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려갈 때 보았네 / 올라갈 때 못 본 / 그 꽃 (고은 ‘그 꽃’)
단 석 줄의 짧은 시다. 허나 겨우 열다섯 글자에 얼마나 많은 뜻과 깨우침이 담겨있는가. 이토록 간명하면서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시도 드물다. 참으로 탄복케 한다.
오르막에서는 숨 가쁘게 길을 재촉하느라 못 보고 지나쳤던 꽃이다. 하지만 비로소 내리막에서는 봤다. 그나마 내려올 때라도 그 꽃을 발견한다면 다행이다. 끝내 그마저도 못 본 사람들이 쌔고쌨다. 어디 꽃뿐이랴. 정상을 향해 앞만 보고 치닫다 보면 정작 소중한 것들을 보지 못한다.
더구나 늘 거기 있는 꽃일지라도 그 향기는 알아보는 사람만 느끼는 법이다. 하여 험한 길은 에돌아가고 먼 길일수록 천천히 가는 게 슬기다. 모름지기 삶이란 서두른다고 해서 다 되는 게 아니다. 결국 ‘빨리빨리 후닥닥’보다는 ‘시나브로 꾸준히’가 상책임을 너도나도 익히 안다. 요량 없이 주야장천 내닫기만 한다고 해서 될 일인가. 잠시 괴나리봇짐을 풀고 한숨 돌리는 것도 기나긴 여로에서는 필요하다. 그것은 괜스레 해찰하거나 하릴없이 머뭇거리는 게 아니다. 길게 가려면 짬을 내서 쉬어가는 것이 마땅하다. 그 쉼과 그침 속에서 자기성찰과 깨달음이 움트는 것 아닌가.
살다보면 참 어이없는 꼴도 많이 겪는다. 민간인 사찰을 놓고 돈을 준 전 청와대 비서관이 국민들의 가슴에 불을 놓는다. 안 그래도 고달픈 삶에 허덕이는 서민들의 타는 속에 대놓고 기름을 들이붓고 있다. 세상에 이 작자는 제가 뭐랍시고 도리어 큰소리인가. 머리를 조아린 채 코를 땅에 처박고 수없이 빌어도 시원찮을 판이다. 그런 죄인이 도리어 국민들을 상대로 호통 치듯 목에 핏대를 세우고 여봐란 듯 당당하다. 적반하장이 도를 넘어섰다. 도대체 천둥벌거숭이가 아니고서야 그럴 수는 없다. 길길이 날뛰는 모습이라니 제 주제가 뭔지 도통 모르는 망나니다. 그런 자질 미달의 풋내기들이 청와대에서 까지 설쳐대니 국정이 지리멸렬한건 당연지사다. 하기는 그 상전에 그 아전 격이니 청와대 꼴이 가관이다.
이런 유의 분간 없는 자들을 골라내기 위해서라도 공직자들의 교양시험을 꼭 치러야 할 판이다. 판무지렁이 공직자들이여, 부디 국민들의 정신건강을 위해서라도 교양을 한껏 채우기를 권고한다.
“물고기는 헤엄치고, 새는 날고, 나는(인간은) 달린다” 인간기관차라는 별명을 가진 에밀 자토펙의 말이다. 달리는 것이 자기 할 일임을 강조한 말이지 싶다. 그는 1952년 헬싱키올림픽 5천m, 1만m, 마라톤 우승자다. 올림픽 사상 육상 장거리 3관왕은 자토펙이 유일하다.
그는 “만약 우승을 원한다면 100m 경주를 뛰어라. 그러나 인생을 경험하고 싶다면 마라톤을 하라”고 부르짖었다. 단지 우승만을 위한 달리기가 아님을 보여준 가르침이다.
한 번도 마라톤을 뛰어본 적이 없던 자토펙이지만 헬싱키올림픽에서는 기어코 풀코스를 완주하며 금메달을 땄다. 나중에 그는 “마라톤을 뛰고 나서 일주일 동안 걷지도 못했다” 고 술회했다. 세계적인 그도 그처럼 혼신의 힘을 다했다. 자토펙은 이후에도 피눈물 나는 연습을 통해 17년 현역생활동안 세계신기록을 18번이나 깨뜨렸다.
그는 혹독한 훈련을 통해 기록을 세웠다. 거저 이뤄지는 성과는 없다는 얘기다. 군인 초기시절에 밤에 완전군장을 하고 플래쉬를 들고 훈련했다. 욕조에서 제자리 뛰기로 훈련하기도 했다. 방독면을 쓴 채 다리에 4.4파운드의 무거운 추를 달고 달리는 것이 그의 독특한 훈련법이었다. 심폐기능을 향상하기 위해서는 숨을 멈추고 달리는 연습을 했다. 한때 숨을 너무 오랫동안 멈춰 기절하기까지 했다.
혀를 늘어뜨리고 어깨를 크게 흔들면서 다리를 휘청거리며 뛰는 모습은 독특한 그만의 모습이다. 한번은 누군가 자토펙에게 물었다. “왜 그런 고통스런 모습으로 뛰는가” 그의 대답이 의미심장하다. “내게는 달리면서 웃을 수 있는 재주가 없다(I was not talented enough to run and smile at the same time)”
물론 이같은 ‘지옥훈련’ 만이 그를 영웅으로 만든 것은 아니었다. 그는 ‘인터벌 트레이닝’ 이라는 과학적 훈련법을 고안했다. 이 훈련법은 1만m를 그대로 뛰는 것이 아니라 2백m나 4백m씩 구간을 나눠 각 구간을 전력질주하고 구간 사이마다 휴식을 취하는 방법이다.
