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언각비26> 거짓말이 없는 사회

만일 당신이 들키지 않는다고 한다면 거짓말로써 공금 일억 원을 빼돌릴 텐가? 아닌가?

속고 배신당하고 뒤통수 맞는 게 세상이다. 이런데서 살아남으려면 어찌해야 하는가. 영악스럽게 거짓말과 트릭, 책략과 속임수로 무장해야 하는가. 꾀돌이거나 정상배, 삼류 장사치들 같으면 가능할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네 장삼이사들은 그렇지 못하다.

 

오랜만에 만난 사람에게 “언제 식사 한번 합시다” “다음에 한 잔 합시다”라고 한 말은 진심인가. 원치 않는 선물을 받고서도 “이거 정말 내가 갖고 싶었던 건데…”라고 한 말은 정말인가. 물론 아니다. 악의 없는 인사치레용 거짓말이다.

이처럼 우리는 원하든 원치 않든 수시로 거짓말을 하게 된다. 물론 주어진 상황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조절하는 능력은 세상을 살아나가는 데 도움이 된다. 그 때문에 요즘에는 상황에 적합한 거짓말이 능숙한 처세술로 인정되기도 한다. 그렇다고 얄팍한 속임수나 잔꾀, 권모술수나 사기술이 이 어지러운 세상을 헤쳐 나가는 데 요체인가.

 

우리는 거짓말을 하면 안 되는 것이라고 배웠다. 거짓말을 하는 것은 나쁜 짓이라는 말도 수없이 들었다. 살면서 모두들 종종 거짓말을 해봤고, 또 거짓말이 몸에 밴 사람도 숱하게 봐왔다. 거짓 없이 사는 것이 자신을 위해서나 세상을 위해서 응당 도움이 된다고들 믿는다. 그럼에도 현실은 늘 배반적이다. 으시딱딱하게 뻔뻔한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은 으스대며 보란 듯이 사는 데 그저 순진하기만 한 사람들은 기를 펴지 못하고 살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세 가지 종류의 거짓말이 있다고 한다. 그냥 거짓말, 새빨간 거짓말 그리고 통계다. 영국 빅토리아 시대의 명재상 벤자민 디즈렐리가 남긴 유명한 말이다. 이 중에서 뭐니 뭐니 해도 새빨간 거짓말이 문제다.

새빨간 거짓말하면 먼저 전재산이 29만원밖에 없어 추징금을 못 낸다는 전두환씨가 떠오른다. “‘탁’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박종철 열사의 죽음도 생각난다.

사실 거짓말로 치자면 전두환씨 집안이 둘째 가라면 서러워 할 처지다. 전씨 차남이 거액의 증여세 포탈혐의로 기소되자 문제의 괴자금은 결혼식 축의금을 재테크한 것이라는 주장을 해 국민들을 분노케 했다. 전씨의 세 아들은 이런 식으로 지금 떵떵거리는 재력가로 행세하고 있다. 그런데도 전두환씨는 자신은 알거지라며 1천600여억원의 추징금을 내지 않고 버틴다. 급기야 호화 경호 중단 논란을 불러왔다.

 

정치판에서 돈다발을 주고받다 검찰에 불려가서는 ‘관행’이라고 흰소리를 해대고, 분식 회계를 기업경영의 기본으로 여기는 것이 우리사회다. 게다가 프로스포츠 선수들의 승부조작이 여러 종목에서 불거지는 작금의 현실에 도무지 마음을 가다듬기 어려울 지경이다. 요즘 세태가 정치권, 공직자뿐만 아니라 법조계, 문화 예술계, 학계, 스포츠계 등 온 세상이 비리와 부정으로 뒤범벅돼 뉴스 보기가 싫증 날 정도다. 이처럼 갖가지 거짓말로 인해 온 나라가 홍역을 치르고 있는 요즈음, 거짓말로부터 자유로운 사회는 정녕 먼 길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아무리 속고 속이는 게 인간사라지만 도대체 인간의 거짓말은 왜 시작되는가.

