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매여행’, 떠날 때입니다.

‘검이불누 화이불치 (儉而不陋 華而不侈)’라는 말이 있습니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묘한 느낌이 듭니다. 가난한데 누추하지 않을 수 없고, 돈이 많으면 사치하지 않을 수가 없을텐데, 그렇지 말라는 것 아닙니까. 비싸지 않은 옷일망정 깨끗하게 입고, 장신구로 치장을 하더라도 품위있게 하라는 뜻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  진 : 통도사 지장매

멋은 무엇보다도 선택의 문제입니다. 제 철에 쑥국을 끓여먹고, 삼복더위에 중국산 삼베적삼이라도 입는 것이, 무슨 돈이 많고 적음의 문제이겠습니까. KTX를 타는 것과 무궁화호를 타는 것이 무슨 빈부의 문제이겠습니까. 차맛을 알면 얼마나 안다고 꼭 어디서 구한 무슨 비싼차만을 마셔야 하겠습니까. 그렇게 비싸지 않더라도 나름대로 향기가 있고 더 중요한 것은 쌀쌀할 때 마시는 그 따끈한 맛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추운 겨울에 우선 생각나는 꽃은 동백입니다. 짙푸른 잎사귀 사이로 어린아이 주둥이 같이 조그맣고 샛빨간 꽃잎이 남해안 어느 절벽에 무리지어 피어있는 것은 상상만 해도 가슴이 설레입니다. 우수가 지나고 경칩이면 날씨가 아연 따뜻해집니다. 바로 이 즈음 눈에 띄는 것이  매화입니다.  매화가지 한 쭉지를 꺾어 화병에 꽂아 두면 몇 일 사이에 금방 꽃이 벌기 시작합니다. 한 두 송이씩 피기를 기다리는 재미도 좋지만, 그 겨우 한 두 송이 핀 것이, 아침 저녁으로 짙은 향기를, 암향(暗香)이라고 하지요, 내품는 것은 가히 가관이라고 할만 합니다. 제 때에 유명한 매화를 찾아 떠나는 ‘탐매행(探梅行)’은 아무나 흉내낼 수 없는 멋이고 사치입니다. 멋은 모름지기 정성이 들어가야 합니다. 제법 내노라하는 고수들도 때를 잘 못 맞추기 일쑤입니다. 미당 서정주 선생이 고향이랍시고 동백꽃 보려고 선운사를 찾았다가 허탕을 친 것은 시로도 남아 있습니다. 그 시가 왠지 내용이 없으면서도 재미가 있는 것은 그 ‘허탕’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순천 선암사에는 ‘선암매’가 유명하고, 구례 화엄사에는 ‘화엄매’, 산청에는 남명 고택의 ‘남명매’가 유명합니다. 우리고장에서 산청은 워낙 먼곳이라 엄두를 낸 적도 없지만, 구례와 순천은 매화를 보러 가 본 적이 있습니다. 역시 때를 맞추지 못했고, 제대로 즐기지는 못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때를 맞출 수 있을까요? 선암사에서 비구니 스님께 여쭈어 봤습니다. “스님, 선암매를 언제 오면 만개한 모습을 볼 수 있을까요?’ 스님은 걱정스럽게 매화나무를 보면서 말씀하셨습니다. ‘저희도 잘 몰라요. 해마다 날씨에 따라서 활짝 피는 때가 달라요.’ 스님 말씀이 아니더라도 과연 그럴 것입니다. 반드시 언제 핀다라기 보다, 피는 때를 맞춰서 찾아가는 것이 방법이겠지요. 멋을 부릴려면 그 정도의 관심과 정성없이 될 일이 아닐 것입니다. 엊그제 화병에 꽂아둔 매화꽃이 ‘절경’이네, 어쩌네, 아침부터 자랑을 하다가, 진짜 양산 통도사에 지장매를 구경가시는 중이라는 선배님이 계셨습니다. 마음속으로, ‘아직 때가 이를텐데’하며, ‘벌써 그렇게 됐나’해졌습니다. 그 날 오후 2시쯤인가  카톡으로 사진이 왔습니다. 활짝 핀 ‘지장매’ 모습이였습니다. 거기까지 매화구경을 하려고 찾아간 것도 놀랍지만, 무엇보다도, 어떻게 제 때를 알고 때를 꼭 맞춰서 갔는지가 정말 부러웠습니다. 장관이라면 구례 화엄사의 ‘화엄매’가 일품입니다. 말은 ‘흑매(黑梅)’라지만 검붉은 홍매입니다. 각황전 옆에 있는 고목인데, 수세도 그렇고, 과연 ‘문화재’감입니다. 아직 때가 좀 남았을 것입니다. 화엄사 종무소에라도 연락을 해봐서, 무궁화열차를 타고, 제 때에 가 볼 일입니다. 혹시 압니까.  누가 제게, “화엄매를 제때에 한 번도 못 보셨습니까?”라고 물을지도 모릅니다.  제가 “아직 못 봤습니다.”라고 대답하면, 아마, “음, 적선을 더 하셔야 겠군요.”라고 할지도.

을하

This Post Has 2 Comments

답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