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 살면서 찾게 된 절기가 있습니다. 처서와 상강입니다. 가을에 김장할 채소들은 처서인 8월 23일을 전후하여 심습니다. 곶감은 상강인 10월 23일쯤부터 깎습니다. 시골에 사는 사람들은 처서 즈음이면 마음이 바쁩니다. 한 물간 오이나 고추들을 걷고 가을 채소 심을 준비를 합니다. 저의 집에서는 몇 년 전부터 감을 몇 접씩 사다가 깎아서 곶감을 만들고 있습니다. 달력에다 상강에 가까운 양촌 장날을 찾아서 표시를 해둡니다. 금년에는 잘 아는 친지로부터 먼저 연락이 왔습니다. “언제 양촌 장에 갈 예정입니까?”라는 전화였습니다. 마침 10월 22일이 토요일이고 양촌 장날이었습니다.
어쩌다가 늦어서 10시쯤에야 양촌 장에 도착하니 벌써 파장할 무렵이었습니다. 경매는 물론 진즉에 끝났고, 좋은 감은 다 팔린 상황이었습니다. 양촌에서 곶감용으로 파는 감의 품종은 ‘두리시’입니다. 금년에는 감이 풍년이었습니다. 재배면적이 늘어난 탓도 있겠지만, 가격이 예년에 비해 40%가량 쌌습니다. 플라스틱 박스로, 예년에 4만원이 넘던 것이 금년에는 2만 5천원 정도였습니다. 저온창고에 보관했다가 나온 감은 쉬 무릅니다. 곶감은 가능하면 바로 따온 감으로 깎아야 좋습니다. 마침 가야곡에서 오신 분이 밭에 ‘두리시’가 있다고 해서 그 곳까지 따라가서 따왔습니다. 감이 크면 한 박스에 100개쯤 드는데, 그 것이 기준인 것 같았습니다.
지금 감을 깎아서 말리면 12월 25일 크리스마스가 될 때쯤이면 가장 맛이 있고 먹기도 좋은 ‘반시’가 됩니다. ‘반시’는 감이 반쯤 말랐다는 뜻입니다. 반시는 말랑말랑한 속살이 꿀보다 더 달고, 치아가 부실한 어르신들 입안에서도 슬슬 녹을 정도입니다. 나이가 드신 분들이 얼마나 좋아하실지, 생각만 해도 즐겁고 마음이 흐뭇해집니다. 옛날에 곶감은 ‘먹시’라는 재래종 감으로 깎았습니다. 작고 씨가 많았습니다. 그때도 산지에서는 반시를 즐겼겠지만, 그 밖의 지역에서는 싸리나무 꼬챙이로 뀐 작고 바싹 마른 것으로만 알았습니다. 그 동안 감의 품종도 개량이 되고 냉장고가 보급되어 우리들이 크고 통통한 ‘반시’를 즐길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초등학교 국어책에 ‘곶감과 호랑이’라는 옛날이야기가 나왔었습니다. 호랑이가 배가 고파서 한 밤중에 마을로 내려왔는데, 어느 집에서 어린아이가 울고 있었습니다. 어른이 아이를 어르고 달래는데 아이가 울음을 그치지 않습니다. 아이는 ‘밖에 호랑이가 왔다.’라는 말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울었습니다. 그러다가 ‘아나, 곶감!’하니까 아이가 울음을 뚝 그치는 것을 호랑이가 듣고, 곶감이 호랑이 자기 자신보다 훨씬 무서운 동물인줄 알고 도망쳤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지금 교과서에 그런 호랑이 담배 먹던 얘기는 뺐겠지만, 요즘 아이들이 그 동화를 듣는다면, 재미있다고 할까요? 곶감 맛도 모를 뿐 아니라 호랑이가 마을까지 내려왔다는 것도 그 때가 도대체 언제쯤이냐고 할 것입니다.
시골에서 할머니들은 아이를 달래기 위한 비장의 무기들이 있었습니다. 무슨 잔치 끝에 남겨놓은 것인지, 멥겨 속에 묻어둔 쭈글쭈글한 국광사과가 있었고, 퀴퀴한 오징어나 바싹 마른 가래떡도 있었고, 밤이나 대추, 그리고 곶감도 있었습니다. 그런 것들은 할머니를 보채기만하면 나오는 것으로 알았었습니다. 언제가 제가 들었던 어느 나이든 분의 얘기도 그랬습니다. 아버지께 무엇인가 보채기만 하면 꺼내주시던 ‘나무상자’가 있었답니다. 그 상자 속에는 돈도 많이 들어있고, 귀중한 것들이 가득 들어있는 줄로만 알았답니다. 어느 날 그 상자 속을 보았는데, 거의 텅 비어있었다고 합니다. 그 때부터 아이는 슬픔 속에 철이 들게 되는 것이겠지요.
곶감에 대해서 나이가 들수록 잊어지지 않는 옛날이야기가 있습니다. ‘곶감 먹기 시합’이라는 얘기입니다. ‘곶감 먹기 시합’을 하기로 했는데, 한 쪽이 꾀를 냈습니다. 상대방에게는 잠간 기다리라고 하고, 살짝 집에 돌아가서 혼자 곶감을 먹어봤습니다. 백 개를 먹기로 내기를 했으니, 백 개를 먹어봤답니다. 확실히 먹을 수가 있었답니다. 자신 있게 밖으로 나와서 ‘곶감 먹기 시합’을 했다고 합니다. 꾀를 내도 그런 꾀는 죽을 꾀입니다. 살다가 가끔 스스로 그런 꾀를 냈는가 싶어서 되돌아 볼 때가 있습니다. 학교에서 수학여행을 가게 되면, 선생님들 몇 분이 먼저 예정된 코스를 따라 다녀옵니다. 그것은 ‘곶감 먹기 시합’과는 전혀 다른 얘기이고, 꼭 그래야 하는 것입니다.
정치가들은 ‘곶감 먹기 시합’을 자주 하는 것 같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제가 보기에 틀림없는 ‘곶감 먹기 시합’입니다. 집에서 혼자 잔뜩 곶감을 먹고는 아무 상대에게라도 시합을 하자는 것으로 보인다는 말씀입니다. 예를 들면, 역대 대통령들이 꼭 임기 말에 와서 ‘개헌을 하자.’는 것도 그렇습니다. 누가 표현한 그대로 말을 하자면, ‘참, 나쁜 대통령’들입니다. 시합이란 사전에 규칙을 예고하고, 예고되었던 규칙대로 이뤄져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 동안 말도 못 꺼내게 하고 있다가, “지난 6월부터 미리 준비했노라.”고 하면서, “이제 시합을 하자.”는 것이 영락없는 곶감 먹기 시합으로 보입니다.
작년에는, 너나할 것 없이, 곶감 농가들이 낙심을 했습니다. 계속되는 가을비 때문에 곶감에 곰팡이가 슬었습니다. 곶감 백 개가 한 접이고, 백 접을 한 동이라고 합니다. 곶감 농가에서는 감을 기계로 깎아서 수 십동씩 덕장에 말립니다. 그 감들이 못쓰게 되어 거의 버렸었습니다. 가을 날씨가 맑고 일교차가 심해야 곶감이 잘 마르고 맛이 좋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산다는 것은 크고 작은 염원을 지닌다는 것 같습니다. 작년 일들을 생각한다면 어떻게 다시 금년에 곶감을 깎는다고 할 수가 있겠습니까. 저는 작년에는 열두어 접을 깎았지만 금년에는 대여섯 접쯤 깎았습니다. 금년에 날씨가 좋으면 내년에는 더 많이 깎고 싶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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