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언각비>20. 연하장 그림의 뜻은?

여기저기 해넘이니 해돋이니 행사들로 해서 요란했던 송영의 시간들을 보냈다. 하지만 차분하고 조용하게 지난 시간을 매듭지으면서 거창하지 않고 실팍한 새해설계를 마친 이들도 적지 않을 듯하다.

연말연시에 자주 봤던 풍경 가운데 하나가 연하장 주고받기였다. 그런데 요즘은 그런 모습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대부분 설을 전후해 세모세조(歲暮歲朝)에 주고받아서일까.

직접 그림을 그리고 글씨를 쓴 연하장은 받는 이로 하여금 감동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요즘같은 때 손수 만든 연하장을 기대하기란 분에 넘친 욕심일일지도 모른다. 인쇄된 연하장이어도 감지덕지하고 그도 아니라면 그저 문자메시지라도 받는 것으로 만족해야 하는 것이 시류에 맞지 않은가 싶기도 하다.

통상 연하장 전달은 설 전후까지는 무방한 것으로 돼 있다. 오히려 연하장이 예스럽고 격식을 갖춘 인사라고 여기기 때문인지 설 전후에 주고받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다. 더구나 그림 내용에 따라서는 설에 맞추는 것이 더 어울릴 때가 많다.

어쨌건 연하장에 흔히 등장하는 그림의 의미를 모른 채 보내는 수가 간혹 있다. 축도와 기원의 의미를 담은 그림을 손수 그리고 정성껏 글씨를 써서 보낼 수는 없을망정 적어도 그림의 의미는 알고 보내는 것이 결례를 저지르지 않는 길이다.

먼저 연치가 많으신 어른들에게 보내는 그림의 경우다. 소나무와 학이 함께 있으면 학수송령도(鶴壽松齡圖)가 된다. 학의 우의(寓意)가 천년의 수(壽)인 것처럼 소나무도 오래 사는 것을 뜻하므로 백령(百齡), 곧 ‘오래오래 사십시오’라는 그림이 된다. 하필이면 백을 뜻하는 것인가. 백이 완전수라는 뜻도 되지만 잣나무(栢)와 소나무는 생긴 모양이 비슷해서 둘 다 백년을 뜻하기 때문이다. (‘松茂栢悅’의 고사를 생각하면 공감이 간다)

특히 이때 소나무는 등걸이 빨갛게 된 것일수록 좋다. 시중에 나오는 대부분 연하장도 소나무 줄기가 유난히 붉다. 여기에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이것은 적송자(赤松子)라는 신선과 결부해서 장수의 뜻을 한껏 더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무엇보다 소나무는 정월(正月)을 뜻한다. 때문에 연말연시에 가장 두드러진 존재가 된다. 또 ‘새해’라는 뜻도 지닌다. 그래서 소나무와 불로초가 함께 그려진 그림은 소나무(=신년), 불로초(=如意)가 되어 신년여의(新年如意), 즉 ‘새해를 맞이하여 뜻대로 되십시오’라는 축도의 뜻을 나타내게 된다. ‘불로’가 왜 ‘여의’인가. 동양에서 늙지 않는다는 것은 곧, 소원을 성취한 것(如意)이 되기 때문이다.

이 불로초가 감(柿)과 함께 그려지면 사사여의(事事如意), 곧 ‘일마다 마음먹은 대로 되십시오’라는 뜻을 나타낸다. 시(柿)와 사(事)가 중국에서는 읽는 소리가 같기 때문이다. 같은 원리로 감과 물고기(魚)가 그려진 그림은 ‘일마다 남음이 있다(=事事有餘)’라는 뜻을 담고 있다. 魚=餘가 되는 까닭이다. 사업하는 분들이 받으면 좋아할 그림이다.

소나무와 호랑이(사실은 표범), 까치가 그려진 그림은 소나무(=신년), 표범(=報), 까치(=喜)는 신년보희(新年報喜), 즉 ‘새해를 맞아 기쁜 소식만 맞으십시오’라는 뜻을 갖는다. 표범의 표(豹)가 중국에서는 발음이 보(報)와 같기 때문이다.

우리 민화에 흔한 작호도(鵲虎圖)는 당초 의도하던 뜻이 변질된 것으로 보는 것이 동양화단의 정설이다. 민화가 세시(歲時)에 맞춰 거는 그림인 탓이다. 더구나 주로 무신도(巫神圖)로 작호도가 그려졌으며 산신도의 대표적인 그림이 됐다. 또한 주술적인 의미가 있는 호랑이 그림은 귀신을 쫓아내는 벽사능력이 있다고 믿었기 매년 호랑이달(寅月)인 정월에 많이 대문에 붙였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그림의 뜻은 ‘신년보희’가 아닌 단순한 ‘작호도’가 될 따름이다.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까치와 호랑이’ 그림은 오래된 것일수록 표범 그림이 많고 후기로 내려올수록 아예 호랑이 그림이 돼버렸다.

연하장은 아무래도 그림의 의미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떤 그림이든 축하의 뜻으로 받아들이면 되지 않느냐고 한다면 할 말은 없어진다. 그것은 마치 좋은 뜻이라고 해서 문관에게 장검을 선물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뜻을 전달한다 하더라도 세심한 배려가 깃든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차이가 나게 마련이다. 받는 이의 처지를 헤아리지 않은 연하장은 무성의해 보인다. 기왕이면 그림의 뜻을 제대로 읽은 연하장일 때 받는 이가 한결 흐뭇해할 것 아닌가. <화산>

 

*편집자주

본지가 독자들께 보내는 연하장은 독화법상 별개의 문제다. 전통 동양화가 아니라 민화 ‘백호도’임을 밝혔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올해는 간지상 백호의 해이다. 신령스럽고 용맹한 백호를 통해 독자 여러분께 상서롭고 희망찬 일이 잇따르기를 기원하는 뜻에서 연하인사를 올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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