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언각비>23. 베갯돌로 양치질하고

낙하산을 파는 한 가게가 있었다. 손님이 물건을 고르며 물었다. “이 낙하산 확실한 거요? 혹시 불량품이라면 어떻게 합니까?” 주인 왈 “전혀 걱정 마십시오. 혹시라도 불량품이라면 100% 환불해드립니다.”

언뜻 보면 100% 환불 보장이라는 말 때문에 이 가게주인이 신뢰성 높은 사람처럼 보인다. 그러나 불량품을 환불받기 전에 담보한 것은?

요즘 세상 돌아가는 꼴을 보면 앞의 우스개가 떠오른다. 정치인들은 거개가 낙하산가게 주인과 같은 생각들을 갖고 있다.

대대손손 물려 써야 할 국토를 놓고 마치 물건만 팔면 끝이라는 식의 장사꾼 논리가 판친다. 당대에 아무 일 없으면 내가 죽은 뒤에야 ‘나는 모른다’는 셈속이다. 4대강사업이 그렇고 세종시 수정안이 그렇다.

이런 단견과 눈가림이 횡행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눈앞의 자기 이익이 먼 앞날의 가능성과 여지보다 훨씬 달콤하기 때문이다. 설사 훗날 어떤 손실과 대가가 따른다 해도 지금 내게 이익이 있으면 그만이라는 생각에서다. 또 모든 것을 자기가 직접 결정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독단과 아집만이 넘친다. 모두가 그 잘난 만기친람(萬機親覽)의 정치논리에서 비롯된다. 무엇보다 권한과 책임을 오해한 탓이다.

속담에 ‘채반이 용수가 되게 우긴다’는 말이 있다. 지나치게 자신의 의견만을 고집하면서 다른 사람들의 견해에는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는 사람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홍두깨로 소를 몬다’는 속담 역시 무리한 일을 억지로 한다는 뜻으로, 가당치도 않은 의견을 끝까지 주장할 때 쓴다.

정치인의 아전인수(我田引水)는 너무 뻔해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다. 자기만 이롭게 하려는 부류가 어찌 정치인뿐일까마는 그래도 정도껏이고 유분수다. 전혀 가당치도 않은 주장을 억지로 끌어다 붙여 조건에 꿰맞추려고 하니 무리인 것은 뻔하다. 그러니 아무리 콩으로 메주를 쑨대도 믿음이 안 가는 것은 당연지사다. 최소한의 도리나 염치는 뒷전인 채 자기 주장만을 내세우면서 합당하다고 우겨대니 뉘라서 믿어주겠는가. 한 패거리이거나 서로 말을 맞춘 사이가 아니라면 곧이곧대로 듣는 사람이 미련퉁이다.

진(晉)나라가 한창 혼란에 빠져있을 때, 지식인들 사이에는 청담(淸談)이 유행했다. 난세에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명리를 떠나 ‘노장풍(老莊風)’ 철학적 담론을 즐겼다. 그 가운데 한 가지 얘기가 재미있다.

손초(孫楚)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가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고 산림에 은거하기로 결심한 뒤 친구 왕제(王濟)에게 자기 생각을 털어놨다.

그는 “돌을 베개 삼아 눕고 흐르는 물로 양치질하는(枕石漱流) 생활을 하고 싶다”고 말할 것을 잘못해 “돌로 양치질하고 흐르는 물을 베개 삼겠다(漱石枕流)”고 말했다. 왕제가 웃으며 실언임을 지적하자 손초는 무척이나 자존심이 상해 억지를 부리며 이렇게 말했다.

“흐르는 물로 베개를 삼겠다는 것은 고대의 은자 허유(許由)처럼 쓸데없는 말을 들었을 때 더러워진 귀를 씻기 위해서이고, 돌로 양치질한다는 것은 내 이를 연마하기 위해서일세.”

‘견강부회’도 이쯤 되면 할 말 다했다. 손초처럼 남에게 지기 싫어하는 성격들은 오늘날에도 흔하다. 그 자승지벽(自勝之癖)이 개인의 억지로 끝난다면야 아무런 문제될 것이 없다.

이보다 훨씬 더한 경우가 지록위마(指鹿爲馬)다.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한다면 누가 수긍하겠는가. 하지만 권력자는 이를 가능케 한다. 진(秦)나라 승상 조고는 말이 아니라고 한 신하들을 기억했다가 차례차례 죽였다. 그것이 권력의 힘일 수도 있지만 분명한 권력의 횡포다. 하지만 유사 이후로 권력에 취하지 않고, 권력이란 위임받은 힘이란 속성을 제대로 깨우친 권력자는 그리 많지 않다.

요사이 유력 정치인들 사이에 고사를 인용한 논박이 한창이다. 마치 국민들의 교양 수준을 높여주겠다고 작정이라도 한 듯 고사 동원이 잦다.

정몽준 한나라당 대표가 ‘미생지신(尾生之信)’을 인용했다. 세종시 원안을 고수하는 박근혜 전 대표를 ‘고지식하고 융통성 없다’는 식으로 빗대기 위해서였다. 그러자 박 전대표가 ‘증자(曾子)의 돼지’ 고사를 들고 나왔다. 약속은 지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며 세종시 원안을 지키라고 압박하려는 뜻에서다.

물론 상황을 빗대서 설명하는데 고사만큼 편리한 도구도 없을 듯싶다. 하지만 정치인들의 고사를 인용한 상황설명은 대부분 자기 합리화이거나 아전인수이기 십상이다. 무조건 내 말을 믿으라는 식이기 때문이다.

‘증자의 돼지’ 고사는 한비자에 나온다. 원칙이니 약속이니 신뢰니 떠드는 정치 사기꾼들을 가장 조심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한비자는 바로 자기들 멋대로 원칙이니 약속이니 신뢰니 하면서 그것을 팔아먹는 사기꾼 정치인들을 가장 싫어했던 사람이다. 그 한비자가 오늘의 시비를 본다면 뭐라고 할 것인지 궁금하다. 하기는 없는 강에 다리를 놔준다거나 툭하면 뭣이든지 목숨을 걸고 지키겠다는 것이 정치인들의 습관성 거짓말이니 일정부분 접고 들으면 그뿐일 수도 있겠다.

‘고사 정치’는 어찌 보면 조금치도 믿음을 얻지 못하는 정치인들이 국민들의 주의를 끌기 위한 안간힘이라고 할 수 있다. 또 핏대를 올리며 원색적으로 난타전을 펴는 것보다야 낫기는 하다. 하지만 정치인에게 뭐니뭐니해도 믿음을 주는 것보다 더 좋은 노선은 없다.

“모든 사람을 잠시 속일 수는 있다. 몇 사람을 계속해서 속일 수도 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을 항상 속일 수는 없다.”

이 땅의 정치인들은 에이브라함 링컨의 이 말을 한번쯤 곱씹어봐야 하지 않나 싶다.<화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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