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 해남 다녀왔습니다.

‘가을이 가고 있다’라는 생각에 훌쩍 길을 떠났습니다. 10월 29일, 토요일 아침입니다. 여느 때와 같이 8시경에 아침식사를 마치고 길을 나섰습니다. 8시 30분이었습니다. 몇 군데가 생각났습니다. 미황사, 월출산, 대흥사, 무위사, 다산초당, 백련사 등등입니다.

일단 방향은 ‘해남군청’으로 잡았습니다. 네비게이션이 남쪽을 가르켰습니다. 남원쪽으로 내려가서 남해안고속도로를 타라는 뜻입니다. 광주를 통과하려면, 거리는 좀 가깝겠지만,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점이 반영된 것 같습니다.

사  진  1: 강진 일대 관광 안내도

엊그제 승용차 엔진오일을 바꿨습니다. 트랜스밋션오일도 바꿨다고 합니다. 7만 키로를 주행했으니, 모두 교환해야 된다고 했습니다. 승용차가 차가 바뀐듯이, 매끄럽게 잘 나갔습니다. 전주에서 해남까지 3시간 가까이 소요됩니다. 2시간쯤의 거리의 보성녹차휴게소에서 잠시 쉬었습니다. 강진 해남 이정표가 나올때쯤 수려한 월출산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사  진 2 : 무위사 대웅전 1

사  진 3 : 무위사 대웅전 2

지나치려다가 무위사와 월남사지가 생각 났습니다. 네비를 무위사로 다시 찍었습니다. 무위사는 극락보전 건물이 맛배지붕으로 고색창연했습니다. 맛배지붕은 건평이 작아도 위엄있게 보입니다. 언젠가 도올 김용옥 선생도 자기 집을 맛배지붕으로 지었노라고 자랑을 한 적이 있습니다.

사  진 4 : 무위사 선각대사 편광비

무위사는 원래 신라시대 원효가 창건했다고 합니다. 그 뒤 고려시대에 선각선사(864 – 918)가 주석을 했답니다. 946년에 세웠다는 선각선사 편광탑이 남아 있습니다. 옛 고승들은 거의 모두 당나라에 가서 10년 또는 그 이상씩 공부하고 왔습니다. 몇 십년 씩 살다가 오신 분들도 많습니다. 그 많은 유학파 고승들 가운데 원효는 당에 다녀오지 않았다는 것이 유명합니다.

사  진 5 : 무위사 천불전

신라나 고려시대에는 고승이 입적하면 당대에 제일 글을 잘 짓는 문장가로 하여금 추모하는 글을 짓게 하고, 글씨를 제일 잘 쓴다는 명필에게 비문을 쓰게 합니다. 하동 쌍계사의 진감국사비도 마찬가지입니다. 비석의 제목은 전서로 쓰는데 해서로 쓰는 본문과 다른 사람이 쓰는 경우가 많습니다. 진감국사비는 당대의 석학이었던 최치원이 짓고 전서인 제목과 해서인 본문까지 모두 쓴 것으로 유명합니다. 무위사 선각대사 편광탑비문은 선사가 입적한 후 28년만에 최언위가 짓고 유훈률이 써서 건립했답니다.

사  진 6 : 설록차 농장

무위사 이웃에 백운동이 있습니다. 월출산 바로 남쪽 기슭입니다. 이곳에 광대한 녹차밭이 있습니다. 태평양 화장품의 서성환 회장이 조성한 설록차 농장입니다. 요즘 아모레퍼시픽이 중국에서 화장품으로 호황을 누리고 있습니다. 농장 옆에 월남사지가 있습니다.

사  진 7 : 월남사지 진각선사비 귀두

월남사지에는 3층석탑과 진각선사비가 낭아있습니다. 진각선사(1178  – 1234)는 보조국사 지눌(1158 – 1210)의 문하였다고 합니다. 비석을 받히고 있는 거북의 귀두가 서슬이 퍼렀습니다.  진각선사비도 선사가 입적 한 16년 뒤인 1250년에 세웠답니다.

사  진 8 : 월남사지 3층석탑

점심식사는 강진에서 했습니다. 먼저 군청을 찾으면 근처에 괜찮은 음식점이 있기 마련입니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김영랑 생가를 둘러봤습니다. 생가 옆에 시문학 기념관이 생겼습니다. 김영랑이 시문학을 창간했을 때 동인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 비석으로 세워졌습니다.

