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전> 박용래 약전(略傳) 5, 이문구

 

<평전>               박용래 약전(略傳)

 

                                                           이문구

                                 5

 1973년 가을, 나는 연작소설 <관촌수필(冠村隨筆)>을 쓰면서 박시인의 눈물을 다음과 같이 곁들였다.

 

  그러께, 눈발이 희뜩거리던 겨울 어느 날  이른 아침, 갑자기 내가 보고 싶어서 무턱대고 새벽 첫차로 상경했노라며, 내가 출근하기 전부터 내 근무처 건물의 지하다방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박용래씨만 해도, 그가 정과 한에 어혈이든 눈물의 시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은 실로 그날 아침의 일이었다.

  아침 9시부터 백제 유민(百濟遺民) 박씨와 나는 난로가 후끈한 중국집 식탁에 늘어붙어, 창밖에 쏟아지는 함박눈을 내다보며 고량주를 마셨다. 하늘의 선심 같은 푸짐한 눈발 때문이었겠지만, 씨는 불쑥 밑둥도 없는 말을 내놓았다.

  “왜정 때 내가 조선은행(한국은행)에 댕길 적에 말여……”

씨는 전재민같이 야윈 손가락으로 고량주잔을 삼키고 나서 말했다.

  “조선은행권 현찰을 곳간차에 가득 싣고 경원선(京元線)을 달리는디, 블라디보스톡까지 논스톱으로 달리는디말려……”

  “경비원으로 묻어 갔더라, 그 말이시구먼.”

  “야, 너 웨 그러네? 웨 그려? 이래 뵈두 무장 경호원이 본인을 경호허던 시절이 있어야. 현찰 운송 책임을 내가 자원했던 거여. 너 참 이상해졌다야. 웨 그려?  오- 그눈…… 그 눈송이…… 그 두만강……”

  “…………”

  “이까짓 눈두 눈인 중 아네? 눈인 중 알어? 너두 한심허구나야, 원산역을 지날 때 눈발이 비치더니, 청진을 지나니께 정신웂이 쏟아지는디, 아- 그런 눈은 처음이었었어……아- 그 눈……”

  그는 이미 떨리는 음성이었고 두 눈시울에는 벌써 삼수갑산 저문 산자락에 붐비던 눈송이가 녹으며 모여 토담집 부엉 두멍처럼 넘실거리고 있었다.

  “워땠는지 내라 봤으야 알지유.”

  “그러냐. 야, 너두 되게 한심하구나야. 그래가지구 무슨 문학을 헌다구. 나는 ……나는 울었다. 그냥 울었다. 두만강 눈송이를 바라보며 한없이 그냥 울었단 말여……”

  어느덧 그의 양어깨에 두만강의 물너울이 실리면서 두 볼에는 강이 흐르고 있었다. 식민지 시대의 두만강이 흐르고 있었다.

  “오, 두만강…… 오, 두만강의 눈…… 오 …… 오 ……”

 그는 아침 9시 반부터 두만강을 부르며 울기 시작하여, 그날 밤 9시 반 넘어 여관방에 쓰러져 꿈결에 ‘두만강의 뱃노래’를 부를 수 있게 되기까지 쉬지 않고 울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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