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언각비 47> 마음에 품는 두 개의 돌

“사람은 모름지기 두 개의 돌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하나는 거울(龜鑑)이고, 다른 하나는 숫돌(他山之石)이다. 거울은 올곧은 일을 하는 성인의 삶인데 거기에 몸과 마음을 비춰보며 살아야 한다. 숫돌은 못된 짓을 하는 사람의 행실이다. 그것은 다른 산에서 나는 우둘투둘한 돌일지라도 내 심신을 벼리는데 숫돌로 쓰면 된다.”

평생을 수행한 어떤 구도자에게 어린 시절 할아버지가 일러준 말이다. 그 신심 깊은 구도자에게조차 할아버지의 가르침은 끝끝내 마음 속 가르침이 됐다.

자연은 때에 맞춰 나뭇잎에 물이 들고 곡식들은 열매를 맺는다. 서리가 내리고 바람끝이 서늘하다. 바야흐로 가을이다. 이처럼 자연의 변화는 순행하는 틀이 있다. 하물며 사람임에랴. 사람도 자연의 한 부분임은 자명할 터. 하여 편하고 아름다운 음악을 듣노라면 사르르 잠이 온다. 반대로 잠을 자다가도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면 잠에서 깬다. 아름다운 음악을 들으면 마음이 편안해져 잠이 오는 것이고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면 마음이 불편해져 깨게 된다. 자연스런 모습이다.

자나 깨나 우리는 듣기 좋은 소리, 거북스런 소리와 더불어 산다. 소리뿐만이 아니다. 음식이나 약, 나아가 ‘아는 것’까지도 마찬가지다. 몸과 마음에 좋은 것이 있는가 하면 해로운 것도 즐비하다. 문제는 좋은 것과 해가 되는 것을 어떻게 골라내 섭취하느냐다.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 모두 도움만 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유익한 물건도 해를 끼칠 때가 있다. 반대로 때론 해롭던 것들도 유익해질 때가 있다. 정도의 문제다. 좋은 것도 정도껏 누려야지 지나치게 탐하면 해악이 된다. 바로 약과 독이 대표적이다. 아무리 약이 좋다 한들 과용하면 독이 되지 않던가. 이처럼 한 부분만 보면 한 켠의 진실만 알게 된다. 그건 곧 반쪽짜리 진실이다. 사실이지 온전하지 않은 반쪽짜리는 진실이랄 수도 없다.

 

한 예를 들어보자. 백화점에는 왜 거울이 수없이 많지만 시계와 창문은 없는가. 다 이유가 있다. 물론 이익을 크게 얻으려는 백화점의 전략이다. 기둥이나 벽을 거울로 장식한 이유는 뭔가. 사람들은 거개가 거울이 있으면 쳐다보는 습관을 갖고 있다. 때문에 그만큼 걷는 속도가 느려지고 주위 상품에도 더 관심을 갖게 된다. 반면 시계가 없는 이유는 뭔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쇼핑을 하라는 치밀한 계산의 결과다. 따뜻한 배려가 아니다. 행여 쇼핑에 열중하던 아줌마들이 저녁 시간이 된 것을 눈치 채고 집으로 향하는 것을 막겠다는 뜻이다. 이처럼 백화점 조명들은 영업시간 내내 대낮처럼 불을 밝힌다. 닭들이 대낮인줄 알고 배불리 모이를 먹도록 만드는 양계장의 불빛이나 매 한가지다.

카지노에도 전략적인 비밀이 있다. 카지노에는 없는 게 세 가지다. 바로 창문과 시계, 거울이다. 창문은 해 뜨는 것 보지 말라는 이유다. 시계는 당연히 시간이 흐르는지 알 것 없다는 뜻에서다. 거울이 없는 건 왜인가. 바로 초췌한 자신의 모습을 보지 말라는 이유에서다. 밤을 새워 가진 돈을 다 잃은 꾼이 말쑥한 차림일 리는 없다. 카지노의 따뜻하고 자상한 배려가 아니다. 백화점과 카지노에 창문과 시계가 없는 건 마찬가지다. 하지만 백화점엔 있고 카지노엔 없는 게 거울이다. 여기에 세상물정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한곳엔 초췌한 자신의 모습을 확인하라는 뜻으로, 다른 한곳엔 확인하지 말라는 뜻이 숨어 있다. 이쯤은 모두가 아는 상식이다.

