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이 딸아이를 키우는 데 두 살짜리 아들을 데려와 중매서는 자가 있었다. 그는 화가 나서 말하기를 “내 딸은 한 살인데 저 아이는 두 살이다. 내 딸이 열 살이 되면 저 아이는 스무 살이 될 것이다. 어찌 늙은 사위를 허락하겠는가?”라고 말했다. 아내가 그 말을 듣고는 남편에게 “내 딸은 올해 한 살이니 내년에는 저 아이와 동갑이 될 것입니다. 어찌 혼인을 허락하지 않으십니까?”라고 반문했다.
‘광소부(廣笑府)’ ‘상기’에 나오는 부부의 나이 셈에 관한 우스운 얘기다. 이들 부부처럼 자기 셈만이 그저 옳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어디 한둘이겠는가.
달이 비록 맑고 깨끗하지만 사람을 전혀 따뜻하게 할 수 없고 심지어 이슬조차 말리지 못함을 한탄했다. 고민을 거듭하다가 해에게 가르침을 청했다. 해가 답했다. “네 스스로 이제껏 열을 낸 적이 한 번도 없고, 늘 다른 사람의 빛을 빌려 쓰기 때문이야.”
첸삐정(陳必錚)이라는 우언작가의 ‘달의 고민’이라는 작품의 내용이다. 첸삐정은 달빛의 차가운 느낌을 이처럼 표현했다. 그러면서 사회의 차광(借光)현상을 꼬집었다. 어디 달 뿐이랴. 숱한 사람들도 첸의 달처럼 고민한다. 그러나 그저 남의 힘을 빌려 자기를 과시하거나 위세를 부리는 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하지만 달이란 묘한 존재다. 인간이 발을 디뎌봤는데도 아직도 계수나무 한 그루를 품고 있고 옥토끼가 떡방아로 떡을 찧는다고 믿는 이가 있다. 항아도 살고 달두꺼비도 키운다. 어디까지나 문학과 예술의 영역에서 그렇다. 마침내는 UN이 달을 노래한 저 유명한 시선(詩仙) 이백의 이름을 붙인 달 크레이터도 생겨나지 않았는가.
중세 때부터 동양과 서양의 달에 대한 전통적인 인식이 달라진다. 동양에서는 달을 푸근한 것, 좋은 것으로 본 것에 비해 서양에서는 달을 불안한 것, 광기, 공포의 상징으로 생각하는 등 부정적으로 보았다. 이로 인해 동양인들이 서양의 매체나 작품을 볼 때 달에 관한 복선이나 암시 등을 알아채지 못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동양에서는 보름달이 뜨는 날이 명절인 경우가 많고 한국의 경우 정월 대보름엔 보름달을 보며 소원을 빌곤 한다. 달아 달아 밝은 달아 이태백이 놀던 달아… 어쩌고 저쩌고. 하지만 서양에서는 보름달 아래에서 마귀들이 축제를 벌인다고도 하고, 보름달이 뜨는 날엔 늑대인간이 돌아다니고, 보름달을 보면 미친다고 생각했다. ‘달‘이라는 뜻의 Luna에 ‘~스러운‘, ‘~적인‘의 뜻의 접미사 -tic이 결합한 단어인 Lunatic은 미치광이를 의미한다.
중근동과 고대 서양에선 달은 곧 여신이며 마술적 힘으로 상징, 숭배됐다. 이렇듯 사람들은 같은 대상을 놓고도 천양지차로 달리 본다.
거문고를 훌륭하게 타려면 농현을 할 줄 알아야 한다. 허나 기러기발을 갖풀(아교)로 고착하고 거문고를 탄다고 해서 좋은 곡이 나오는가. 천만에다. 거문고나 가야금의 음률을 맞추려면 줄을 괴는 기러기발을 움직여 가며 조정해야 한다. 그런데 기러기발을 아교로 붙여 놓으면 음을 조절할 수가 없는 건 뻔한 일 아닌가. 규칙에 구애돼 변통을 알지 못하는 고지식하고 벽창호같은 답답이들만 안족을 붙들어 매려 들 뿐이다.
문자(文子)의 〈도덕(道德)〉에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온다. 문자는 노자(老子)의 제자로, 공자(孔子)와 동시대 사람이다.
“한 시대의 규정이나 제도로써 후대의 풍속을 부정하는 것은 비유하자면 거문고의 기러기발을 아교로 붙여 연주하는 격이다.”(執一世之法籍, 以非傳代之俗, 譬猶膠柱調瑟.)
더 이상 말하면 부질서다. 세상을 사는 이치도 그렇다. ‘교주고슬’하며 사는 것이 과연 현명할까. 그보다는 세상과 적절히 음률을 맞추기도 하고, 필요하면 더불어 농현도 하는 것이 지혜롭게 살아가는 방법일 성싶다. 단지 그게 그리 쉽지는 않다는 점이 딱할 따름이다.
