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전> 박용래 약전(略傳) 3 , 이문구

<평전> 

                          박용래 약전(略傳)  

 

                                                         이문구

                                 3

 

 “니가 김동리씨의 뭐이냐? 양아들이냐 의붓아들이냐? 그 댁 머슴이냐 들무새냐? 니가 뭐이간디 사사건건이 그 양반을 업구 촐랑대는 겨?”

이것은 문단이 시끄러울 때마다 조연현씨를 비난하던 나에게 종주먹을 대가며 따져쌓던 박시인의 충고였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인상이 깊던 것은 1973년 8월 며칠경인가에 있은 일이었다. 시인 이 아무가 자기의 고향이 좋다 하여 작가 유광우씨와 함께 옥천을 가다 말고 대전에 머문 날이었다.

우리 일행은 차 시간에 늦어 막차를 놓쳤으므로 대전에서 하룻밤을 묵어 올 수밖에 없었다.

나는 저녁 어스름에 밀려 온 종일 삶던 더위가 그음하려하자 목척교 옆의 허름한 탁배기집으로 박시인을 불러 모셨다. 내가 초면인 유씨 이씨를 인사기키자 박시인은 무슨 바람이 불어 옥천같이 빼어난 고장을 다 둘러보게 되었느냐고 여간 기특해하여 마지 않았다. 이에 힘입었는지 이씨는 시키지도 않은 옥천 지방의 산수(山水)를 자랑삼아 덧거리하였다. 그러자 박시인은 대번에 이씨를 겨누어보며 “산 좋고 물 좋은 것은 어느 두메나 일반인데 시인이 고향을 쳐들면서 어떻게 물경풍치(物景風致)만을 떠들 수 있는가. 그런 것은 관광객에게 맡기고 시인이라면 모름지기 자기 고향이 배출한 시인부터 기리는 것이 마땅하지 않은가” 하고 바로잡아 준 다음

 “내가 옥천을 기억하는 건 오로지 정지용을 낳은 땅이기 때문이오.”

하며 첫잔을 들어 서운한 마음을 가시려고 하였다. 나와 유씨가 숙연히 고개를 숙일 때였다. 물정 모르는 이씨가 “그런가요? 나는 정지용이가 우리게 사람인 줄도 몰랐네……” 하며 새퉁스런 소리로 두런거렸다. 박시인의 결곡한 성미를 알고 있던 내가 이제는 큰일 났구나 싶어 민망한 낯을 둘 데가 없어 하던 순간이었다. 바람벽에서 벼락치는 소리가 터지면서 박시인의 성난 음성이 귓전을 갈겼다.

 “야, 이문구, 너 정말 한심하구나. 너는 이런 것밖에 친구가 읎네? 정지용이 제 고향 선배인 줄두 모르는 이런 무녀리두 시인 명색이라고 하냔 댕기는 겨? 이런 것두 사람이라구 마주 앉어 술 마시네?”

 박시인은 술잔을 벽에 던져 박살내고도 성이 안 풀려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리는 것이었다. 나는 뒤미쳐 따라나가 다른 술집으로 모시고 공자왈 맹자왈 앞뒤를 누누이 변명했지만 그의 옹이진 마음은 저녁내 풀어지지 않았다.

 그 바람에 그날은 박시인도 모처럼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울 일이 없었기에, 아니 울 겨를이 없었기에 끝끝내 화가 풀리지 않았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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