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은 우리에게 무엇을 남깁니까. 우리 삶이 몇 년이나 된다고 웬 걱정은 그리 많은 겁니까. 모든 가지마다 꽃이 피는 아름다운 봄날에 만물의 영장이라는 사람이 그게 무슨 창핍니까. 생각해 보면 억울하기 짝이 없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유한한 시간과 공간속에, 번데기처럼 누에고치 속에, 들어앉아 버릴 수는 없잖습니까. 우리가 그렇게 될 일은 절대 아닐 것 입니다. 우리에게 세월이 주름살만 남기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우리 삶에도 나름대로 아롱지는 무늬가 있지 않습니까. 꽃이 지고 난 자리에는 열매가 맺히듯이 자식들이 크고 있고, 이파리가 짙은 그늘을 드리우듯이 친지와 친구들이 있습니다. 유한한 시간과 공간속에서 무한을 짐작해보고 우주의 끝을 드려다 보려고도 합니다. 유한한 존재가, 영생은 아니더라도, 무한을 생각한다니, 그것은 정말 벅찬 아름다움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시선이라 불리는 이백(701-762)은 복숭아꽃 오얏꽃이 핀 정원으로 친지들을 불러 모아 밤에 잔치를 벌였답니다. 지금부터 천이백년도 훨씬 넘는 옛날 얘기입니다. 그 얼마나 흥겹고 기분 좋은 일입니까. 고향을 떠나온 사람이 객지에서 봄을 맞으면 서럽답니다. 복숭아꽃 살구꽃 핀 고향 생각이 더욱 간절해지기 때문일 것 입니다. 지금이 바로 그 때입니다. 매화는 한창이고, 곧 온갖 꽃들이 다투어 필 것입니다. 기회가 왔을 때 모두 불러 모으십시오. 우리가 어쩌다 언제 나이가 들어 객지에서 쓸쓸하게 봄을 맞을지 알 수 있겠습니까. 저는 전주 천변에 하루하루 물이 오르고 있는 버드나무 가지를 보면 마음이 조급해집니다. 배추빛 색깔이 돋기 시작하는 지금이 가장 좋을 때이기 때문입니다. 방금 봄이 왔고 이내 지나갈 거라는 신호입니다. 신호가 바뀌면 매미가 울고 잎이 집니다. 잎은 다 지지도 않고 산발한 채 겨울을 납니다.
무릉도원이 있다고 합니다. 도연명의 ‘도화원기(桃花源記)’에 있습니다. ‘어떤 어부가 어디까지 갔는지도 모르고 가다가 동굴 속에 지나니 어느 마을이 있더라. 진시왕의 폭정을 피해서 사는 사람들이 있더라. 몇 백 년이 지난지도 모르고 살더라. 그 뒤에는 다시 그 곳을 찾으려 해도 못 찾겠더라.’라는 얘기가 ‘도화원기’입니다. 수많은 화가들이 그 무릉도원을 찾아가는 그림을 그렸습니다. 소위, ‘문진도(問津圖)’ 입니다. 우리가 지금까지도 찾지 못하고 있는 ‘무릉도원’을 서양 사람들은 ‘유토피아’라고 부른 답니다. ‘유토피아’라는 말의 본래의 뜻이 ‘존재하지 않는 땅’을 일컫는 다는 것입니다. 안평대군도 어느 날 꿈에 무릉도원을 봤답니다. 안견에게 그 꿈 얘기를 하고 그리게 한 것이 ‘몽유도원도’라는 그림입니다. 원본은 일본 천리대학에 있고, 그 복사본을 언제가 전주 박물관에서 전시한 적이 있습니다.
이태백은 잔치를 베풀면서 시를 짓게 했답니다. 그것을 책으로 묶고, 좌장인 이태백은 머리말을 썼습니다. 곧 ‘춘야연도리원서(春夜宴桃李園序)’입니다. 흥겨운 기분이 가득 담겨 있습니다. 우리가 친지를 불러서 이태백을 흉내 내어 잔치를 베풀 수가 없다면 그 머리말이라도 읽어 볼 일입니다. 그런대로 덩 달라서 제법 흥이 느껴집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똑 같이 어른들은 헛기침부터 합니다. 소위, ‘허사’라는 것 입니다. “부천지자 만물지역려(夫天地者 萬物之逆旅)” “무릇, 천지라는 것은 만물을 맞이하는 여관이요.” “시간이라는 것은 긴 세월을 거쳐 지나가는 나그네이다. 덧 없는 인생 꿈과 같으니, 즐긴다 하여도 얼마나 되겠는가? 옛 사람들이 촛불을 들고 밤에도 노닌 것은 진실로 까닭이 있었구나! 하물며 따뜻한 봄날이 안개 낀 경치로써 나를 부르고 천지가 나에게 문장을 빌려주었음이랴!” 자못 거창하지 않습니까?
