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언각비 38> 아서라 말아라, 알면 무너질까 두렵다

사람 사는 세상은 때로 상식을 뒤집어서 생각해야 할 때가 있다. 가장 좋은 기계가 가장 졸렬한 제품을 만들고 가장 나쁜 기계가 가장 훌륭한 제품을 만든다. 거의 드문 일이지만 현실에서는 어쩌다 그런 경우가 생긴다. 왜냐하면 인간이 기계를 조작하기 때문이다. 본시 기술이 비슷하다면 성능이 우수한 기계가 좋은 제품을 만드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사람은 다르다. 가장 호강스런 처지에 있는 사람이 가장 심한 거짓말쟁이가 되고 가장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이 가장 정직한 이가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요즘 세상 돌아가는 모습이 꼭 그런 꼴이다.

 

옛날 중국에서 한신의 책사인 괴통은 한신이 유방에게 토사구팽 당할 것을 미리 알고 있었다. 하여 유방을 배신하고 목숨을 부지하라고 간했다. 그런데 한신이 죽자 잡혀와 팽형을 당하기에 이르렀다. 한 고조가 말했다. “이 놈을 삶아라.” “아! 원통하구나. 삶아지다니.” “너는 한신에게 배반하기를 교사했다. 무엇이 원통하냐?” 이 때 괴통이 한 말이 ‘걸구폐요(桀狗吠堯)’ 고사다. 선악에 관계없이 자기 주인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을 가리킨다.

“도척(盜跖)의 개가 요(堯)임금을 짖는 것은 요임금이 어질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개는 본래 그 주인이 아닌 사람은 짖는 것입니다. 그 때에 신은 다만 한신을 알았을 뿐, 폐하는 알지 못했습니다.” “이 자를 석방하여라.” 드디어 괴통은 목숨을 구했다. 도척은 흉악한 도적을 이른다. 괴통은 자신이 ‘한신의 개’임을 분명히 말했다. 그러니 주인이 아닌 유방을 향해 짖는 것은 당연하다고 설파했다. 유방은 화가 치밀었지만 딴에 이치는 맞는 말이어서 살려줄 수밖에 없었다.

폭군 걸(桀)왕의 개가 성군 요(堯)임금을 보고 짖다니 참 어처구니가 없다. 개이니만큼 그럴 수밖에 없다? 천만에, 사람은 더한다. 중국 하(夏)나라 걸왕의 개는 비록 제 주인이 포학한 군주일지라도 오직 걸왕만을 주인으로 알고 따랐다. 때문에 어진 요임금을 보고서도 짖었다. 그렇다면 이 개들은 그야말로 주구이거나 똥개가 아닐 수 없다.

국정원 대선개입 국정조사에서 드러났지만 ‘걸왕의 개’들은 쌔고도 쌨다. 그들은 내놓고 짖어댔다. 마치 자기 주인을 위해 충성을 다했다는 듯이 뻔뻔하기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저들이 왜 그래야만 하는지 사정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저들의 행태를 보면 먹이 주는 주인에 대한 충성심의 발로라는 것쯤은 충분히 짐작이 간다. 하지만 그들은 주인을 잘못 알고 있거나 우선 편하고 보자는 결과 그렇게 됐다. 그 태도를 보면 가련하기조차 하다. 실상 짖어대는 개만 탓할 일은 아니다. 개는 개의 수준에서 판단할 터이니까. 그러나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자기 먹이를 주는 주인이 누군지 한번쯤 곰곰 생각해보지 않았다는 결론이 나온다. 먹이를 날라다 주는 사람을 주인으로 착각했을 수 있다는 말이다. 그것이 바로 ‘걸왕의 개’만이 갖는 한계다. 게다가 더 걱정스러운 것은 저들을 지배하고 있는 권위주위, 특권의식, 선민의식이다. 모두가 패배주의나 열등감, 편집증 등의 다른 모습이라고 보지만 그 빗나간 심리가 바로 자신들의 잘못을 변명하거나 합리화하는 도구가 되기 때문이다. 누구를 주인으로 받드느냐 하는 것은 전적으로 본인 판단에 따를 일이다. 그러나 적어도 ‘걸왕의 개’인지 아닌지는 분간할 수 있는 능력이 아쉽다.

