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언각비 30> 뻔뻔하거나 간교하거나

같은 말이라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 느낌이 많이 달라진다. 그것이 세상의 이치요, 사람살이다. 더구나 누구 입에서 말이 나오느냐에 따라 그 뜻은 하늘과 땅만큼이나 차이를 보인다.

 

진(晉)나라가 한창 혼란에 빠져있을 때, 손초(孫楚)라는 젊은이가 있었다. 그는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고 산림에 은거하기로 결심하고, 친구 왕제(王濟)에게 자기 생각을 털어놨다.

손초는 “돌을 베개 삼아 눕고 흐르는 물로 양치질을 하고 싶다(침석수류 枕石漱流)” 고 말한다는 것이 그만 “ 돌로 양치질하고 흐르는 물을 베개 삼겠다(수석침류 漱石枕流) ”고 잘못 말했다. 이내 왕제가 웃으며 “침석수류겠지” 하고 실언임을 지적했다. 손초는 부끄러웠지만 자존심이 상해 억지를 부리며 우겼다. “흐르는 물로 베개를 삼겠다는 것은 고대의 은자 허유처럼 쓸데없는 말을 들었을 때 더러워진 귀를 씻기 위해서이고, 돌로 양치질한다는 것은 내 이를 단단히 하기 위해서일세.”

 

때 아닌 쿠데타의 망령이 온 나라를 배회하고 있다. 그것도 참회하고 뉘우쳐도 시원찮을 사람들이 되레 큰소리를 쳐대니 말문이 막힐 따름이다.

새누리당 박근혜 의원이 얼마 전 5·16군사쿠데타에 대해 “돌아가신 아버지로서는 불가피하게 최선의 선택을 한 게 아닌가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5·16이 오늘의 한국이 있기까지 초석을 만들었다고 본다”는 주장도 덧붙였다. 5·16 쿠데타를 ‘구국의 혁명’이라고 찬양했던 지난날의 인식과 전혀 다를 바 없다. 이런 언급 속에는 ‘아버지’ 박정희에 대한 존경심이 깊숙이 배어 있다. 단지 한 집안의 큰 딸이, 돌아간 아버지에 대한 회한이나 그리움에 사로잡혀 내린 판단이라면 누가 뭐라 하겠는가. 요는 그가 일국의 최고지도자를 꿈꾸는 위치라는 점이다. 그런 처지에서 내린 해석으로는 도무지 수긍키 어렵다.

 

그런데도 유신독재에 대해서는 “국민과 역사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고 물러섰다. 박근혜 의원은 역사가 판단하기 이전에 자신의 입장을 밝히는 게 도리이다. 대통령 후보로 나서고자 한다면 자신의 역사적 식견을 명확하게 드러내는 게 당연하다. 어떤 역사의식을 가졌는지 유권자들은 알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냥 후대의 역사 평가에 맡기자니 아직도 덮을 일이 있다는 것인가. 유신체제가 유례없는 1인 종신 독재채제라는 것은 교과서에도 나와 있는 상식이다. 그럼에도 박 의원은 오로지 아버지를 감싸고 찬양하고, 아버지의 명예를 회복하는 것을 자신의 역사관으로 삼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알 길이 없다.

 

젊은 날의 거의 모든 시기를 청와대에서 보낸 박 의원이 어쩌면 박정희를 대한민국과 동일시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혹여 대한민국은 아버지가 만든 나라, 그리고 그 딸이 박정희의 유업을 계승한다는 인식이 깔려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를 일이다.

헌데 무엇이 그다지도 ‘불가피’했으며 과연 그 가치판단은 오로지 ‘아버지’만이 최고로 현명하게 내릴 수 있는 것인지 의아하다. 덧붙여 “피해를 보고 고통 받은 분들에게 사과한다”고는 했지만, 진정함이 전혀 가슴에 와 닿지 않는다. 아버지는 존경해도 통한의 아픔을 간직한 이들에게는 마지못해 냉랭하고 의례적인 인사치레만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정 기간 퍼스트레이디 노릇을 했던 박 의원은 아버지의 잘못에 대해서도 일정 부분 책임을 느껴야 한다. 따라서 직접적인 피해자는 물론 국민 모두에게 마땅히 사과가 아닌 사죄를 해야 한다.