 

옛날 어느 훈장이 서당에서 글을 가르치다 문득 졸았다. 퍼뜩 잠을 깨고 보니 학동들 앞인지라 멋쩍었다. 둘러대기를 “물어볼 게 있어서 꿈속에서 공자님을 찾아가 잠시 뵙고 왔다”고 했다. 다음날 제자들이 스승의 흉내를 내어 낮잠을 잤다. 이를 본 훈장이 잠을 깨웠다. 아이들은 “저희들은 낮잠을 잔 것이 아니라 공자님 뵈러 갔다 왔습니다.”라고 눙을 쳤다. 어이없어진 훈장이 “그래. 갔더니 공자님이 뭐라시더냐?”고 물었다. 아이들은 천연스레 “공자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어제 너희 훈장은 온 적도 없고 만난 적도 없었노라’ 하셨습니다.”라고 대꾸했다. 이 말을 들은 훈장은 내심 아이들에게 거짓으로 둘러댄 것을 부끄럽게 여기고 후회했다.

 

‘자기기인(自欺欺人)’이라고 했다. 자기를 속여야만 남을 속일 수 있다는 얘기다. 자신을 속이면서까지 찾아야 할 만족이 무엇이던가. 그러나 짧고 아둔한 생각을 가진 이들은 눈앞의 이익에 환장한다. 훗날 그것이 자신을 감옥에 가두는 굴레가 될 줄은 미처 모른다.

무엇보다 정치인들의 허언은 우리를 씁쓸하게 한다. 747이 그랬고 세종시가 그랬고 신공항, 이어 과학벨트, 저축은행비리 등등. 그런데도 이런 저런 구실을 내세워 약속을 저버린다. 한술 더 떠 힘 있고 가진 자들이 저질러 놓은 비리들을 뻔한 거짓말로 당당하게 분칠하는 모습들이 역겹다.

 

선거에 이기려고 말이 앞서 허튼 공약이 된 것은 그렇다 치자. 요즘 영이 안서는 이명박 대통령의 지휘권은 딱하다 못해 더는 못 봐줄 지경이다. 모두가 자업자득이다. 거듭된 거짓말의 역습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해 8ㆍ15광복절 연설에서 2012년 균형 재정을 달성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오히려 여당이 앞장서서 막대한 예산을 들여야 하는 포퓰리즘 정책을 쏟아내는 지경이다. 또 올초 신년 연설에서 “물가는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잡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물가는 ‘나 몰라라’하고 날뛴다. 농수축산물 가격은 급등락을 반복하고 기름값은 떨어질 줄을 모른다. 뿐인가. 대통령이 나서서 물가책임공무원제라는 시책까지 내놨지만 크게 달라진 것도 없다. 그러니 철석같은 믿음을 줘야할 대통령의 언급이 맥없는 넋두리로 들릴 수밖에.

 

본디 힘을 빼앗기고 억눌린 사람들이란 배포가 작은지라 거짓말을 못하는 법이다. 하지만 권력이나 돈, 허세의 맛에 중독된 이들은 그렇지 않다. 온 나라가 ‘거짓말 몸살’을 앓고 있는 가운데서도 돈 봉투 사건 등 권력형 비리와 관련해 벌어지는 집권층의 모습은 눈꼴사납다. 진정한 부끄러움이나 뉘우침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이들은 한결같이 공통된 특징을 보인다. 할 수 있는데 까지 거짓말을 하고 ‘나는 모른다’고 버틸 때까지 버티다가 더 이상 빠져나갈 여지가 없어졌는데도 깨끗이 털어놓지 않는다는 점이다. 끝내 알듯 모를 듯한 애매한 말로 자신을 합리화하며 빠져나갈 구멍을 찾는 잔꾀를 부린다.

