다크 지역 속담이다. 사람은 외모보다는 내면이 아름다워야 한다는 뜻이다. 겉으로는 멀쩡한데 속으로는 뒤틀리고 배배 꼬인 심보를 가진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이들더러 아름답다고는 않는다. 위선자이거나 이중인격자라고 부르기 마련이다. 그들에게는 내면에 무늬가 있는 게 아니라 얼룩이 있는 게다. 그것도 아주 고약하고 구린 냄새가 나는 얼룩이다.
아무도 모르리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먼저 하늘이 알고, 땅이 알며, 너도 알고 있고, 나 또한 알고 있으니(天知 地知 子知 我知) 말이다. <화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