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간절하다 못해 처절한 염원과 고대조차도 묵살한 채 그저 묵묵부답이다. 지금까지도 기적은커녕 아무런 응답조차 없다. 그저 이따금씩 우리에게 돌아온 것은 싸늘한 주검뿐이었다.
어느 봄날 수백의 무고한 목숨들이 한꺼번에 무너져 내렸다. 진도 앞바다 그 물살 빠른 수로에서 배칸에 갇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스러져 갔다. 애먼 그 겨레붙이들은 영문도 모른 채 완강한 철벽의 감방에 붙들려 차꼬에 묶였다. 아무런 죄 없이 가혹한 형벌을 받아야 했다. 벌이라면 죄 지은 자가 받아야 할 터. 그러나 이 세상은 공평하지 않았다. 더구나 온당하지도 않았다. 아무 죄 없는 이들이 저처럼 허망하게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 이 가혹한 현실이 너무도 처참하다. 수백의 꽃다운 젊음들이 거기에 있었기에 더욱 그렇다. 그저 싱그러운 목숨을 빛내면서 팔팔한 푸르름을 뽐내야 할 이 땅에서 그 꽃부리들은 서서히 삶을 놓아야 했다.
우리는 그 영혼들이 이 땅을 빨리 잊고 싶게 만들었다. 그 꽃부리들이 얼마나 핏줄기를 그리워하며 목숨을 내놓았을까. 배움을 위한 여행을 마치고 아무 일 없었던 듯 돌아가 가족과 다시 만났어야 했다. 그게 제대로 된 세상이다. 그러나 이 땅의 형편은 그렇지 못했다.
차마 놓치고 싶지 않은 목숨의 끈을 끝내 놓을 수밖에 없었을 때 그 맑은 영혼들은 얼마나 통탄스러웠을까. 얼마나 억울하고 답답했을까. 얼마나 그 막막한 어둠과 꽉 막힌 쇠틀 속에서 뛰쳐나오고 싶었을까. 배를 타기 전만 해도 창창한 앞날과 저마다의 소중한 꿈들로 희망에 부풀었을 텐데. 배를 탄지 얼마 안 돼 그렇게 지옥같은 일이 벌어질 줄 짐작이나 했겠는가.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는 그 저주스런 안내방송만 없었더라도 그 귀하디 귀한 삼백여 목숨은 고스란히 살았을 텐데. 어찌하여 그 저주의 안내는 거듭거듭 되풀이 됐단 말인가. 지옥이 따로 없었을 그 공간에서 차분히 기다리고 있었던 그 애꿎은 목숨들에게 우리는 뭐라고 사죄를 해야 하는가. 아무 말 한 마디도 할 수 없다. 그 어떤 참회와 사죄로도 용서받을 수 없다. 하여 무참한 나날이다.
더더욱 통탄스러운 것은 배를 제대로 띄우고 승객들의 안전을 책임져야할 선원들의 무책임과 몰인간적 행태들이다. 수백명 승객의 목숨과 안전은 뒷전인 채 제 한 몸만 살겠다고 서둘러 빠져나오는 꼬락서니는 인간의 모습이 아니었다. 인두겁을 썼을 따름이지 한낱 비인간(非人間)들이었던 그들의 방자함과 무도막심함 앞에 사람이 무서워질 따름이다. 못된 선장과 선원들의 꼬일 대로 꼬인 심뽀를 믿고 자신의 목숨을 내맡긴 것이 고인들의 죄 아닌 죄였다.
따져보면 졸지에 이같이 비정한 세상이 된 것만은 아니다. 사람 사는 세상이 이다지도 몰인정과 무인륜이 횡행했더란 말인가. 기적이 일어나길 그토록 간구했건만 단 한 건도 기적은 없었다. 배가 기울기 시작할 때부터 갇힌 승객 구조는 도통 해보지도 않은 해경이었다. 때문에 애초부터 허튼 기대와 부질없는 기다림이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더 이상 어찌 해볼 수 없는 어미아비의 속타는 마음으로 기다렸다. 혹이라도 혹이라도 목이 빠지게 바랐지만 종무소식이었다. 설사 교만하고 무도한 인간들은 하늘이 벌한다고 내려진 처형치고는 너무도 잔인하고 끔찍한 참극이다. 인간의 교만과 무도함을 징치하려면 차라리 다른 벌을 내릴 것이지 어찌하여 가엾은 어린 꽃송이들을 불러간단 말인가. 왜 이처럼 모지락스런 벌을 내린단 말인가. 하늘이 야속하고 원망스럽다.
이제 더 이상 대꾸 없는 기도나 간구는 그만 멈추련다. 다만 한 가지 뚜렷한 가르침은 새긴다. 세상은 정녕 한 치의 미련이나 실오리같은 희망조차 허용하지 않는 엄연하고 냉혹한 곳이라고. 세상에는 인간의 모습을 한 비인간들이 곳곳에 함정을 파고 웅크리고 앉아 있다고.그리하여 우리에게는 매 순간마다 인심의 간교한 속임수나 교활한 눈가림을 용납하지 말고 가려내는 예지와 통찰이 필요하다.
지금은 세월호 속 수백의 부모형제 자식만이 우리 곁을 떠난 것이 아니다. 수천 수만의 우리 부모형제 자식이 우리를 떠난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승을 떠난 그들은 차마 인연 때문에 우리를 원망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을 제대로 돌아보거나 우러를 수 없는 존재들이 됐다. 눈앞에서 수백의 목숨들이 참혹하게 숨져갈 때 속수무책으로 지켜보기만 했던 우리였다. 더 이상 우리는 사람구실 하는 존재가 되지 못한다. 이제 우리 모두는 죄인들이다. 죄 없는 수백의 영혼들을 아무 힘도 쓰지 못한 채 속절없이 저세상으로 보낼 수밖에 없었던 무력하고 나약한 죄인들이다. 비굴하고 용렬한 죄인이다. 뻔뻔하고 몰인정한 죄인이다.