다음엔 맥도날드의 비밀을 엿보자. 맥도널드에는 3대 원칙이 있다. ‘30초 ․ 5분 ․ 15분’이 그것이다. 여기엔 회사측 고도의 전략이 숨어있다. 즉 손님이 들어오면 30초 안에 주문하게 하라. 주문하면 5분 안에 물건이 나오게 하라. 손님이 15분 이상 안에 머무르지 못하게 하라는 전략이다. 그밖에도 또 있다. 맥도날드의 의자는 모양은 예쁘지만 오래 앉아있기에는 불편하다. 또한 음악은 굉장히 경쾌하고 빠른 곡을 틀어준다. 빨리 먹고 나가라는 숨어있는 심리 전략 때문이다. 그래야 매장에 손님이 여러 차례 번갈이를 할 수 있겠다는 셈법이다. 햄버거가 배고픔을 해결해 주는 유익한 먹을거리지만 이처럼 철저히 손님을 돈줄로 보고 있다는 것을 놓쳐서는 안 된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움직임과 사람들의 행동에는 모두 다 속셈이 있다. 나쁜 뜻이든, 좋은 뜻이든 마찬가지다. 그걸 그냥 드러나는 모습만 본다는 것은 멱부지 짓이다. 그럴 사람은 적겠지만 본디 자신을 잊고 세상 물결에 휩쓸리는 사람은 아둔패기나 다름없다. 비유컨대 어느 술 취한 사람이 길 건너편에서 열쇠를 잃어버리고 반대편 가로등 아래에서 열심히 열쇠를 찾고 있다고 하자. 이 사람이 열쇠를 찾을 수 있는가. 당연히 절대 아니다. 그러니 본디 자신을 온전히 챙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 답은 너무도 뻔하다. 세상을 제대로 볼 줄 아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여기서 깨우침과 감각이 남들보다 한참 앞섰던 어떤 이의 말을 돌이켜보자. “가끔 한국의 일류 인사를 만나보면 나는 그들의 상식 부족 때문에 민망해 거북스러울 때가 많다. 1990년 유명한 문화정책자 한 분은 현대미술가 앤디 워홀의 이름을 몰랐다. 같은 해 나에게 현대미술품 수집에 관해 지도를 받고자 찾아온 재벌 부인 일곱이 있었다. 그들 중에서 재스퍼 존스, 로젠퀴스트의 이름을 아는 분이 하나도 없었다. 때문에 그들이 수학과 물리학의 프랙털(fractal) 개념에 금시초문인 것도 당연하다.”

실제로 일반인에게 재스퍼 존스나 제임스 로젠퀴스트가 생소한 건 사실이다. 재스퍼 존스는 크레이그 실비의 소설 ‘재스퍼 존스가 문제다’의 주인공이다. 소설에서 존스는 악명이 높은 문제아다. 도둑질에 거짓말, 폭력은 기본이요, 무단결석도 밥 먹듯이 한다. 작고한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 어머니와 백인 아버지 사이에 태어난 혼혈아다. 술주정뱅이 아버지와 단 둘이 살고 있는 존스는 마을에서 도둑질이나 방화 같은 나쁜 사건이 터질 때마다 늘 범인으로 지목되는 ‘악마’ 같은 존재다. 하지만 10대 왕따이면서도 친구의 도움을 얻어 자신의 억울함을 풀고 진실을 말하는 용기있는 소년이다. 로젠퀴스트는 광고간판의 수법으로 그려진 콜라주를 배치한 화면으로 독특한 분위기를 풍기는, 팝아트의 거장이다.

이런 인물들을 재벌 부인들이라 해서 모르라는 법은 없다. 존스나 로젠퀴스트가 문화 일반에서 어지간히 먹물을 먹지 않으면 쉽사리 입에 올릴 수 없는 인물들이므로 눈감고 넘어갈 수도 있다. 하지만 세계적으로 내로라하는 예술가에게 개인교수를 받으러 온 재벌 사모님들이라면 그쯤의 인물에 대한 이해는 예습돼 있어야 한다. 그것이 마땅한 자세 아니겠는가. 그건 그렇다 치자. 명색이 문화정책자란 사람이 앤디 워홀을 모른대서야 참으로 얘기가 안 된다. 앤디 워홀은 마릴린 먼로의 얼굴사진을 색깔과 음양을 달리해 반복 배치한 작품을 만든 인물이다. 그만큼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팝아트의 거물 아니던가. 그런데도 그를 모르다니 문화정책자의 신분이 우스워진다.