또 다른 말을 하자. 어떤 사람이 흑단목으로 만든, 멀리 나가고 정확한 양궁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활의 겉모양이 볼품없다고 생각해 훌륭한 조각가에게 수렵도 한 장면을 활에다 조각해 달라고 청했다. 다 조각을 마치자 그는 활에게 “너에게는 이같은 장식이 딱 어울리는구나, 내 사랑스런 활이여”라고 기뻐하면서 말했다. 그러고는 활시위를 한번 힘껏 당겨봤다. 활은 그만 부러져버렸다. 독일의 극작가 레싱(G. E. Lessing) 의 산문우언 ‘좋은 활의 주인’ 이야기다.
활은 어디까지나 화살을 멀리 정확히 쏘아 보내는 것이 주된 목적이다. 그런데 거기에 멋을 내려고 장식을 하다 오히려 제 구실을 못하게 한다면 그게 잘한 일인가. 이처럼 본과 말이 뒤바뀐 경우를 우리는 자주 본다.
숙(남해의 제왕)과 홀(북해의 제왕), 그리고 혼돈(중앙의 제왕)이 살았다. 한 번은 숙과 홀이 혼돈의 땅에서 만났는데 혼돈이 아주 융숭한 대우를 해줬다. 숙과 홀이 혼돈에게 보답하려고 의논했다. “사람에게는 모두 일곱 구멍이 있다. 이를 통해 보고 듣고 먹고 숨을 쉰다. 그런데 이게 혼돈에게만 없다. 시험 삼아 한 번 뚫어주자” 그러고는 날마다 한 구멍씩 뚫었는데 7일 만에 혼돈이 죽어버렸다. 장자 내편 응제왕에 나오는 얘기다.
이를 두고 양(梁)나라의 간문제(簡文帝)는 “숙과 홀은 신속으로 이름 삼은 것이요, 혼돈은 화합하는 모습이다. 신속은 유위(有爲)를 비유하고 화합은 무위(無爲)를 비유한다”고 해석했다. 문인 최선(崔譔)의 주에는 “7일 만에 혼돈이 죽었다”는 것에 대해 “자연에 순종하지 않고 억지로 눈과 귀를 뚫은 것을 말한다”고 했다. 이로 보아 이 이야기는 ‘혼돈’으로 도가의 이상인 자연 무위의 상태를 상징하고, 숙과 홀로 번잡한 정치적 조치를 상징하고 있으며 , 혼돈의 죽음으로 이상세계가 사라짐을 상징했다.
모든 자연 이치가 그렇다. ‘있는 그대로’를 무리하게 또는 무식하게 바로 잡으려 든다면 결국에는 탈이 난다. 굳이 ‘전두환’을 말하지 않으련다. 자연스럽다는 것은 곧 이치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던가.
소동파가 ‘제서림벽(題西林壁)’에서 “옆으로 보면 준령이고 세워 보면 봉우리라. 멀리서 가까이서 높은 데서 낮은 데서 그 모습 제각각일세. 여산의 참모습(眞面目)을 알지 못하는 까닭은 단지 이 몸이 산 속에 있기 때문이라네”라고 읊었다.
산속에 들어가 있으면 부분적인 산의 모습은 볼 수 있지만 산 전체의 모습을 보기 어렵다는 말, 그것이라고 새긴다. 산을 제대로 보려면 적당한 거리를 두고,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봐야 참 모습을 알 수 있다는 얘기다. 단순하지만 오묘한 삶의 이치를 말하고 있다. 사물이나 사람, 그리고 세상일도 마찬가지지 않을까 싶다. 다시 말해 관점이나 관찰의 각도를 바꾸기만 하면 얼마든지 달리 보인다는 그 쉬운 가르침이다. 누군들 모르겠는가. 그러나 그걸 삶에 옮기기란?
중국 고대에는 곤(鯀)과 우(禹)가 물을 다스렸다는 역사 전설이 있다. 곤은 물을 가두어 막는 방법을 썼고 우는 물길을 틔워 유도하는 방법을 썼다. 그런데 곤은 실패하고 우는 성공했다. 치산치수 얘기다. 그 방법을 모르는가. 다 알고 있다. 지금 우리의 현실이 중국 고대하고 비슷할 리는 없다. 조금치도 없다. 아니 전혀 없다. 허나 자연의 이치나 순리, 사람의 생각이나 슬기는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를 게 없다.
이를 모른대서야 어찌 말이 되겠는가. 난사람들이여! 막을까 틔울까, 찧고 까불지 말라. 다 저마다의 머릿속이 있다. 나라가 필요 없고 이념이 필요 없다. 저 뛰어난 마오쩌뚱이 대장정을 가면서 한 말이 있다. “내가 배고파도 절대로 인민들을 괴롭히지 마라” 그리하여 대장정은 완성됐다. 이를 본받아야 민심을 익히는 거다. 설익고 어설픈 그대들이 장난치는 것이 깊이 없는 셈본이라는 것, 누군들 모르겠는가. 호도하지 말라.
오월에는 조용히 잠기라.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를 생각하라. 그 다음에 할아버지와 할머니, 순국선열을 생각하라. 어디서 경박하게 설치려 드는가. 한 없이 잦아들라. 오월의 햇빛이 밝다. 물론 해는 오월에만 뜨는 것이 아니지만. <화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