 

박희태 국회의장의 시치미는 단연 압권이다. 돈봉투 수수 정황이 폭로됐는데도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 잡아뗐다. 게다가 외교적 결례를 명분으로 도망치듯 외국 방문을 떠났다. 귀국해서도 사퇴 요구에 모르쇠로 일관했다. 박 의장은 문제가 불거졌을 때부터 시종 치졸하고 무책임했다. 비서가 검찰에서 털어놓자 비로소 꼬리를 내렸다. 대변인을 통해 사퇴의 변을 내놓고 잠적한 처신도 잔망스럽다. 그의 말로가 더없이 군색하고 초라하다. 돈봉투를 돌린 것에 대한 죄책감은 전혀 찾을 길 없다. 단지 운 나쁘게 들켜서 산통 깨졌다는 푸념만 넘친다. 차라리 조용한 둔사와 함께 깨끗이 뒷마무리를 했더라면 그렇게 작고 옹졸해 보이지는 않았을 터다.

박의장의 돈봉투 살포에 대한 인식도 구태의연하다. “전대 행사는 일종의 축제 분위기다. 때문에 그 분위기 자체가 딱딱한 법의 툴보다는 서로의 동지애 속에서 여태까지 진행돼 온 것이 사실”이라면서 “일종의 집안 잔치고 그런 분위기 때문에 약간 법의 범위를 벗어났던 관행이 있었다”고 했다. 전당대회 돈봉투 살포를 ‘동지애’와 ‘집안 잔치’로 보는 그에게서는 법의식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런 그가 그의 표현 대로 ‘딱딱한 법의 툴’을 만드는 입법부의 수장이자 한때 법무부장관이었고 검사장까지 지낸 인물이라니 실색할 수밖에 없다. 이런 국회의장을 둔 국민이 불행할 따름이다.

 

또 다른 주역인 김효재 전 수석은 더욱 뻔뻔하고 가증스럽다. 그는 고승덕 의원과는 일면식도 없고 말도 한번 섞어본 적이 없다고 잡아뗐다. 하지만 박 의장의 전 비서가 “정작 책임 있는 분이 자기가 가진 권력과 아랫사람의 희생만으로 위기를 모면하려는 모습을 보면서 결단을 내리지 않을 수 없었다”고 꼬집자 이내 두손을 들었다. 거짓말을 해놓고 들킨 다음에 고작 한다는 얘기가 “모든 정치적 책임을 다하겠다”는 것뿐이다. 마치 큰 결단이라도 내린 듯하다. 국민에게 거짓말을 한 것에 대한 양심의 가책은 찾을 길 없다.

 

실제로 마키아벨리즘 성향이 높은 사람들은 들키지 않고 거짓말을 잘한다고 한다. 이들은 자신의 거짓말이 옳다는 강한 믿음과 확신 때문에 거짓말에 대해 죄의식조차 느끼지 않고 그 책임을 사회나 타인에게 돌리는 경향이 있다고 분석된다. 한마디로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뻔뻔한 인간들인 셈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번 사건의 책임에서 절대 자유로울 수 없다. 부도덕의 극치인 두 사람을 지금의 위치에 발탁한 사람이 바로 이 대통령이기 때문이다. 이런 자리를 부정과 무책임, 거짓말 ‘선수’들이 맡아왔다니 얼마나 한심하고 참담한 일인가. 그런데도 그 선수들은 입만 열면 국가와 민족, 국리민복을 부르짖는다.

 

이 대통령은 현정권을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이라고 규정했다. 그런데도 하루가 멀다 하고 친인척과 측근 비리가 터졌다. 도대체 이 대통령의 도덕과 완벽의 기준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그 도덕적 완벽은 대통령이 아들 명의로 매입한 내곡동 사저 땅 의혹까지 불러왔다. 이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의원의 해명 아닌 변명 또한 참으로 가관이다. 그는 ‘상왕’ ‘영일대군’ 등으로 불리며 ‘만사형(兄)통’이란 말까지 생겨날만큼 무소불위의 절대권력으로 군림해온 장본인이다. 그런 그가 “국회에서 받는 정상 경비만으론 의원 사무실 운영이 어려워 집에 보관 중이던 현금을 여비서에게 줘 경비로 쓰도록 했다”고 주장했다.