사  진 9 : 강진 김영랑 생가

강진에서  만덕산백련사로 갔습니다.  백련사에서는 전통사찰음식컨테스트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백련암에서 다산초당까지 산 충턱을 따라 등산로가 있습니다. 2키로쯤 되는데 다녀왔습니다. 잊지못할 아름다운 산행이었습니다. 산 기슭 곳곳에 황칠나무를 심은 것이 눈에 띄었습니다. 다산의 글을 보면 서민들이 관에 시달리는 얘기가 곳곳에 나옵니다. 방죽에 연이 있다는 것이 알려지면 연뿌리를 공출하라는 관의 성화 때문에 연을 없애버렸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사  진 10 : 황칠나무

황칠도 마찬가지입니다. 중국 북경 자금성에 기둥이 녹나무에 황칠을 한 것이랍니다. 중국에서 우리나라에 황칠을 공물로 요구하고, 조정에서는 백성들에게 공출하라고 했으니 일반 백성들이 얼마나 시달렸겠습니까. 황칠나무를 눈에 보이는 쪽쪽 다 베었다고 합니다. 얼마 전에 산에서 황칠나무를 발견하고  대량으로 묘목을 생산하여 보급했습니다. 대흥사 입구에도 황칠 묘목을 파는 곳이 있었습니다.

사  진 11 : 다산초당

다산초당에는 사람들로 북적였습니다. 너도나도 막대기 끝에 스마트폰을 달고 셀카를 찍었습니다. 문화재해설하는 분이 단체로 온 관광객들에게 다산초당에 대해서 설명을 해줬습니다. 녹우당으로 유명한 해남 윤씨 윤선도 집안은 다산의 진외가였습니다. 진외가란 할머니의 친정이라는 얘기입니다. 윤씨 집안에서 다산초당을 지어줬고, 다산은 저술도 하고, 윤씨 집안의 자제들을 가르쳤던 것입니다.

사  진 12 : 백련사 대웅전

오후 늦게 4시 넘어 대흥사로 갔습니다. 먼저 숙소를 정해두어야 했습니다. 대흥사 앞에는 펜션과 음식점 여관들이 많았습니다. 성수기 때가 아녀서 그런지 숙박비는 그다지 비싸지 않았습니다.  방도 따뜻하고 비교적 깨끗했습니다.  저녁식사는 해남읍내 ‘도화지’라는 식당에서 대구탕을 먹었습니다.

사  진 13 : 미황사 입구

아침 일찍 8시쯤 미황사에 갔습니다. 대흥사에서 승용차로 40분쯤의 거리였습니다. 미황사의 뒷산도 절경이었습니다. 월출산이 또 하나 더 있는 것이 아닌가할 정도로 비슷했습니다. 앞쪽으로 멀리 남해바다가 보이고, 땅끝에 왔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사  진 14 : 미황사

아침식사는 전날 묵었던 여관 식당에서 백반을 먹었습니다. 7천원씩이었는데 가격대비 품질이 좋았습니다. 시래기된장국에 고등어구이, 굴젓 등 반찬이 입에 맞았습니다.

사  진 15 : 대흥사 대웅전.  현판이 원교 이광사 글씨입니다.

10시 30분 경부터  대흥사 경내 구경에 나섰습니다. 조금 힘들더라도 북이륵암에 가기로 했습니다.  길을 물으니, 일지암쪽으로 가는 것이 좋다고 했습니다. 일지암까지는 시멘트포장이 되어있었습니다. 일지암도 터가 참 좋았습니다. 대흥사에서는 차의 성지라고 해서 대대적으로 초의선사 마켓팅을 하고 있었습니다. 39세에 일지암에 와서 40년을 살다가 입적했다고 합니다. 요즘 차에 대한 관심이 높기는 하지만 초의선사에 대해서 너무 과대평가한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사  진 16 : 대흥사 일지암

북미륵암은 일지암으로 부터도 멀었습니다. 진각암 가는 갈립길에서 조금 올라기니 정상과 북미륵암으로 가는 갈림길이 나왔습니다. 거기에서 북미륵암은 길이 아기자기했습니다. 과연 북미륵마애석불은 상호가 원만하고 보기가 좋았습니다. 세 번 절을 올렸습니다. 삼귀례, 불-법-승, 부처님, 부처님의 가르침, 스님께 올리는 예의입니다. 법당에 조금 앉아서 쉬다가 지름길로 내려왔습니다.

사  진 17 : 대흥사 북미륵암 마애석불

오후 3시경인데, 점심을 간식으로 때운 상황이었습니다. 해남읍으로 나와서 식당에 갔습니다. 그 집은 토요일에 쉬고 일요일은 문을 연다고 했습니다. 갈치탕이 1인당 1만 3천원이었습니다. 셋이 2인분 시켰습니다. 대체로 해남 음식이  좋았습니다. 양념을 아끼지 않고 재료도 신선한 것을 쓰는 것 같았습니다.

사  진 18 :  해남읍 음식점

해남에서4시경인데, 전주까지 네비를 찍으니 6시 45분 도착 예정으로 나왔습니다. 순천을 지나니, 해는 어두워지고,  황전 휴게소에서는 캄캄한 밤이었습니다. 전주에 7시 도착, 고속터미널에 들렸다가 집에 오니, 밤 8시쯤이 되었습니다. 아침에 대충 글을 쓰고, 군데군데 사진을 올립니다.

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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