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럼> 은하수에 창과 칼을 씻고

 

시골에 살면서 아침 일찍 일어나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어쩌다 안개 낀 새벽 경치를 보고나서 부터입니다. 먼 산과 가까운 산이 날씨에 따라 원근감이 달라 보입니다. 어느 순간에 어둠이 엷어지면서 날이 밝아오는 것이 숭엄합니다. 이른 아침 시골 풍광은, TV는 물론, 책을 읽는 것조차 미안할 정도로 경치가 아름답습니다. 신선이 산다는 선경이 따로 없습니다. 제가 어릴 때 저희 할머님께서 간곡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라. 아침같이 좋은 시간이 어디 있느냐.” 그 때 제가 어찌 그 뜻을 알았겠습니까. 어언 이제 제가 손자에게 그 얘기를 할 차례입니다. 아무리 간곡하게 얘기를 한들, 어릴 때 저처럼, 손자가 아침 일찍 일어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새벽시장에 가끔 나갑니다. 전주남부시장 전주천변 고수부지에 이른 아침 장이 섭니다. 대개 집에서 가꾼 농산물을 가져오지만, 시내에 가게가 있는, 전업 상인들도 있습니다. 계절에 따라 구경거리가 다르고, 특히 김장철에는 인산인해를 이룹니다. 사려는 물건이 있으면 먼저 장을 한 바퀴 돌아봐야합니다. 선뜻 샀다가 더 싸고 싱싱한 물건이 있으면 후회하게 됩니다. 저의 집 사람은 장에서 물건 값을 깎는 것을 나무랍니다. 다른 곳에서 아끼지, 얼마나 된다고, 값을 깎으려 하느냐고 핀잔을 줍니다. 옛날 어른들은 제사 모시는 물건은 아무데나 첫 번째 들린 집에서 흥정하지 않고 샀다고 합니다. 어떤 깊은 지혜가 느끼지는 얘기 아닙니까?

 

자질구레한 이 일 저 일을 하다보면 새삼 평범하게 사는 것이 참 좋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더우면 더운 그대로, 추우면 추운대로 그냥 사는 것이 이승을 사는 행복이라고 느껴집니다. 곳곳에서 끔직한 사건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모두 자기 분수를 모르는 탐욕 때문 아니겠습니까. 세상에는 자기 능력에 벗어나는 과분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비극입니다. 너도 나도 무대에 서려고만 합니다. 객석에 편안하게 앉아 박수를 치면서 연극을 보는 재미를 모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연극이나 영화나 스토리에 맞는 배역이 중요합니다. 폐결핵으로 죽어가는 여주인공은 환자 같이 보이는 사람이 맡아야 합니다.

 

전북 도립미술관은 모악산 아래 구이면 소재지 근처에 있습니다. 자체 소장 작품은 많지 않아도 기획전시를 통해 좋은 작품들을 꽤 보여줍니다. 2층 테라스에도 작품이 전시 되어 있는데, 금속 조각 작품이 인상적입니다. 두 개의 미사일이 탄두가 못쓰게 휘어진 채 서로의 꼬리를 물고 있는 듯합니다. 전쟁을 하지 말자는 의미입니다. 제 생각으로 볼 때, 평화에 대한 염원을 그렇게 형상화한 것 같습니다. 요즘 정치가들이 너무 쉽게 전쟁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런 정치가들은 국민들이 안중에 없는 사람들입니다. 방위사업청의 국방선진화사업은 언론을 통해 알려진 것만으로도 비리가 엄청났습니다. 그 사람들이 필요하면 선제 타격하겠다.”고 합니다. 만약, 저쪽도 필요하면 먼저 선제 타격하겠다.”고 하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통영 세병관에 갔을 때가 생각납니다. 안내문에 세병관이란 명칭은 전쟁이 끝나고 은하수에 창과 칼을 씻는다.”라는 글에서 땄다고 했습니다. 저 나름대로, “전쟁이 나면 농기구를 벼려서 무기를 만들고, 전쟁이 끝나면 무기를 녹여서 농기구를 만든다.”고 들렸습니다. 엊그제 문득 세병은 어떤 글에서 따왔을까 궁금해서 알아 봤습니다. 당 두보(712 770)세병마행이라는 48 행이나 되는 글()의 마지막 구절에 그 세병이 있었습니다.

 

…/안득장사만천하(安得壯士挽天河)

/정세갑병장불용(淨洗甲兵長不用).

 

…/어찌하여야 건장한 사람을 얻어 천하(은하수)를 끌어다가

/갑병을 정히 씻어 길이 쓰지 말려뇨. (‘두시언해번역을 현대어로 약간 고쳤음)

 

…/어찌하면 은하수 끌어올 장사를 구하여

/갑옷과 무기 깨끗이 씻어 길이 사용하지 않게 할까. (양륜의 두시경전을 이관성 번역)

 

양륜(1747 1803)이 쓴 두시경전(이관성 번역)’은 의역이고, ‘두시언해가 더 직역으로 뜻이 좋습니다. 두시는 모두 1467편이나 됩니다. 세종은 한글을 창제한 후, 한글을 보급하기 위해 석보상절용비어천가를 짓도록 했습니다. 나아가서 두시를 주석까지 전부 한글로 번역 판각 하도록 했는데, 40(1443 1434)이 소요된 엄청난 국가사업이었습니다.

 

임진왜란은 7(1592 1598 : 선조2531) 동안 계속되었습니다. 전국 곳곳에 봉화가 오르고, 임금은 캄캄한 밤중에 임진강을 건넜습니다. 전쟁이 끝나자 한산도에 있던 통제영을 통영으로 옮기고 세병관을 지었습니다. 두시에 나오는 은하수를 끌어다가 갑옷과 무기를 씻게 한 그 장사가 바로 충무공이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그 뒤부터 오늘날까지, 두보의 염원처럼, 갑옷과 무기를 오랫동안 못 쓰게 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한반도에서 또 다시 전쟁 운운하는 것은 슬픈 일입니다. 은하수에 창과 칼을 씻어 농기구로 만드는 날이 언제나 가능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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