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언각비 63> 거짓말이 가르쳐준 진실

이런 일이 있을까 한번 생각해보자.

당신이 첫 아이를 임신했다. 당신과 남편은 아이의 건강을 염려하며 첫 아이가 태어날 날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출산예정일이 한 달 남짓 남은 어느 날 희소식이 날아들었다. 당신이 개인으로서 받을 수 있는 업계 최고 영예를 상징하는 상의 수상자로 선정됐다는 통보였다. 이 상은 동료들이 투표로 수상자를 선정한다. 수많은 언론들이 참여한 대형 행사장에 업계의 주요 인사들이 모두 모여 당신의 공로와 업적을 하나하나 거론하며 칭찬과 격려의 말을 잇달아 앞세웠다.

당신은 연단에 올라 감격스러운 수상연설을 한다. 기쁨으로 목이 메는 가운데 고개를 돌려 남편을 본 당신은 이렇게 말한다. “당신이 없었다면 이 자리는 내게 아무런 의미가 없을 거예요. 당신 덕분에 사랑을 알게 됐어요.”

떠들썩한 축하파티가 열리고 지인과 동료들이 모두 참석해 너도나도 축하인사를 건넨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안, 서로 손을 꼭 잡은 채 당신은 남편의 얼굴에 쉴 새 없이 키스를 퍼붓는다. 집에 도착한 당신은 남편과 지난 5년간 함께 써온 침대에서 사랑을 나눴고, 생애 최고의 하루였음을 되새기며 스르르 잠에 빠진다.

꿈같은 순간은 딱 거기까지다. 잠에서 깬 당신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떨어진다. 당신이 출장 가서 뼈 빠지게 일하는 동안 남편은 피임도 안한 채 스트리퍼와 성관계를 가졌고 스트리퍼가 그 일을 만천하에 공개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이런 일은 쌔고도 쌨다. 우리나라에서도 요즘 자고 나면 각종 스캔들이 줄을 잇는다. 연예인의, 영화감독의, 재벌 총수의, 정치인의, 사법권력자의 남녀간 붙어먹기 행태가 늘상 벌어지는 일이 돼버렸다.

비록 유명 영화배우 산드라 블록이 아닐지라도 전남편 제시 제임스의 배신이 어떤 느낌이었을지 짐작하는 건 어렵지 않으리라. 흔히 망치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 같다고 말하는 그 기분 말이다.

살다 보면 누구나 뒤통수를 맞게 된다. 블록 정도 수준은 아니더라도 모든 배신은 아프게 마련이다. 제일 친한 친구가 남자친구를 뺏어가고, 믿었던 동료가 내 아이디어를 훔쳐가기도 한다. 그들의 거짓을 눈치 채고 배신감이 찾아들 때쯤에는 이미 가슴 한 쪽이 무너져 내리는 기분인데다 모두 다 끝장을 내고 싶을만큼 견디기 어려운 게 인지상정이다.

거짓말 경연대회가 열렸다. 상금이 푸짐하게 걸렸는지라 많은 사람이 출전했다. 어떤 연사가 무대 위로 올라갔다. 그는 글쎄 나는 큰 바위가 거미줄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한 사람은 나는 두부를 먹다가 이가 부러져서 치과에 다녀오는 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심사위원들은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다른 연사가 무대에 올라갔다. “이래 보여도 나는 정말 정직한 사람입니다. 내 평생에 거짓말이라고는 한 마디도 해본 일이 없습니다.”

듣고 있던 심사위원들은 감탄했다. 그리고 그를 1등으로 결정했다.

사실 우리는 수많은 거짓말 속에 살고 있다. 모르고도 속고 알고도 속는다. 정치적 사술이나 협잡이 전자의 예라면 광고나 홍보 등이 후자의 예에 속한다.

훗날 미국 군의 원수가 된 맥아더가 육군학교 교장을 맡고 있던 때의 일이다. 하루는 미국 국방위원들이 시찰을 나왔다. 맥아더는 각종 보고를 마치고 자기 방으로 안내했다. 방안에는 아무런 가구도 없고 단지 야전용 쇠 침대 하나만이 놓여있었다.

여기가 제가 생활하는 방입니다. 이곳에서 일주일을 지내고 주일에만 집으로 갑니다.”

맥아더는 내심 자기가 얼마나 고생을 하고 있는가를 말하려고 목에 힘을 주며 쇠 침대에서 자는 것을 강조했다. 시찰이 끝난 후 만찬이 베풀어졌고 금 접시에 멋진 요리들이 담겨 나왔다.

즐거운 식사가 끝나고 모두들 돌아간 뒤에 금 접시 하나가 없어졌다. 맥아더는 괘씸하게 생각하고서 범인을 잡으리라 마음먹었다. 먼저 국방위원들을 의심한 맥아더는 서신을 보내 금 접시의 행방을 캐물었다.

그런데 며칠 뒤 다음과 같은 편지 한 통을 받았다.