 

그같은 지적은 세계적 예술가 백남준이 벼르고 벼른 말이었다. 결코 그냥 흘러 지나가는 말이 아니었다. 우리나라의 풍토에 대한, 여러 모로 뼈있는 언급이기도 했다. 곧 우리나라 평균적 지식인들의 지식정보 부족을 꼬집은 의미심장한 비판이기도 하다.

비틀즈 음악이 두고두고 인기가 있는 것도 다 이유가 있다. 단지 작곡자가 감성을 자극하는 음악을 만들었다고 생각해서는 무미건조하다. 거기에도 숨겨진 과학이 있다. 대체로 귀에 쏙쏙 들어오는 음악들에는 ‘1/f의 법칙’(여기서 f는 진동수)이 숨어 있다고 한다. 록키 산맥의 봉우리들을 음표로 옮겼을 때도 역시 1/f의 패턴을 따른다는 해석도 있다. 신기하기도 하다. 그래서 이 법칙이 들어맞는 음악을 자연의 패턴, 프랙탈의 음악이라고도 부른다. 사람들이 선호하는 음악이 왠지 모르게 끌린 데는 이런 이유가 있었다. 그저 우연히 일어난 일이 아니다. 세상 일에는 다 까닭이 있게 마련 아니던가.

 

사람에게 도움 되는 것들은 제각기 따로 있다. 음악이나 소리를 듣고 쾌감이나 편안함을 느끼는가 하면, 반대로 어떤 때는 불쾌감이나 불안을 느끼는 경우도 많다. 이러한 현상은 이른바 ‘f분의 1 진동의 법칙’에 따라 나뉜다. 소리의 성질이 1/f 대각선에 가까울수록 우리에게 마음의 평정·안심·편안함을 느끼게 한다. 이처럼 f분의 1 선상의 자연의 소리로는 파도소리, 작은 시냇물의 흐름소리, 차분히 내리는 빗방울소리 등이 꼽힌다. 새들의 울음소리 심장 박동 소리 등 자연의 소리들도 대부분 f분의 1 패턴을 갖는다. 그리하여 마음이 아늑해지며 평화로운 상태가 된다.

반면 마구 쏟아지는 폭우소리, 증기 기관차 소리, 급하게 치는 종소리, 사이렌 소리 등 인위적인소리는 1/f선상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불안감과 공포감을 느끼게 한다. 특히 딱딱한 물건으로 유리창을 긁는 소리는 이 규칙성에서 엄청나게 벗어난 소리라고 할 수 있다.

 

듣기 좋은 소리라면 즐겨 듣겠지만 듣기 거북스런 소리들을 멀리 하려면 마음이 잘 가다듬어져 있지 않으면 안 된다. 달리 말해 마음의 거울이 잘 닦여져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우리 선조들은 독(毒)을 만져서 길들이고, 독을 듬직한 친구로 만들었다. 마치 난폭한 이리를 길들여서 개로 만들고 들소의 품종을 개량하여 홀스타인 젖소로 만들었듯이 말이다.

매만지고 길들여져서 인간의 친구가 된 독은 ‘약’이라는 이름을 얻게 됐다. 약은 어떤 의미에서 보면 인류의 가장 듬직한 반려자이다. 상처를 입어 고통에 시달릴 때 진통제 한 봉지가 얼마나 고마운가. 고열로 앓을 때 해열제 역시 고맙기는 매한가지다. 이처럼 독은 약이 될 수도, 약도 독이 될 수도 있다. 또 독도 다루고 매만지면 약이 된다. 그래서 독을 대하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마음이라는 것은 소라는 놈하고 똑같다. 가만 놔두면 일을 안 해. 주인이 한눈을 팔아도 남의 곡식 밭에 들어가고, 한사코 고삐 놓지 말고 풀 잘 뜯겨라”

앞서 말한 구도자의 할아버지가 남겨준 가르침이다. 우리네의 마음을 잘 간수하고 추스르라는 뜻일 게다. 허나 거기엔 세상 모든 일에 넋을 뺏기지 말고 자신의 몫인 마음의 중심을 잘 잡으라는 뜻도 담겨있는 듯싶다. 더불어 마음 속에 거울과 숫돌이란 두 개의 돌은 꼭 간직해야 할 일이다. 사족을 달면 그 구도자는 초의선사였다. <화산>

This Post Has One Comment

  1. 박천배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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