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나리꽃이 피었습니다. 참나리꽃은 맨꼭대기, 정수리에 여러송이의 꽃봉오리들이 연두빛으로 돋았습니다. 꽃봉오리는 끝 부분부터 차츰 붉은색이 배이기 시작했습니다. 세살백이가 예쁘게 말을 하려고 입술을 잔뜩 오무린 모습 같았습니다. 아이는 숨을 너무 들이쉬어서 볼테기까지 핏기가 빨갛게 올라왔지요.

참나리꽃은 무주 산골짜기, 무풍에서 와서 이름이 ‘무풍댁’입니다. 무풍댁은 요염하기가 그지없습니다. 누가봐도 인적이 드문 시골에 두기는 아까운 절색입니다. 무풍댁이 우리집에 오게 된 것은 인연이 매우 깊습니다. 무려 1969년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공주사범대학은 공주 봉황산 밑에 있었습니다. 그때도 친구 서병직은 나이가 잔뜩 들어보였습니다. 나이드신 교수님들하고도 거의 비슷하게 대화를 나눌 정도로 이미 노숙하고 노련한 면이 많았습니다. 공주사범대학 부속고등학교를 나왔는데, 고등학교 다닐때, 그 당시 부속중고등학교 교정에 가득찼던, 개나리꽃을 심었다고 합니다. 친구는 초임발령을 안면도중학교로 났었습니다. 거기 안면도 가서도 학생들과 함께 안면도 바닷가에 있는 해당화를 캐다가 학교 울타리에 심었다고 합니다. 그 친구 소식이 끊겼다가, 몇 년전 연락이 닿았습니다. 그동안 친구는 무풍에서 달성서씨 종중사업을 엄청나게 하고 있었습니다.

소관섭 교장(2012년 당시 익산 원광여고 교장)과 저는 그 친구 서병직을 기인이나 이인으로 믿고 따르는 일종의 신자들이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두 신자들은 장마비를 뚫고 선사를 알현하러 무풍으로 갔습니다. 지금이 장마철이고 참나리가 피었지 않습니까. 바로 지금쯤이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차를 멈추고 밭뚝에 있는 참나리를 캐려 했습니다. 그런데 그 서아무개 선사가 한사코 말립니다. “이번 가을에 내가 뿌리를 캐서 택배로 한 박스 보내줄테니 오늘은 그냥 가소”라는 것입니다.

늦가을에 택배가 왔습니다. 한 박스는 한 박스인데 속에 또 박스가 있었습니다. 박카스상자였습니다. 세상에 박카스 상자에 참나리 뿌리가 몇 개나 들어가겠습니까. 그 뒤 머리가 흰 그 친구를 만나서, 선사고 신자고 나발이고 집어치고 불같이 혼냈습니다. “동해안 바닷가에서 수로부인이 부탁했으면 당신이 그렇겠느냐? 절벽이라도 뽈뽈거리고 올라가서 몇뿌리 더 캐서 보내지 않았겠느냐?”

그 다음해에 선사께서 참나리꽃 구근을 몇 뿌리 더 캐서 보내왔습니다. “당신이 그때 밭뚝에서 캐려다만 그 참나리 있지? 바로 그 참나리 뿌리를 캐서 보냈어. 그 거 땅속 깊이 백혔데. 그거 캐니라고 혼 났어” 맞습니다. 깊이 백혔었을 것입니다. 땅 속 깊이 저와 “무풍댁”과의 인연이 깊이 백혔었을 것입니다. 꽃 한 송이라도 그런 인연이 아니면 어찌 무풍댁 같은 미인을 가까이 두고 볼 수가 있었겠습니까.무풍댁은 너무 건강하고 현란해서 프라스틱으로 만든 조화같이 보입니다. 가까이 드려다 볼수록 이 세상의 꽃같지가 않아서 무섭기까지 합니다. 아침에 잔디를 깎았습니다. 잔디를 깎으면, 잡풀이 꽤 섞였는데도, 양탄자같이 보기가 좋습니다. 아들과 함께 이발소에 다녀오면 집사람이 깜짝 반기던 생각이 납니다. “이발을 하니까 아빠하고 아들이 꼭 닮았네!” 그 말이 참 듣기가 좋았습니다. 지금도 이발소에 다녀오면 집사람이 뭐라 말해주기를 속으로 바라지만 별 말이 없습니다. 그때 집사람 말이 내가 아니라 아들에게 한 말이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범부채가 서운할 것 같아서 몇 장 찎었습니다. 삼국지에 보면 주유가 탄식을 합니다. “세상에 주유 하나면 됐지, 왜 제갈량과 주유를 함께 내보냈단 말인가!”라는 것입니다. 제갈량만 없으면 자기가 최고인데, 제갈량 때문에 형주를 뺐기고 분통이 터져서 하는 말이었습니다.

범부채가 그럴 것 같습니다. “참나리가 아니면, 이 집에서, 내가 최고인데, 하필 참나리 필때 범부채가 피다니, 하늘도 무심하십니다” 범부채도 예쁜데 말씀입니다.

유리꽃, 단추꽃이라고 하고, 표준말로 뭐라고도 하던데, “하늘아제비?” 화초장만큼이나 생각이 잘 안납니다만, 이 꽃도 예쁘게 피었습니다. ‘자주달개비’라고 보석연꽃님께서 댓글을 달으셨습니다. 놀부도 집에서 기다리던 마누라가 알려줬지요. ‘화초장’이라고.

거실에서 보면 전주 고덕산이 마주 보입니다. 바로 거실 앞에 범부채가 한창이고 똑바로 앞쪽으로 참나리가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능소화를 빠뜨릴 수가 없어서 넣습니다. 능소화도 어느 꽃 못지않게 예쁩니다. 저도 꽃들에게 일일이 감사해야, 꽃들이 알아듣고 더욱 열심히 필 것 같아서, 특히 요즈음은, 이꽃저꽃 챙기느라 매우 바쁩니다.
을하

단추꽃은 “자주달개비”입니다.
무풍댁이 아주 건강하네요. 작년에 꽃들에 신경을 못썼더니, 우리 백합과 나리는 영 힘을 못 펴네요. 나리는 꽃이 언제 필지도 모르겠습니다. 요즘 감자 캐고 들깨 모 심으러 다녔는데도 나리꽃을 보지 못했습니다. 옆집을 지었고 그 사람네와 옥신각신 하다보니 꽃을 돌볼 여유도 없네요.
교수님께서 주셨던 스노우드롭에 끼어서 왔던 자란 한 그루가 번져서 더 많아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