만일 장군님께서 그 날 밤 야전용 쇠 침대에서 주무셨다면 벌써 금 접시를 찾으셨을 것입니다. 제가 모포 밑에 접시를 넣어두었거든요.”

점잖은 체면에 톡톡히 망신만 당한 맥아더,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거짓말은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된다.

일이 엉망으로 틀어졌을 때 사람들이 책임을 회피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자칭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큰 실수를 저질러놓고도 솔직히 인정하지 않는 까닭은? 누가 옳으냐를 놓고 옥신각신 싸움이 끊이지 않는 까닭은? 남들의 위선은 보면서도 자신의 거짓은 보지 못하는 까닭은? 우리는 모두가 거짓말쟁이인가. 아니면 자신이 하는 이야기를 정말로 믿는 걸까.

많은 사람들이 지금 우리 사회가 총체적으로 위기에 빠져 있다고 우려한다. 여야를 막론하고 위기가 아니라고 진단하는 맹문이는 없다. 과거에도 늘 위기나 난국은 있었지만 함께노력하면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못하다. 희망이 사라진 자리에 절망이 앙버티고 있을 뿐이다. 절망감은 서서히 퍼져가는 게 아니다. 전염병처럼 삽시간에 확산돼 온 나라를 무섭도록 휘어잡고 있다. 정치는 말할 것도 없으려니와 민생들의 가장 화급한 과제인 경제마저 극도의 침체와 함몰 속에서 헤어 나올 줄을 모르는 판국이다. 어느 한 구석조차 희망을 찾아보기 어렵다. 지난 날 우리사회의 장점이자 에너지원이었던 활력신명은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어찌하여 이렇게 됐을까?

이처럼 우리사회가 전방위적 위기에 빠진 데는 응당 원인이 있게 마련이다. 복합적인 요인이 있겠으나 가장 큰 이유는 뭐라 해도 참다운 지도자의 부재다.

위기에 부딪혀서도 이를 타개할만한 경륜도 지혜도 결단력도 없는 지도자는 이미 지도자가 아니다. 알량한 경험이 밑천의 전부인 그런 지도자는 아무리 자기 목청을 돋워도 우리에게 절실하지 않다. 국가 전체가 아니라 자신이 속한 집단이나 정파의 이익에만 골몰하는 이는 지도자라기보다는 조직의 보스이거나 아예 골목대장이라 칭해야 마땅하다. 그런 아류들이 자기 정파의 이익을 국가 이익이나 되는 양 과대포장해 사회를 갈가리 찢어놓고는 그것을 정치라고 강변해댄다. 오늘날 어느 국민이 그런 뻔한 셈속을 모른단 말인가. 국민을 얕잡아 봐도 한참 우습게 봤다. 그러니 세상은 온통 절망과 한숨으로 넘쳐난다.

이로 인해 사람들 마음속에 뷸신과 그에 따른 자포자기와 증오로 가득하다.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 소통 위기의 당연한 귀결이 아닌가 한다. 그 원인제공은 물론 이 어설픈 정부와 그 편승자들이 가장 크게 해왔다.

이럴 땐 노자(老子)의 가르침이 사무치게 그립다.

큰 나라는 큰 인물과 같다. 큰 인물은 잘못을 저지르면 그것을 깨닫는다. 깨달으면 인정한다. 인정하면 바로잡는다. 자신의 잘못을 지적해주는 사람을 가장 고마운 스승으로 여긴다.”

그런 위대한 가르침을 한 순간이나마 마음에 품으려 했던 지도자나 정치인이 있기는 있는가.

사회를 과거로 되돌리려는 시대퇴행적 파도가 넘실대지만 이를 미래로 되돌리려는 지도자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래서 이 땅을 낙담과 실의로 가득차게 만들었다. 오죽하면 태어날 때부터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를 물고 태어난다는 수저론이 때 아니게 만연하는가.

분명 대한민국의 헌법 제11조를 보면 국민 모두가 신분상 평등한 나라다. 항에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고 명백히 명시돼 있다. 국민의 신분상 고하가 없다는 말이다. 그런데 어찌하여 21세기판 신분제 사회로 층하가 구분된단 말인가. 게다가 얼마나 감내하기 힘들었으면 현 사회를 지옥에다 빗대 헬조선이란 말까지 횡행하기에 이르렀는지 말문이 막힌다. 한국이 아닌 조선으로 빗댄 것은 신분제사회가 고착화돼가기 때문 아니겠는가. 모두 법 앞의 평등과 현실 속의 위상을 혼동한 탓이겠지만 말이다.

거짓말을 한 사람이 자신의 거짓말을 진실이라고 믿게 됐다면? 이를 웃어야 할까 울어야 할까. 불쌍히 여겨, 그를 거짓말쟁이라고 할 수는 없겠다. 무솔리니 생전에 있었던 한 사건을 보면 자신의 거짓말에 스스로 속게 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다지 유쾌한 일은 아니지만 말이다.

