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언각비58>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라굽쇼

국사우지 국사보지(國士遇之國士報之)라는 말이 있다. ‘국사(國士)로 대우하면, 국사로 보답한다는 뜻이다. 대우를 받은 만큼 보답한다는 의미로 쓰인다. 중국의 역사에 나오는 말이다.

이 말을 떠올리는 것은 바야흐로 다가온 정치의 계절 때문이다. 두 달이 채 안 남은 총선을 앞두고 선량이 되겠다는 사람들을 보면 앞서 말한 국사가 자연스레 상기된다. 자기가 국사가 되겠다면 국민들을 국사로 대우해야 한다는 말이 되겠기에 그렇다. 그러나 현실은 전혀 아니다. 그만한 식견이나 안목을 가진 정치지망생들을 찾기 힘든 탓이다. 낭중지추처럼 돋보이는 재인을 찾기 어려운 게 우리네 정치판이다. 그러니 자연스레 굿판이 신명이 사라진 맥없는 판이 되고 말았다. 하여 굿판이 끝나면 후련한 기분으로 흡족하게 먹던 떡도 사라졌다. 굿판이 재미없으니 떡도 먹기 싫어진 거다.

여기서 잠시 눈길을 돌려보자. 춘추 말기였다. 당시 제후국 진()나라는 북방의 강국이었다. 유력한 가신인 육경(六卿)이 국정을 담당하고 있었다. 바로 범(), 중항(中行), ()씨 곧 지백(智伯), ()씨 곧 양자(襄子), ()씨 곧 강자(康子), ()씨 곧 선자(宣子)가 그들이다. 이 가운데 범씨와 중항씨는 먼저 멸망했고 나머지 네 사람이 세력 다툼을 벌이게 됐다. 그중 세력이 가장 강한 지백이 맹주 역할을 했다. 지백은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나머지 세 사람에게 토지 할양을 요구했다. 한강자와 위선자는 이에 굴복하여 1만 호의 고을을 할양했다. 그러나 조양자는 그렇지 않았다.그는 가신 장맹담(張孟談)과 숙의한 끝에 지백의 요구를 거절해 버렸다. 그러자 조양자를 괘씸하게 생각한 지백은 자신의 군대는 물론, 한강자와 위선자의 군대까지 동원해 조양자를 공격했다. 한강자와 위선자는 싫었지만 지백의 힘이 강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동참했다. 조양자는 진양성(晉陽城)으로 들어가 대항했다. 세 제후가 연합하여 공격했으나 조양자가 완강히 버티는 바람에 2년 동안이나 승리하지 못했다.

하지만 오랜 기간을 버티던 조양자도 이제는 막바지에 몰려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야만 했다. 이 즈음 돌아가는 우리 정치판의 모양새와 어찌 그리 흡사한가. 

조양자는 모사인 장맹담의 계책에 따라 한강자와 위선자를 설득했다. 한강자와 위선자는 연합하여 지백을 치고 땅을 나누어 갖자는 조양자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이들 세 제후는 진양성으로 흘러드는 물길을 지백의 진영으로 돌려 역으로 수공을 하기로 하고 군사를 동원해 밤새 제방을 파헤쳐 물꼬를 텄다. 순식간에 지백의 진영은 물에 잠겼다. 세 제후의 군대는 배를 이용하여 공격해 들어갔다. 생각지도 않았던 공격을 당한 지백의 군대는 전멸하고 말았다. 이들은 지백을 사로잡아 그 일족을 모두 처형하고, 봉지를 나눴다. 이로써 진나라는 조씨의 조()나라, 한씨의 한()나라, 위씨의 위()나라로 나뉘었다. 그래서 이 땅을 삼진(三晉)의 땅이라고 부른다.

조양자는 제후들 가운데도 지백을 가장 증오했다. 그는 지백을 죽이고도 직성이 풀리지 않아 그의 두개골에 옻칠을 해 술잔으로 사용했다. 지백의 가신 중에 지백의 총애를 받던 예양(豫讓)이 있었다. 그는 원래는 범씨와 중항씨를 섬기다가 아무도 자신을 알아주지 않자 지백에게로 갔다. 지백은 예양을 스승처럼, 친구처럼 극진히 대했다. 예양은 조양자의 행위에 분개하여 한탄했다.