안견의 ‘몽유도원도(38.7cm X 106.5cm)’는 크게 세 부분으로 되어 있습니다. 왼편에 속세의 밋밋한 산들이 있고, 동굴입구가 감추어진 기암괴석들이 있습니다. 무릉도원은 가운데부터 오른편으로 기암괴석들 사이에 손바닥만 한 분지인데, 복숭아꽃이 만발했습니다. 봉숭아꽃에는 금가루를 실제로 뿌렸답니다. 무릉도원 물가에 어부가 타고 왔음직한 빈 배가 닿아 있는데, 어느 곳에도 사람은 보이지 않습니다. 사실 그림에 감상평을 쓴 사람들이, 성삼문을 비롯해서, 여럿인데 대부분 세조에게 죽음을 당했다 합니다. 구한말에 심전 안중식(1861-1919)이 그린 ‘도원문진도’도 유명합니다. 어부가 혼자 노를 저으며 복숭아꽃이 만발한 좁은 골짜기로 접어드는 모습을 그렸습니다. 물감을 ‘진채’라고 광물을 빻아 채색하여 빛깔이 살아있는 듯합니다. 세로로 된 그림으로 무릉도원의 모습은 나타나 있지 않습니다.
저도 무릉도원을 찾으려 한 적이 있었습니다. 어디는 몇 군데 실제로 찾아가기도 했습니다. 진안군 주천면에 무릉리가 있습니다. 운일암반일암 골짜기 물줄기를 따라 올라가면 오른편으로 무릉리 골짜기에서 내려오는 작은 냇물을 만날 수 있습니다. 무릉도원은 복숭아꽃잎이 물에 떠서 내려오는 곳을 찾아, 냇물을 거슬러, 올라간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 그럴만한 곳이 많습니다. 무릉도원에 사는 사람들에 대한 얘기를 보면 뭐 별 것이 없습니다. “세상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고 산다.”는 것뿐입니다. 영생의 얘기는 없습니다. 왜 스티브 잡스가 참 중요한 말을 했잖습니까. “죽음은 조물주가 발명한 최고의 휴식이다.” 암으로 고통 받는 사람의 얘기일수도 있지만, 사실일 것입니다. 세월이 가면 육신은 낡습니다. 낡은 육신에 영생이라니, 그런 비극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지금 저희 동네에도 매화가 한창입니다. 옆집이 복숭아 배 과수원인데 곧 꽃이 필 것입니다. 바람에 꽃잎이 날리면 동네를 흐르는 냇물을 타고 전주천을 따라 내려갈 것입니다. 전주천변에는 아침마다 장이 섭니다. 안개 속에 떠내려 오는 매화꽃잎 복숭아꽃잎을 누가 봤을까요. 누가 그 꽃잎이 흘러 내려오는 곳을 찾아 거슬러 올라오는 사람이 없을까요. 그 물줄기를 따라오면 분명히 과수원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복숭아꽃 오얏꽃이 핀 어느 저녁이면 흥겨운 음악소리도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둘러보면 그런 곳은 우리 주위에 많을 것입니다. 꽃들은 아침이나 저녁에 향기가 짙습니다. 나관중의 삼국지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장면 가운데 하나는 ‘도원결의’입니다. 장비의 집 뒤 복숭아 과수원에서 ‘천지신명께 제를 올리고, 결의를 했다.’는 것 아닙니까. 그것도 바로 ‘춘야연도리원’이었던 셈입니다.
을하

봄날 밤에 벌어지는 잔치는 정겨움과 흥겨움이 절로 날 것입니다.
참으로 가슴 설레는 만남이 아닐까요.
잘 읽었습니다. 진정코 사람들이 그리워집니다. <화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