 

저간에 일련의 언급들은 박 의원이 여당 대통령후보로 유력한 정치인으로서 한 말이다. 그저 가벼운 생각이 아니라 여러 번 곱씹고 반추했을 생각이다. 또 작심하고 내놓은 소신에 찬 판단이다. 그 결론이 바로 ‘불가피한 최선의 선택’이다. 허나 이는 지극히 주관적이고 자의적(恣意的)인 해석이다. ‘아버지로서는’이란 조건이 붙어있기에 그것은 가족사적으로는 얼마든지 자유로운 결론일 수 있다. 하지만 공적으로는 대단히 큰 문제가 된다. 설사 박 의원의 아버지로서는 불가피했을지 모르겠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처럼 생각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박 의원의 판단은 염려스럽기 그지없다. 만일 박 의원이 대통령이 된다면 쿠데타를 혁명으로 바로잡겠다면서 덤비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박정희의 내면세계나 당시 4·19혁명 이후 상황을 볼 때 5·16은 구국의 일념과 전혀 무관했다. 권력에 눈먼 일군의 정치군인들이 쿠데타를 통해 헌법을 유린한 반란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박정희는 식언을 밥 먹듯 하는 사람이었다. 물론 그럴싸한 구실만큼은 언제고 내세웠다. 군사쿠데타 이후 우선 그처럼 ‘우국에 찬’ 혁명공약조차 지키지 않았다. 그는 ‘양심적인 정치인에게 정권을 이양하고 군은 본연의 임무로 복귀한다’고 분명하게 공약했다. 그러나 이 약속은 그저 선무(宣撫)용에 지나지 않았다. 놀란 국민들을 일단 구슬리기 위한 달콤한 사탕발림이었다. 결국에는 스스로 ‘양심적인 정치인’이 되는 결정을 내렸다. 그는 그런 자가당착이 부끄럽지도 않은 인물이었다. 군정 시절 박정희는 ‘원대복귀’를 촉구하는 혁명동지들의 요구에 대해 여러 차례 말을 바꿨다. 하여 ‘번의(翻意) 대통령’이란 별명까지 얻었다. 박정희는 또 민정에 이양할 시기가 오자 군정 연장을 위해 아끼던 후배인 최주종 장군에게 역(逆)쿠데타를 권유하는 잔꾀도 부렸다.

 

정치인으로서 맛을 들이더니 한 발 더 나아갔다. 두 번만 한다던 대통령을 세 번 하려고 삼선개헌을 밀어붙였다. 거기다 한술 더 떴다. 이른바 영구집권을 위한 유신개헌까지 막무가내로 강행했다. 평생토록 대통령을 해먹고 싶었던 게다. 그 어떤 허울 좋은 명분도 국민 모두가 꿰뚫고 있는데 자신과 주변의 간교한 추종세력만 아니라고 강변해댔다. 그는 그토록 탐했던 대통령직을 목숨을 잃을 때까지 끝끝내 유지하기는 했다. 결국 목숨과 바꾸기는 했지만 평생대통령이란 최고의 소원은 이룬 셈이었다. 결과만을 놓고 보자. 이들이 처음부터 국가와 민족을 위하기는커녕 권력에만 눈이 멀어 있었던 게 아니라고 누가 장담할 것인가.

 

권모술수 정치의 기본은 지극히 상투적이다. 정당성을 얻기 위해 항상 국가와 민족을 앞세운다. 히틀러가 그랬고 무솔리니가 그랬고 스탈린이 그랬다. 박정희 일파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부패와 구악 일소’ ‘국가경제 재건’ ‘민생고 해결’ 등을 내걸고 5·16을 일으켰다고 ‘혁명공약’에서 밝혔다. 하지만 그 공약을 온전히 지키지 않음으로써 자신들의 거사 목적이 위태로운 나라의 운명을 구하기 위한 것이 아님을 스스로 입증했다.

 

박근혜 의원은 오로지 아버지를 향한 사무치는 그리움 때문에 역사를 마음대로 해석하고 있다. 그런 나머지 역사교과서에도 쿠데타로 규정한 사실을 최선의 선택이라고 강변해댄다. 국가가 혼란스럽고, 빈곤에 허덕인다고 해서 쿠데타가 정당화된다면 이 세상 어떤 쿠데타인들 정당화 안 될 이유가 없다. 때문에 박 의원의 발언에는 민주주의 헌정질서를 근본적으로 부정할 수 있는 위험한 역사인식이 깔려 있다. 불가피한 국면에서는 쿠데타도 용인될 수 있다는 매우 방자한 생각이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민주주의 제도하에 머물고 있는가.