정상적으로 조성된 돈인데 왜 은행에 넣지 않고 현금으로 장롱에 넣어 뒀을까. 아무 거리낌 없는 돈이라면 굳이 다른 사람 계좌에 돈을 넣어둘 이유가 없다. 7억 원이라는 거금을 이자를 포기하면서까지 장롱에 묵혀 둔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 된다. 이자도 이자려니와 금융실명제·공직자윤리법 등 실정법을 줄줄이 위반하면서까지 여비서 계좌에 자신의 돈을 숨겨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 알다가 모를 일이다. 차명계좌가 검은돈 세탁의 수단이라는 것은 어린 애도 아는 사실이다. 그처럼 거액의 수상한 돈을 깨끗한 돈이라고 우겨댄들 뉘라서 믿겠는가. 안방 장롱 속이니 뭐니 둘러대는 것 자체가 변명이라기엔 너무나 치졸해 보인다. 그래서 국민들은 그를 조롱한다. 인터넷이나 SNS에 나도는 “이상득 장롱은 얼마나 크기에 7억원을 현금으로 쌓아두느냐”는 비아냥이 그것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권력을 가진 자들에게 거짓말은 체질화된 생리다. 아무리 그렇다 치더라도 이 정부의 거짓말은 도가 지나치다. 부끄러움도 없고 죄책감을 모르는 정치권력은 국민을 견디기 힘들게 한다. 국민들의 고초는 이명박 정권 초기부터 신물 나도록 되풀이 되고 있다. 마침내 집권당은 총선이 임박하니까 당명을 바꾸면서 국민에게 ‘이제 새 출발 합니다’ 라고 딴청을 부린다.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격이다. 그런다고 국민들이 속아 넘어가겠는가. 국민들을 자신들의 머리수준이나 새 대가리로 알지 않고서야 그럴 수는 없다.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이라는 대통령의 그릇된 인식이 어쩌면 오늘의 ‘거짓말 세상’을 초래한 주된 원인이다. 그래서 가책감도 없고 교만한 자들이 일단 저지르고 버티는 쪽으로 이끌었다. 오죽하면 일국의 국회의장이 직접 국민 앞에 서서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해도 모자랄 판인데 대변인을 통해 5줄짜리 사퇴서를 읽게 하고 모습을 감췄을까.

 

모름지기 남 앞에 나서는 자들은 ‘사지(四知)교훈’을 새겨야 한다. 자기만 알고 아무도 모르리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세상에 비밀은 없다는 말이다. 말 그대로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당신이 알고, 나 또한 안다(天知 地知 子知 我知)’는 뜻 아닌가. 이 말은 양진(楊震)이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며 뇌물을 주는 이에게 그것을 거부하며 한 말이다. ‘양진’은 후한(後漢) 때 사람으로 그 인품이 훌륭해 ‘관서(關西)의 공자(孔子)’라 불린 사람이었다.

 

거짓말을 일삼는 정치인이나 정부 관료, 유력 기업인, 유명인사들이 너무 많다. 그럼에도 그들의 거짓말에 취약한 대중들이다. 이 때문에 거짓말은 지난 수십 년간 정치·경제·문화체육계 등 모든 사회를 알게 모르게 잠식해버렸다. 이제는 우리 사회에 거짓말이 얼마나 팽배해 있고 그 거짓말에 우리가 얼마나 둔감한지를 깨달아야 한다. 거짓말 잘하는 사람이 성공하는 사회가 돼서야 될 일인가. 선의건 악의건 거짓말이 관습이 되고 처세의 기본이 되는 사회가 된다면 순박하기 짝이 없는 민초들은 무슨 희망이 있겠는가.

우리 사회에서 거짓말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때문에 백 퍼센트 정직한 사회는 불가능한 꿈이다. 도리어 우리는 거짓말을 필요로 할지도 모른다. 다만 이런 거짓말만 같으면 얼마든지 괜찮다. 말기 암 환자에게 ‘당신은 분명히 나을 수 있다’고 말해주는 의사의 거짓말처럼만 같다면. <화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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