선비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하여 죽고, 여자는 자기를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 용모를 꾸민다고 들었다.(士爲知己者死, 女爲悅己者容) 지백은 나를 알아준 사람이다. 반드시 그를 위해 원수를 갚아 보답할 것이다.” 항용 우리가 써먹는 말이다. 바로 여기서 유래헸다.

양은 이름을 바꾸고 조양자를 죽일 기회를 찾고 있었다. 그러려고 스스로 죄인이 되어 조양자의 궁에 들어가 비수를 품고 변소의 내부를 칠하는 일을 자청했다. 하루는 조양자가 변소에 가다가 갑자기 살기를 느껴 수색을 해본 결과 비수를 품고 있는 예양을 잡았다. 심문 끝에 지백을 위해 원수를 갚으려고 한다는 예양의 대답을 들었지만 그의 의기를 높이 사 석방했다. 그 후 예양은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도록 변신을 하고 저자거리를 돌아다니며 거지 노릇을 하면서 다시 복수의 기회를 찾았다. 몸에 옻칠을 하고 문둥이처럼 꾸몄고 입에 숯을 머금어 벙어리가 됐다. 한 친구가 먼저 조양자의 신하가 된 뒤 그의 신임을 받은 후에 복수를 하는 방법을 알려줬다, 하지만 그는 남의 신하가 돼서 두 마음을 품을 수 없다며 거부했다.

얼마 후 조양자가 외출을 했다. 예양은 조양자가 통과할 다리 밑에 숨어서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조양자가 다리에 이르자 갑자기 말이 놀랐다. 이번에도 예양은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잡혔다. 조양자가 그의 충정에 탄식하며 물었다. “그대는 일찍이 범씨와 중항씨를 섬기지 않았던가? 지백이 그들을 다 죽였는데도 그 원수를 갚기는커녕 도리어 지백의 신하가 되었다. 지금 지백이 이미 죽고 없는데 그대가 유독 그를 위해 이토록 원수를 갚으려는 까닭은 무엇인가?”

예양이 대답했다. “신이 범씨와 중항씨를 섬겼을 때는 그들은 나를 보통 사람으로 대우했다. 그러므로 나도 그들에게 보통 사람으로 갚았을 뿐이다. 그러나 지백은 나를 국사(國士)로서 대우했다. 그러므로 나도 국사로서 갚으려 하는 것이다.”

조양자는 그의 충정에 탄식할 수밖에 없었다. “그대가 지백을 위해 충성한 것은 이미 세상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졌다. 내가 그대를 석방하는 것도 이미 충분했으니, 더 이상 그대를 용서할 수 없다.” 그러자 예양은 조양자의 옷을 얻어 그 옷을 쳐서 원수를 갚은 뜻을 이루게 해 달라고 부탁했다. 조양자는 그를 의롭게 여겨 자기 옷을 예양에게 주었다. 예양은 칼을 빼들고 여러 차례 뛰면서 옷을 친 후, 마침내 칼에 엎어져 자결했다. 예양이 죽던 날 조나라의 지사들이 모두 울며 그를 애도했다.

이 이야기는 사기(史記) 자객열전(刺客列傳)에 나온다. 오늘날에 정치를 말할 때 이처럼 멋들어진 의리를 기대하는 것은 시어터진 김치가 햇김치로 바뀌기를 기대하는 것만큼이나 어리석다.

 오늘의 정치인들에게 예양의 의리를 기대하는 것은 백사장에서 진주찾기를 기대하는 것만큼이나 어리석다. 하지만 이 말 하나는 정치인들에게 꼭 해주고 싶다. 당신이 왕과 같은 대접을 받고 싶으면 국민을 왕처럼 대접하라. 이것이 바로 국사우지 국사보지의 전형적인 예가 아닌가.

자신이 살기 위해 당을   버리고 이 당 저 당으로 몸을 옮겨 기식하는 정치인들에게 의리따위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하물며 자기를 알아주는 대상(곧 유권자인 국민)을 상기하라는 주문이 씨알이 먹힐 리 없다. 그래서 유권자들도 그런 정치인들에게 아예 기대를 접는다.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라는 얘기가 있다. 굿판이 끝나면 떡을 돌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날 굿판이 돼야할 정치판은 떡도 못먹게 돼버린 신명 없는 겉치레판이 돼버렸다. 굿판의 주인인 유권자들은 그래서 푸념한다. 떡은 고사하고 굿도 보기 싫다고. <화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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