1938년 이탈리아는 3개 연대로 구성된 1개 사단을 2개 연대로 축소 편성했다. 무솔리니는 이렇게 함으로써 파시스트당이 실제 40개 사단보다 많은 60개 사단을 가졌다고 과대 선전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막상 전쟁이 시작됐을 때 이 조직개편은 엄청난 혼란을 초래했다. 몇 년이 지난 후 자신의 결정을 까맣게 잊은 무솔리니가 실제 파시스트당의 병력을 오판했던 결과, 비극을 불러왔다.

삼천갑자를 살았다는 동방삭이도 저 죽을 날은 몰랐다. 이 말처럼 천하태평인 배짱을 가진 이들이 우리네 정치꾼들이다. 어제도 배부르게 떵떵거리며 권세를 누렸고 오늘도 여봐란 듯이 호령하며 거들먹거리는 이 권능과 호사를 누가 당하랴. 하여 자신만은 어떤 난국이 닥쳐도 고통에서 끝내 자유로울 것이라 착각한다. 이런 반푼이 정치인들이 이 나라 정치를 떠맡고 있는 한 현단계에서 위기극복의 실마리는 풀기 어렵다. 권력은 양심에 코팅제처럼 작용한다. 지배적 위치에 있으면 거짓말을 더 쉽게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죄책감이나 후회도 전혀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1980년 프랑스의 그래노블에 있는 수학연구소에서 15개의 조등학교와 중학교 교사들이 학생들을 대상으로 다음과 같은 문제를 각각 출제했다.

배 위에는 스물여섯 마리의 양들과 열 마리의 염소들이 있다. 선장의 나이는 몇 살일까?”

한 반에 열두 명의 여학생과 열세 명의 남학생이 있다. 선생님의 나이는 몇 살일까?

출제자의 의도는 분명했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그 질문의 부조리함을 곧바로 알아챈 후 출제된 문제 자체에 오류가 있다고 지적해 달라는 것이 그것이다.

그러나 학생들의 반응은 교사들을 놀라게 했다. 초등학교 학생들 중에서 겨우 10%만이 해답이 있을 수 없다는 정답을 적었고 나머지 90%는 해답으로 두 숫자를 합쳐 놓았다. 중학교의 경우는 3분의 1이 초등학생들과 마찬가지로 틀린 답을 정답으로 제시했다.

이와 같은 예가 우리들에게도 자주 일어난다. 위와 같이 명백하게 부조리한 문제는 정답이 있으므로 틀린 답이 무엇인지 알아내기 마련이다. 인간의 지혜가 문제 있는 질문임을 파악할 수 있을 만큼 분별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역사적인 사건이나 설명이 교묘히 위장되거나 거짓으로 포장될 경우 이를 알아차리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게다가 거짓말의 파급효과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지면 커질수록 오히려 그것은 사실로 믿으려 하는 속성이 작용하게 된다. 거짓말을 가장 잘하는 사람이 위대한 정치가나 통치자가 된 사례를 자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그것이 증명된다.

거짓말에는 숨겨진 처벌이 뒤따른다. 물론 사회적으로도 처벌은 피할 수 없다.

한 주일학교 성인반 교사가 성경공부 시간에 이렇게 말했다.

다음 주에는 아주 중요한 교훈에 대해 배우겠습니다. 그러니 예습하는 차원에서 마가복음 17장을 모두 읽어 오세요.”

그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대로 하겠다는 뜻이었다. 다음 주가 되자 교사는 성경공부 참석자들에게 지난주에 마가복음 17장을 읽으신 분 손 한번 들어 보시겠어요?”라고 요구했다. 그 방의 거의 모든 사람들이 손을 들었다.

그러자 교사는 이렇게 말했다. “거참 재미있군요. 마가복음은 16장까지밖에 없는데 말입니다. 하지만 최소한 오늘 적절한 교훈을 배우게 되겠군요. 오늘은 예수님이 거짓말에 대해 어떻게 가르치시는지 배우겠습니다.”

거짓말에 대한 가장 엄한 형벌은 거짓말이 들통나는 것이 아니다. 거짓말을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말을 믿을 수 없게 되는 숨겨진처벌이 가장 무서운 벌이다.

어떤 경우에 거짓말을 해도 용서받을 수 있을까? 탈무드에서는 두 가지 경우에는 거짓말을 하라고 한다.

먼저 이미 벌써 누군가가 사 버린 물건에 대해서 의견을 구하여 왔을 때는 설령 그것이 나빠도 아주 훌륭한 선택을 했다고 거짓말을 하라고 한다. 다음으로 친구가 결혼했을 때에는 반드시 부인이 대단한 미인이라고 하면서 행복하게 살라고 거짓말을 하라. 모두 공감이 가는 말이다. 그처럼 행복한 결말을 위해서는 하얀 거짓말, 또는 선의의 거짓말을 하라는 가르침이겠다.

우리 사회가 거짓이 자연스럽고 오히려 정직이 어색한, 이상한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 이 거짓말의 사회를 끝내려면? ‘거짓은 진실 앞에 반드시 무릎 꿇는다는 희망 섞인 거짓말을 정말 그럴 거리고 믿어줘야 할까. <화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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