 

딱 한 사람 권은희 수사과장은 짖지 않았다. 주인이 누구인지를 제대로 알았기 때문이다. 주인은 자기 상관이 아니다. 대통령도 아니다. 바로 국민이다. 권과장은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의 격려전화만 했다는 진술이 ‘거짓말’이라고 또렷하게 말했다. 권 과장의 증언은 십년 묵은 체증을 내리게 해주기 충분했다. 누가 주인인지도 모르는 걸왕의 개들 속에서 권과장만 오로지 청청했다. 그러니 증언이 끝난 후 많은 고교생들이 ‘대한민국 청소년 일동’이라고 쓴 선물을 들고 권과장을 찾아오는 것은 매우 유쾌한 일이었다. 더 나아가 ‘권은희 수사과장님! 진실과 정의를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쓴 감사의 글은 더욱 가슴을 벅차게 만들었다.

반면 대선을 사흘 앞두고 ‘허위발표’로 국민을 속여 선거에 영향을 미치려 한 김용판 전 청장의 행태는 참으로 가관이었다. 착각 속의 주인에 대한 충성도 아닌, 권력의 측은한 노예수준이었다. 그럼에도 자기는 걸왕의 개가 아니라고 확신에 찬 표정이었다. 오히려 마치 자기가 어려운 상황 속에서 대단한 의로운 일을 한 양 우쭐대기까지 했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증언은 한 술 더 떴다. 국정원 직원 김하영씨가 발각된 뒤 조직적으로 국정원이 댓글 등을 삭제한 사실만 놓고 보더라도 원 전 원장 쪽 주장은 자기모순이자 궤변이다. 국정원 직원들의 정당한 업무라면 은폐할 것이 뭐 있나. 오히려 공개적으로 업무의 당위성을 설명하는 게 맞는 것 아닌가. 원 전 원장이 국회 국정원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증인 선서를 거부하고 거짓말과 궤변으로 일관한 것은 매우 오만무례한 행위가 아닐 수 없다. 그처럼 국민을 기만하고 우롱할 수가 없다.

 

검찰은 원 전 원장이 국정원법에 엄격히 규정된 국내 직무 관련 범위를 넘어서 북한이 아닌 우리 국민을 상대로 대북심리전을 했다며 사례를 제시했다. 또 그는 전 부서장회의에서 “인터넷 종북좌파 세력을 다 잡아 우리가 청소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국정원법상 북한의 선동에 대응한 국내 보안정보 수집이 가능하지만, 이렇게 수집된 정보는 방송통신위원회 및 국방부, 수사기관에 전달하는 게 적법하다. 그럼에도 국정원이 직접 나서서 일반 국민을 상대로 여론전을 펼쳐 정치·선거 개입을 하는 것은 국정원의 직무 범위를 벗어났다는 게 검찰의 설명이다. 심리전단의 선거개입과 정치공작 활동은 참으로 충격적이다. 심리전단 70여명이 매뉴얼에 따라 매일 주요 이슈에 관한 논지대로 게시글․댓글을 올리고 찬반 클릭을 하는 등 일반 국민을 상대로 선거와 정치 개입을 했다고 한다.

원 전 원장은 검찰이 밝힌 사실도 부인하는 거짓말꾼이다. 특히 “댓글 작업이 대북 심리전 차원에서 이루어졌다”고 발언했다. 그는 회의 때 걸핏하면 야당과 시민단체까지 ‘종북’으로 몰며 일반 국민을 공작 대상으로 삼았다고 한다. 과연 용납할 수 있는 일인가. 심지어 부서장회의에서 “판사도 다 똑같은 놈들”이라며 사법부까지 ‘종북’ 딱지를 붙였다고 한다. 오호라, 기가 막힐 일이다.

