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에는 어디엔가 오아시스가 있어서 아름답다고 했습니다. 제 생각에 도시에서 오아시스는 책방입니다. 헌책방은 오래된 오아시스와 같습니다. 헌책방에는 타는 목마름을 식혀주는, 깊은 우물에서 길어 올린, 맑고 시원한 물이 있고, 모래 언덕에 누워 밤하늘의 별들을 헤아려보는 감동의 순간도 있습니다. 누가 낡은 책 어느 구절에 밑줄을 그어놓을 것을 발견하면 사막을 가로지르다가 이정표를 만났듯 반갑습니다. 누가, 나 말고도, 언젠가 바로 이곳을 지나갔구나 하는 인적처럼 그렇게 반갑게 느껴질 수가 없습니다. 옛날 시집을 보면 맞춤법이 틀립니다. 그런 글들을 일부러 글자대로 읽어주면 시의 맛이 약간씩 다르게 되살아납니다. 민들레가 아니고 밈들레이고, 자줏빛이 아니라 자짓빛입니다. 모닥불이 아니라 모닥뿔이고, 슬픈 역사가 아니라 슳븐력사입니다. 어쩐지 고색창연하고 정겹지 않습니까? 헌책방에는 언젠가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았던 책들이 다시 누군가의 사랑을 받기위해서 기다리고 있는 듯합니다.
낯선 곳에 가면 가급적이면 재래시장을 둘러보고 백반을 사먹으려고 노력합니다. 그 지역의 음식 수준은 백반을 먹으면 알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반찬이 입맛에 안 맞으면, 자장면이나 먹을 걸 하고 후회도 합니다. 몇 군데 이름 난 곳을 둘러보고, 그래도 시간이 나면, 헌책방을 찾아갑니다. 서울은 옛 동대문 운동장 근처 청계천변에 헌책방이 밀집해 있었지만, 지방은 그 지역에서 명문이라고 불리는 고등학교 근처에 많습니다. 우리 고장에도 헌책방이 참으로 많았습니다. 전주는 홍지서림이 있는 골목뿐 아니라 미원선전탑이 있었던 팔달로부터 옛 전주역(현재 전주 시청)까지 촘촘하게 있었습니다. 언젠가 일부러 찾아갔던 광주는 헌책방이 전주보다 훨씬 더 많았습니다. 대전은 헌책방이 대전역 앞 중앙시장에 지금도 꽤 남아 있습니다. 그것이 1970년대와 1980년대 초반까지의 얘기였습니다. 한용운의 ‘님의 침묵’이나 신석정의 ‘촛불’ ‘슬픈 목가’ ‘빙하’도 구할 수가 있었습니다. 참 호사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사람에게 영혼이 있듯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도 소중한 것들이 있습니다. 바로 이곳에서 전통과 풍습에 따라 의식주를 영위한다는 것이 곧 우리들의 정체성이고 실체가 아니겠습니까. 어떤 집에서 어떻게 입고 무엇을 먹고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사는지, 그것이 곧 우리들입니다. 명절이면 모여서 제사를 올리고, 날짜를 정하여 행사를 하는 것도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한 방편이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도 그렇습니다. 그 지역에는 어떤 역사 유적들이 남아 있는가, 어떤 단체들이 무슨 활동들을 하고 있는가, 라는 것들이 모여서 삶의 실체를 형성하지 않습니까. 지방자치제가 시행되고 나서 지방마다 문화공간을 확충하고 예술 단체를 지원하는 것도 우리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수단들입니다. 공공도서관과 미술관들은 어떤 상황이고, 동물원 식물원은 갖추었는지, 교향악단의 수준은 어떤지, 언론기관은 정평이 있는지, 그런 것들이 모여서 그 도시의 품격을 말하는 영혼 같은 것이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제가 아는 어느 교장선생님은 케네디 대통령의 수영복을 입은 근육질의 상반신 모습을 보고 ‘미국의 힘’을 느꼈다고 하셨습니다. 어떤 분은 하와이에서 만 톤 급의 화물선으로 태평양을 건너면서 역시 ‘미국의 힘’을 느꼈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신시내티와 뉴욕의 어느 헌책방에서, 그런 똑 같은, ‘미국의 힘’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그 때가 ‘피스코’라고 미 국무성이 세계 각국으로 미국 대학생들을 평화봉사단으로 보낼 때였습니다. 헌책방에 세계 각국에 대한 여행 안내서가 닳고 닳은 모습으로 빡빡하게 꽂혀 있었습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각 종 소설들이 어찌나 많이 읽었는지, 닳고 닳은 모습으로, 책꽂이 마다 수북하게 쌓여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어쩌면 그렇게 책을 많이 읽는지 정말로 깜짝 놀랐습니다. 얼마 전, 지난여름에, 미국 서부에 있는 시애틀에 다녀왔습니다. 시애틀 중심가에 있는 음악당과 어마어마한 공공도서관을 보고 다시 한 번 ‘미국의 힘’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솔직히 부러웠습니다.
선생님들의 걱정은 한 가지입니다. 어떻게 하면 학생들이 지식에 대한 욕구를 갖게 하느냐는 것입니다. 이야기까지 학교에서 가르칠 수는 없습니다. 공부를 하는 방향과 기본적인 뼈대만 알려주면 학생들 스스로가 살을 붙이고 전체적인 스토리를 구성해야 합니다. 그것은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만으로 안 됩니다. 사회 전체가 도와줘야 합니다. 어른들부터 책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헌책방에 가시면 시집 한 권이 막걸리 한 병 값만도 못합니다. 전주에는 몇 군데 헌책방들이 남아 있습니다. 제가 다니는 헌책방에 가면 커피를 한 잔씩 줍니다. 몇 번 얻어서 마신 후 저도 커피믹스를 한 박스 사다 놨습니다. 그곳에서는 누구든지 아무 때나 부담 없이 커피를 마실 수가 있습니다. 그런 좋은 놀이터가 없습니다. 조만간 삼례에도 역 부근에 있는 옛 미곡 창고를 개조하여 규모가 큰 헌책방이 생긴다고 합니다. 무엇보다 집에서 제일 크고 좋은 방을 서재로 만듭시다. TV를 끄고 온 식구가 모여서 책을 읽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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