 

박근혜 의원은 여기서 더 나아가 5·16쿠데타가 있었기에 오늘의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이 있다고 주장한다. 인과관계를 이처럼 단순하게 정리하는 박 의원의 역사인식은 참으로 간명해서 편리하다. 단순히 무지한 것인지, 속내는 그렇지 않으면서도 뻔뻔한 것인지, 아니면 약삭빠르게 셈이 끝난 간교함 때문인지 갈피를 잡기 어렵다. 차라리 박정희가 없었다면 오늘처럼 복된 대한민국이 있었겠느냐고 따지는 것이 오히려 솔직한 태도다. 그런데도 박근혜 의원에게 반성과 성찰의 낌새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박 의원의 이런 인식은 크나큰 문제다. 단지 한 개인이라거나 국회의원으로서 보인 입장이라면 그다지 신경 쓸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게 아닌 것은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무엇보다 헌법을 수호해야 할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먼저 대통령의 가장 기본적인 의무는 헌법과 국가의 수호다. 외침을 막아내는 것은 물론 내부 쿠데타를 막아내는 일이 그것이다. 그런데 대통령 후보로 나서겠다는 사람이 과거의 군사반란을 ‘불가피한 최선’이라고 강변하다니 도대체 어디까지가 상식인지 의심스럽다. 그렇다면 만약 앞으로 5·16이나 12·12 같은 유사한 군사정변이 일어난다면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의문이다. 그 때도 ‘불가피한 최선의 길’이라고 두둔할 터인가.

 

4·19혁명으로 수립된 민주정부를 전복시킨 5·16쿠데타가 ‘최선의 선택’이라고 하는데, 12·12쿠데타의 장본인인 전두환도 ‘최선의 선택’이라고 강변한다면 뭐라고 답할 것인가. 오죽하면 같은 당 이재오 의원조차 “한일 병합과 6·25 전쟁에 대해 그들 후손이 ‘그때는 불가피한 최선의 선택’이라고 말한다면 우리는 무엇이라고 해야 할까”라고 비판할 정도다.

 

박 의원의 이같은 뒤틀린 역사인식에 대해 ‘헌법 모독’이라는 비난이 드세다. 그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에 대한 모욕이며 국민으로서는 치욕일 수밖에 없다. 부끄럽고 통탄스러운 지난날을 뉘우치지 못하면서 어찌 앞날을 책임지겠다고 큰소리를 치는지 참으로 딱한 일이다. 민주주의를 갈망하며 스스로를 희생했던 무수한 민주열사들이 지하에서 통곡할 노릇이다.

 

무엇보다 역사와 국민적 판단이 끝난 사안을 놓고 박 의원이 주관적 판단을 하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최선의 선택’이라는 말은 주관적인 평가다. 그런 논리라면 도둑질한 사람도 행위자 입장에서 ‘최선의 선택’이라고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5·16 군사쿠데타라는 절대적인 행위가 범죄가 아니냐, 불법 아니냐는 것은 사실관계로 이미 범죄이자 불법으로 드러나 있다. 그런데도 그 엄연한 사실을 새삼 시빗거리로 삼는 데는 속셈이 있어서일 터다.

 

이런 과정에서 박근혜 의원의 ‘과정이 좋지 못해도 결과가 좋으면 된다’는 생각, 사상의 자유보다는 ‘사상의 획일화’를 중요시하는 생각이 드러난다. 이것은 바로 민주적 절차보다는 효율성을 강조했던 박정희 정권의 ‘한국적 민주주의’ 논리와 매우 흡사하다. 박 의원이 박정희 정권에 대해 이미 내려진 역사의 객관적 평가를 못 받아들이는 건 아버지와 딸이라는 특수관계 때문임을 짐작할 수는 있다. 그런 박 의원이 과연 한국의 역사를 진전시킬 역량이 있는지 의구심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어떤 사람이 어느 생각을 갖든지 그것은 자유다. 헌법에 나와 있는 양심의 자유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로 그같은 무한한 자유를 주는 기본 틀인 헌법을 유린한 쿠데타를 불가피한 최선의 선택이라고 규정짓는 사람, 바로 그 정치인이 헌법을 수호할 가장 1차적이고도 막대한 책임을 지는 대통령을 하겠다니 참으로 앞뒤가 안 맞는다. ‘평화를 지키기 위한 전쟁’이라거나 ‘국민을 위한 유신개헌’ 처럼 모순어법이니 말이다.  <화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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