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의 고향은 만경강변 ‘익산군 춘포면 용연리 판문’이라는 곳입니다. 그 곳이 고향이라고는 하지만, 아홉 살 남짓 떠나왔기 때문에, 기억나는 것이 별로 많지가 않습니다. 그 당시 함께 춘포초등학교에 다녔던 친구 이름을 열 사람쯤 욀 수 있을까, 그것도 자신이 없습니다. 우리 고향마을에서만 초등학교 동급생들이 열댓 명이나 되었다는데, 그 같은 동네 친구들도 기억을 다 못 한다는 얘기입니다. 고향에 대한 기억은 그렇게 사라져 갔어도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애틋함은 나이가 들수록 더 깊어지는 것 같습니다. 지금은 고향이라고 찾아가봐야, 친척들은 물론 한 사람도 남아 있지를 않고, 저를 기억하고 있고 또 제가 알고 있는 사람이 불과 서너 사람이나 될까 싶습니다만, 요즘도 고향 근처를 지나노라면, 지구가 달을 끌어당긴다는 ‘중력’처럼, 소위 ‘향수’란 신비한 힘이 작동하여, 가슴속에 있는 나침판을 마구 흔들어대곤 합니다.
지금까지 남아있는 고향에서의 기억들은 순서개념이 없어졌습니다. 오래 되었을 뿐만 아니라 너무 어린 시절의 일들이라, 몇 장면들이 떠오르기는 하는데, 어떤 사건이 먼저였는지 그 뒤였는지, 시간적인 전후가 명확하지 않습니다. 만경강 양 편 제방과 제방 사이의 고수부지를 ‘강속’이라 불렀습니다. 오월 단오 즈음이면 우리 고향 동네 앞 ‘강속’에서는 ‘모래찜’이라는 것을 했습니다. ‘강속’은 흙이 가늘고 고운 모래였는데, 멀리에서 사람들이 떼로 몰려왔었고, 장이 서는 듯 북적였습니다. 늦은 가을에는, 만경강의 조수가, 바다에서 서핑 할 때 파도처럼, 하얗게 서서 밀려왔고, 어른들은 기다리고 있다가 뜰채로 고기를 잡았습니다. 총선거가 있을 때면 모정에, 동네에 하나밖에 없는, 전축을 갖다 놓고 어른들이 모여앉아서 개표방송을 들었습니다. 모정 앞의 방죽을 품어내고 작살로 민물장어를 수도 없이 많이 잡는 것도 봤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만경강의 발원지는 어디고 어디로 흘러가는가, 만경강제방은, ‘대보뚝’이라고 불렀는데, 언제 쌓았는가, ‘널문이’라고도 부르는 고향 ‘판문’은 언제 생겼는가.” 등등, 궁금한 것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던 중에 군산 동국사 주지이신 ‘종걸’ 스님으로부터 ‘만경강의 숨은 이야기’라는 책을 소개 받았습니다. 수자원공사에 근무하셨던 이종진이라는 분이 자료를 모아 정리 출간(2015년)한 것이었습니다. 얼마 전에는 윤춘호라는 분이 쓴 ‘대장촌의 일본인 지주와 조선 농민, 봉인된 역사(2017)’라는 책도 구하여 읽어 봤습니다. 또, 인터넷을 검색해보았더니 황용배라는 춘포초등학교 동급생이 많은 자료를 올려놓고 있었습니다. 한 마디로 만경강에는 우리가 몰랐던 수많은 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이야기들을 이해하기 쉽게 입체적으로 하자면 어디서 어떻게 해야 될지 가늠조차 못할 정도로 방대한 내용이었습니다.
일본이 한반도를 침탈하려는 야욕은 을사늑약 이전부터 치밀고 은밀하게 이뤄지고 있었다는 점이 무서웠습니다. ‘운양호사건(1875년)’ 이후, 불평등한 강제조약으로, 한반도 주변 해안선과 암초 등을 조사한다는 명목으로 주요지형을 염탐, 1890년 이전에 군사용 지도를 작성하였다고 합니다. 한편, ‘대장촌’이라는 명칭은 일본인 농장과는 관계가 없고, 그 훨씬 이전부터 있었던 지명으로, ‘춘포’로 지명을 바꾸지 않아도 됐었답니다. 대장촌 일대는 ‘명성황후 민비’의 조카 민영익(1860-1914)이 대부분 소유했었답니다. 그 뒤, ‘호세가와조류(細)’가 일대를 차지하고, 소작농들을 부리면서 수탈하였답니다. 1993년, 일본의 79대 총리를 지낸 ‘호소가와죠키()’는 바로 그 ‘호세가와조류’의 친손자였답니다. 현재 일본의 부총리로 있는 ‘아소다로()’도 한국인 강제노역으로 큰 돈을 벌었던 ‘아소다키치’의 친손자라고 합니다.
‘만경강 수변도시 조성사업’이라는 것을 익산시에서 금년부터 추진한다고 합니다. 만경강 양쪽 제방 사이의 고수부지(‘강속’)는, ‘새 만금 담수호’의 수질개선을 위하여, 일체의 농업행위를 금지 시킨 상태입니다. 오염원을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고 합니다. 사람이 통제할 수 있는 오염원을 ‘점 오염원’이라 하고, 인위적으로 통제할 수 없는 오염원을 ‘비점 오염원’이라고 한 답니다. 따라서 ‘고수부지에서 농사를 못 짓게 한다.’는 것은 ‘점 오염원’를 통제하는 것이라고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요즈음 만경강 제방을 지나다 보면, 고수부지에 어떠한 계획을 갖고 추진하는 공사인지 여기저기 흙더미가 쌓여 있습니다. 어차피 오염원을 줄이기 위한 목적을 갖고 있다면 어떤 형태의 인공시설물들일지라도 최대한 줄여야 할 것입니다. 수변도시 조성도 오염된 생활용수를 어떻게 줄일 수 있느냐가 제일 중요한 문제로 논란이 될 것 같습니다.
완주군이 주도하는, 삼례와 봉동 사이, ‘삼봉 웰링 시티’도 입주를 시작한답니다. 그 곳 역시 익산처럼,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만경강의 수려한 경관을 자랑할 것입니다. 앞으로 전개가 될 익산의 수변도시 프로젝트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시금석으로 여겨집니다. 익산에서 강변까지 인입도로가 어떻게 개설되더라도, 만경강의 경치가 어디가 좋은가부터 살필 것입니다. 우리는 코로나19라는 새로운 전쟁을 경험하면서 “나도 나름대로 ‘라이프스타일’을 찾아야겠구나.”라고 느꼈으면 좋겠습니다. 누구는 500만 원짜리 전세 살면서 3000만 원짜리 오디오를 즐기면서 산답니다. 고가아파트에 살면서도 문화를 전혀 즐길 줄 모른다면, 깡통 뒤집어 쓴 민달팽이와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주거문제 때문에 삶이 송두리 채 매몰 되어버리는 세태가 아쉽습니다. 만경강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곳에 영구임대아파트라니! 그것, 참으로 매력적이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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