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럼>“어디서 날아온 화살인가”

1029일 아침 7, 전주 집에서 길을 나섰습니다. 가까운 친지 가족들과 함께, 23, ‘가을 나들이를 하기로 했기 때문입니다. 서울에서 내려오는 가족들과 만나기로 약속한 곳은 보은 법주사였습니다. 보은을 지날 때쯤 승용차에서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났습니다. 근래에 들어보지 못한 요란한 소리였습니다. 차에서 나는 원인을 알 수 없는 경고음에 주행을 멈춰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어 당황스러웠습니다. 옆자리에 있던 집사람이 긴급 재난 문자가 온 것이라며 경고음이 울린 까닭을 알려줬습니다. “괴산군 북동쪽 12km 지역에서 규모 4.3 지진이 발생했다.”라는 내용이라는 것입니다. 괴산 북동쪽 12km라면 승용차가 지나가고 있던 곳에서 아주 가까운 곳입니다. “무슨 큰일이 있지나 않으려나하고 왠지 불안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진이 발생했다는 뉴스를 들을 때마다 곳곳에 있는 원자력 발전소 걱정이 되기 때문입니다.

 


속리산은 단풍이 절정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이번 산행은 법주사에 딸린 한적한 암자를 둘러보기로 했었습니다. 어디가 좋을까, 중지를 모은 끝에, 상환암(上歡庵)를 거쳐서 상고암(上庫庵)까지 들렸다가 내려오기로 했습니다. 1030분에 시작한 산행은 2시간을 넘기고서 비로소 상환암에 닿을 수가 있었습니다. 일행은 이구동성으로 속리산이 이렇게 좋은 줄 몰랐다,’는 감탄을 연이었습니다. 그동안 몇 번 법주사에 왔었지만 겨우 법당만 구경했고, 어쩌다가 기껏 세심정까지 다녀갔었을 뿐이었습니다. 이번에도 문장대나 천황봉 까지는 엄두도 못 냈었고, 큰맘 먹고, 그보다 수월할 것 같은 암자라도 가보자라는 계산이었습니다. 높은 곳으로 올라갈수록 속리산 연봉들이 한눈에 들어오는데, 감탄에 감탄이 절로 나왔습니다. 점심은 집에서 준비한 찰밥과 곱창김으로 상환암에서 때웠습니다. 단출하였지만 호사스러운 한 끼였습니다.

 


상환암에서 상고암 가는 길은 꽤 먼 거리였지만 신비한 선경을 거니는 산책코스 같았습니다. 상고암은 비로봉(毗盧峯) 바로 아래에 있었습니다. 암자에는 스님이 한 분 계셨습니다. 스님의 안내로 전망대에 올라가니 속리산 연봉이 모두 보였습니다. 어느 산이든 비로봉은 가장 높지는 않더라도 중심이 되는 곳이라고 합니다. 금강산에도 비로봉이 있는데 그렇다는 것입니다. 속리산에서 가장 경치가 좋은 곳 같았습니다. 상고암에서 비로산장을 거쳐서 하산하는 길은 만만치 않았습니다. 일행은 깜깜하게 어두워져서 숙소로 왔습니다. 모두 지쳐서 가볍게 씻고 이내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이태원 참사뉴스는 이튿날 새벽 2시쯤 알게 됐습니다. 자다가 깨어 습관적으로 켜본 인터넷에 속보가 떴습니다. 지진이 났다고 했을 때 느꼈던 불안이 바로 이것이었던가 싶었습니다. 일행은 아침에 제가 알려줬을 때까지 소식을 까맣게 몰랐습니다.



독이 묻은 화살을 맞은 듯했습니다. 온몸에 서서히 독이 퍼지듯 왜 그런 일이 벌어졌을까.’ 하고 깊이 묻혀있던 어두운 기억들이 떠올랐습니다. 세월호 때 학생들이 침몰해가는 뱃속에서 부모님들께 보냈다는 문자들이 아직도 가슴속에 쓰라리게 남아있는데, 이번에는 다시 얼마나 많은 사연이 쌓일지, 감정이 마비되는 듯했습니다. 이제 30년도 더 지난 옛날입니다만 제가 중학교 다닐 때 업어서 키웠던 4촌 남동생이 대학교 때 연극반 여름방학 MT에 따라갔다가 불의의 사고로 익사했던 일이 있었습니다. 돌아가신 숙부님과 나이가 연로하신 숙모님 심정이 어떠하실까, 제가 나이가 들수록, 가슴속이 쓰라려 올 때가 많습니다. 제가 업어주던 기억이 그렇게 생생한데 숙부님 숙모님은 어떠실까 생각하면 지금도 그렇게 안쓰러울 수가 없습니다. 부모와 자식 사이의 천륜이 끊긴 원통함이 얼마나 어마어마할지 짐작이라도 되십니까?



이튿날 우리 일행은 법주사 경내를 다시 둘러보고 오후 늦게 영월에 도착했습니다. 이날부터 우리가 어디를 가든 화제는 이태원 참사에 관한 얘기였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망자 수는 늘어났고, 관계기관, 특히 행정안전부 장관의, 책임 회피성 발언이 화제가 됐습니다. 벼슬이 좋으면 얼마나 좋길래 저렇게 낯 뜨거운 소리를 하는지 싶었습니다. 강원도 지사는 레고랜드 사태로 사고를 쳐놓고 베트남으로 해외 출장을 갔답니다. 아니나 다를까, 서울시장은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그 시간에 911일 유럽 4개국 11개 도시를 순방 장기출장을 갔었답니다. ‘염불보다 잿밥이라더니, 가관들입니다. 어디서 누군가 쏜 화살을 맞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부처님은 화살을 누가 쐈는지 궁금해하지 말라.”라 하셨답니다. “먼저 상처를 치료해라.”라는 말씀이랍니다. 목숨이 위태로운데 우선 살고 봐야지 시시비비를 가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영월에서 단종이 유배지라는 청령포에 갔습니다. 소나무 숲이 울창한 맑고 아름다운 곳이었습니다. 어린 단종이 올라가 걸쳐서 앉았었다는 소나무는 아직도 푸르른 채로 하늘을 찌를 듯 솟아 있었습니다. 청령포를 내려다보는 언덕에 단종에게 줄 사약을 갖고 내려왔었던 금부도사 왕방연이 쓴 시의 비가 있었습니다. 단종이 사약을 받았던 1457년에 쓴 시조입니다. 그 뒤 160년이 지나서 1617년에 병조참의 용계 김지남이 영월로 순시를 왔다가 왕방연이 읊었던 시조를 아이들이 노랫가락을 붙여서 부르는 것을 듣고 한문으로 옮겨썼답니다. 여기서 이태원 참사를 애도하는 뜻을 담아 왕방연의 시를 옮기도록 하겠습니다.

천만리 머나먼 길에 고운 님 여의옵고/내 마음 둘 데 없어 냇가에 앉았으니/저 물도 내 안 같아야 울어 밤길 예놋다.” 

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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