굳이 자토펙 전성기를 따지자면 1948년 제14회 런던올림픽부터다. 이때부터 체코나 유럽 수준을 뛰어넘었다. 1만m에서 세계신기록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고, 5천m에서도 0.2초 차이로 은메달을 획득했다. 1950년 유럽선수권대회에서 1만m와 5천m를 석권한 그는 역사적인 1952년 제15회 헬싱키올림픽을 맞이한다. 사람들은 그가 당연히 5천m와 1만m 종목에 출전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자토펙은 한발 더 나가 마라톤 종목까지 도전하겠다고 선언했다. 소련 연방의 다른 국가들은 이 결정을 못마땅하게 생각했고 소련올림픽위원회도 불허 방침을 밝혔다. ‘그토록 힘든 세 종목에 연달아 출전해서 정상적인 성적을 낼 수는 없다’는 게 이유였다.
그러나 선수의 의지를 꺾을 수는 없었다. 결국 계획대로 3개 종목에 모두 출전키로 하고 먼저 1만m 종목을 치렀다. 초반 이후 선두로 나선 자토펙은 자유자재로 스피드를 조절하며 다른 선수들의 페이스를 흔들어 놓았고 손쉽게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3일 뒤 치러진 5천m 경기에서는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내심 3위 정도로 골인하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막상 레이스가 시작되자 그는 본능적으로 완급을 조절하며 경쟁자들을 제쳐나갔다. 결국 막판 스퍼트로 또 우승을 해버렸다.
사람들의 관심은 4일 뒤 마라톤에 쏠렸다. 과연 마라톤과 트랙을 합쳐 3관왕을 차지하는 전무후무한 사건이 실제로 벌어질지 궁금해 했다. 이미 장거리 2종목을 치렀으므로 매우 지쳐있어야 정상이다. 하지만 실제로 마라톤에 나선 자토펙은 트랙경기에서와 달리 아주 여유 있는 표정으로 레이스를 끌어나갔다. 하프지점에 이르러서는 마치 참느라 고생했다는 듯 단숨에 앞서나갔다. 이후 다른 주자들의 추월을 허용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응원하는 군중들에게 손을 흔드는 여유까지 부리며 우승을 차지했다.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대기록이 작성되는 감격스런 순간이었다.
어떤 이는 “짧은 인생 완전히 집중해서 살기 위해 뛴다”고 했다. 마라톤 애호가인 일본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가 주인공이다. 그는 “42.195㎞를 달리는 일은 결코 지루한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매우 스릴 넘치는 비일상적이고도 창조적인 행위”라고 예찬한다. 왜냐고? “달리다 보면 평소에는 따분하기 이를 데 없는 사람이라도 뭔가 특별해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만큼 삶이란 진지한 것이며 특별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는 애호가의 수준을 넘어 마니아로 널리 알려져 있다. 매일 아침 달리기로 하루를 열며 매년 마라톤대회에 참가하는 것이 생활습관처럼 돼 있다.
무엇보다 그는 “달리기, 특히 마라톤을 경험하는 것과 경험하지 않는 것과의 차이는 인생 자체의 색깔이 다른 게 아닐까 하는 느낌이 들 정도다. 뭔가 존재에 깊숙이 와 닿는 것이 있다”고 주장한다. 그이니까 그런 말을 하고 그런 삶을 산다고 접어둔다면 더는 할 말이 필요 없다. 풀코스 수십 회, 울트라마라톤도 거뜬히 완주한 그다. 그의 끊임없는 시도와 실험이 창조성으로 연결되는 것 아닌가 싶다.
제 몸조차 제대로 수양하지 못한 공직자들이여, 언감생심 고은 시인이나 자토펙, 무라카미를 닮으라고는 안하겠다. 제발 그들의 가르침이 무엇인지 알려고나 해 봤으면 더는 바랄 게 없다. 애먼 국민들 부아통 터지게 하는 짓거리들 작작해야 하지 않은가.
인생은 흔히 마라톤에 비유된다. 인정하건 안하건 우리는 인생의 긴 레이스를 시작했고 아직도 달리는 중이다. 때로는 페이스 조절에 실패하기도, 예기치 못한 사고를 당하기도 한다. 그처럼 변수도 많고 운수도 따르는 것이 마라톤이자 인생이다. 하지만 훈련과 준비를 통해 의외의 돌발요소를 줄여나가는 게 노력하는 모습이다. 그런데 우리네 삶이란 달리기는 잘 이어지고 있는가, 아닌가. <화산>

고은 선생님의 ‘그 꽃’은 백담사에서 봤습니다. 백담사는 입구에서 마이크로버스를 타고 가다가 내려서 냇가를 따라 걸어가야했습니다. 경내에 고은 선생님의 시비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올라갈 때 못 본 꽃을 내려올 때 봤었습니다만, 무슨 꽃인지 기억이 안 납니다, ‘그 꽃’이라는 시 밖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