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언각비> 9. 얼토당토않은 논리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얼토당토않은 경우를 종종 만난다. 그것이 직접 자신이 겪는 일이건 세상 돌아가는 꼴이 가당찮은 경우건 모두 어처구니없기는 마찬가지다. 어제 내려진 헌법재판소의 미디어법 관련 판결도 그 가운데 하나다. 주요 골자는 입법절차상 위법행위는 인정하면서도 미디어법 효력은 유효하다는 내용이다. 마치 술은 먹었지만 음주운전은 아니라는 꼴이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될 뿐더러 해괴하기 그지없다.

양비론도 아니고 양시론도 아니다. 과정은 위법이라면서 결과는 위법이 아니라니 참 얼토당토않은 결정이 돼버렸다. 전후모순을 넘어 궤변에 가깝다. 가장 명쾌하고 뚜렷하게 판가름을 해줘야할 기관에서 국민들을 가장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다.

논리에 관한 한 최고라고 자부하는 직업인이 법관들이다. 그것도 법관들의 최고권위이자 수십년간 판결문을 써온 헌재 재판관들이 이런 모순을 자초하는 것은 왜인가.

무엇보다 정치적 부담을 피하기 위한 고육책인 듯 보인다. 하지만 그것 자체가 지나치게 정치적으로 이곳저곳 눈치를 보고 스스로의 권능을 포기한 판단이다. 가장 독립적이고 법논리적이어야 할 사법기관의 최고기구가 이 모양이니 여타 사법기관의 판단이나 재결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이 깊을 수밖에 없다.

어떤 일이 이치에 전혀 맞지 않고 엉뚱한 경우에 ‘얼토당토않다’고 한다. 이는 ‘옳도당하도 않다’가 변형된 꼴이다. ‘옳지도 당(當)하지도 않다’의 뜻이다. 여기서 ‘당(當)’은 어떤 핵심에 가장 근접해 있는 상태를 나타낸다. 어떤 일의 핵심에 있는 사람을 ‘당사자’라고 하며 적절하고 문제의 핵심에 가까운 것을 ‘적당하다’라고 할 때의 ‘당’이다.

결국 옳지도 마땅하지도 않다는 뜻이 바로 ‘얼토당토않다’이다. 옳지도 않을 뿐더러 마땅하지도 않으니 ‘이치에 전혀 합당하지 않다’는 뜻을 강조한 낱말이다. ‘얼토당토’ 혼자서는 쓰이지 않으므로 ‘얼토당토않다’는 붙여 쓴다.

얼토당토않은 일을 자주 겪다 보면 누구나 세상이란 다 그런 것 아니냐며 가치의 혼란과 도덕률의 혼돈에 익숙해진다. 그러면서 어느 새 뭐가 대수냐 하고 태연히 넘기게 된다. 그런 개인이 늘게 되면 결국 세상은 온통 아수라장이 될 것은 뻔한 이치다. 그래서 책임있는 기관인 헌재는 옳고도 마땅한 판결을 내렸어야 했다. <화산>

답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