대북 심리전이라면 내용이야 어떻든 북한에 대하여 심리적인 공세와 대응을 하는 전술이다. 그렇다면 국정원직원들의 인터넷활동이나 댓글을 북한쪽이 확인하고 읽어봐야 한다는 전제가 돼야 한다. 그러려면 그들이 우리의 포털 사이트를 비롯한 각종 사이트에 접속 할 수 있어야 한다. 과연 이게 손쉬운 일인가. 북한 측에서 무시로 드나들 수 있을 만큼 우리의 인터넷 통신은 적성국에 대한 차단 장치도 없는가. 쉽게 이해가 안가는 일인데도 대북이라는 표현을 강조한다. 내용도 그렇다. 대선 당시 야당 후보를 비방하는 글이 대북심리전과 무슨 함수관계가 있다는 것인지. 도무지 수긍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대북 심리전을 해야 한다면 북한 사람들이 보는 사이트에 가서 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왜 우리나라 사람들이 많이 보는 사이트에서 활동을 하는가. 그러니 대남심리전이란 말을 들을 수밖에 없다. 더구나 북한 주민들이 인터넷을 자유롭게 사용할 만큼 컴퓨터가 널리 보급돼 있지도 않은 현실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이트에 들어가서 이런저런 아이디로 대량으로 리트윗되는 댓글을 다는 것이 대북심리전이라니 억지가 극에 이르렀다. 더구나 그런 말을 곧이곧대로 믿으라는 것인가.

이제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은 간단히 매듭지어질 단계를 넘어섰다. 그저 ‘맞다, 틀리다’의 문제를 넘어 ‘좋다, 나쁘다’의 문제로 확산됐다. 모두가 박근혜대통령 때문이다. 그는 끊임없이 이어지는 촛불시위와 여러 종교 성직자, 대학교수, 농민, 심지어 나어린 중고교 학생들의 시국선언과 국정원 개혁 주문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나몰라라 하고 한없이 미적거리다가 마지못해 한다는 말이 국민을 더더욱 기가 차고 분노가 치밀게 만들었다. “지난 대선때 국정원으로부터 어떤 도움도 받지 않았고, 선거에 활용한 적도 없다” 이 말을 어떻게 들어야 하는가. 말 그대로 믿어달라는 얘긴가. 그렇다면 국민을 아주 건깡깡이로 봤다는 말이다. 아니면 나는 그 사건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별도의 문제라는 뜻인가. 그렇다면 박대통령의 인식수준은 아주 단순하고 저급하거나 옹고집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시치미를 떼는 데도 정도가 있다. 대선에 국정원이 개입했다는 검찰의 수사결과가 나왔는데도 객관적인 사실마저 부인한다는 말인가. 그처럼 뻔뻔한 대통령이라면 더 이상 국민과는 소통할 의사가 없다는 뜻이다. 그러니 혼자서 지지고 볶고 마음껏 국정을 요리하시라고 권해드린다. 최고책임자는 자기가 하지 않은 일에 대해서도 책임을 져야 한다. 그것이 도덕적으로나 통치권자로서나 마땅한 자세다. 그런 기대는 속절없는 환상에 지나지 않는 것인지 참으로 안타깝다. 함수초라는 화초를 보자. 부끄러움을 아는 풀이다. 풀조차도 부끄러움을 아는데 사람은 어찌 이다지도 낯이 두꺼운가.

‘나 못 믿어?’라는 말이 요즘 젊은 연인들 사이에 자주 쓰인다고 한다. 가까우면서도 그만큼 서로간의 신뢰가 적다는 얘기다. 혹자는 가장 큰 거짓말이 ‘사랑해’라고도 한다. 그 정도로 지금 우리의 사회상이 서로 간에 믿음을 주지 못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아무리 그래도 뻔한 거짓말을 으시딱딱하게 하는 꼴은 곱게 봐주기 어렵다. 하물며 믿어줄 수는 더욱 어림없는 일이다. 아서라, 말아라. 진실도 좋지만 우리 사회가 어디까지 썩고 어디까지 구멍이 뚫려있는지 알고 나면 무너질까 두렵다. <화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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