만에 하나 저 먼 하늘에 가 있는 영령들이 우리를 용서한다면 지금에야말로 우리는 거듭 나야 한다. 이대로는 결코 안 된다. 무게중심을 잃은 것은 세월호만이 아니었다. 지금껏 우리 모두가 중심을 잃고 있었다. 하지만 약삭빠른 눈가림으로 짐짓 진실된 척하며 스스로를 속여왔다. 그러다가 끝내는 썩을 대로 썩어서 곪아 터졌을 따름이다.
세월호 비극의 책임은 여럿에게 있다. 그중에서도 승객들을 제쳐놓고 먼저 도피하듯 탈출한 선장과 승무원의 책임이 크다. 비정상적으로 배를 개조하고 규정을 어겨가며 운항한 해운회사도 못지않다. 초동 대처와 구조에 실패한 해경 책임도 막중하다. 하지만 참사의 근본 원인은 뿌리 깊게 자리 잡은 온갖 비정상과 편법과 비리에서 찾아야 한다.
먼저 몰인심이다. 정상적인 인심을 가진 선장과 승무원들이었다면 이처럼 큰 희생은 나올 수 없다. 자신들이 살기 전에 먼저 승객들의 생명을 구했어야 하는데 인심이 제대로 박혀있지 않으니 그런 사명감이 있을 리 만무하다.
다음 몰인륜이다. 인륜이 무너지니 온세상이 오로지 돈벌이에만 눈이 멀어 있다. 청해진해운의 선박 개조와 비정상적인 화물 적재는 오래전부터 이미 사고를 예고하고 있었다. 그런 회사의 사주와 경영자들에게 사람 목숨은 소중한 것이 아니고 돈벌이를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았다. ‘불인인지심(不忍人之心)’이라 했거늘 차마 남에게 하지 못하는 마음을 그런 뻔뻔한 자들에게 기대나 하겠는가.
게다가 무원칙이다. 돈 버는 일이라면 안전을 위한 원칙이나 생명을 존중하는 기본조차도 내팽개치는 것이 우리 사회다. 원칙 따위는 그저 거추장스런 형식에 지나지 않는다. 당장 눈앞에서 일이 터지는 것도 아닌데 그까짓 원칙을 지켜서 뭐하느냐는 투다. 그러다가 대형 참극이 벌어지고 나서야 처음부터 잘못됐다느니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느니 호들갑들이다.
또한 무대책이다. 하인리히 법칙이 아니더라도 재난에 버금가는 대형사고의 징후는 곳곳에서 탐지되고 발견된다. 그런데도 사고가 터지면 마치 빨리 잊어버리고 싶다는 태도들이다. 그리고는 대책은 뒷전이다. 망각만이 고통으로부터 해방이라는 자세로는 또 다른 재앙의 되풀이를 막을 길 없다. 망각은 고통과 비극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도피하는 것임을 분명이 깨달아야 한다. 때문에 구석구석 참사의 원인을 따져서 대응책을 세우고 예방을 위한 실천수칙을 만들어야 한다.
더구나 무내일(無來日)이다. 하여 미래가 없다. 우선 당장만 모면하면 만사 끝이라는 사고방식으로는 미래를 기약할 수가 없다. 우리는 참으로 손쉽게 우선 편한 것, 우선 달콤한 것만을 즐겨 찾았다. 허니 긴 안목이 있을 리 없고 먼 내일을 도모할 수 없을 것 아닌가.
다음으로 무신이다. 믿음이 없다는 것은 우리 사회 전체에 크나큰 장애물이다. 이래서는 공동체라고 할 수도 없다. 이번 세월호 비극도 믿음이 없기에 초래된 참극이다. 안전을 믿을 수 없고 규정을 믿을 수 없고 사람은 더더욱 믿을 수 없었던 결과 아닌가. 이 엄청난 재앙을 교훈 삼아 믿음을 세워 가는 공동체가 돼야 한다. 그러려면 지름길만을 탐하지 않아야 한다. 일시적인 편리만을 쫓아서 공명한 방법을 버려서는 안 된다.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의 협잡꾼 같은 일을 하지 말아야 된다는 말이다.
덧붙여 무능이다. 정부 당국은 이번 참사에 대처하는 능력도 없었지만 지휘하는 사령탑도 우왕좌왕했다. 아예 사령탑을 세우지조차 못하고 갈팡질팡했다. 이런 때는 무능하다면 무책임하지는 말아야 한다는 말이 새삼스럽다. 하기는 무능한 이들에게 책임을 주문하는 것이 무리겠지만 말이다.
지금은 살아남은 누구도 무고하지 않다. 우리의 부끄러운 모습들은 속속들이 드러났다. 때문에 우리의 죄과에 대해 날마다 형벌을 받는다는 죄인의 마음이 필요하다. 단지 몇몇만을 단두대에 올리고 분노하고 성토한다고 해서 분이 풀리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이제 정녕 우리는 집착에서 벗어나야 한다. 성장이나 발전이라는 허황된 외형에 현혹돼 편법과 비리와 부정에 눈감았던 것이 쌓이고 쌓여 오늘을 빚었다. 우리 모두는 진정으로 죄인된 마음가짐과 죄값을 치르는 자세를 잃지 말아야 한다. 그것만이 무사안일과 교만에 빠진 우리를 제대로 세우는 길이자 애달픈 영혼들을 조금이라도 위무하는 최소한의 길이다. 무참히 스러져간 영령들이시여! 부디 거짓과 욕됨이 없는 곳에서 편히 잠드소서. <화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