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언각비 71> 알아야 면장을 하련만

 

알아야 면장을 하지.’ 말귀를 잘 알아듣지 못하거나 일을 전혀 엉뚱하게 처리하는 사람을 두고 답답할 때 쓰는 표현이다. 물론 자기 스스로 역부족일 때 자조적으로도 쓴다. 여기서 면장이란 어떤 뜻인가. () 행정의 책임자인 면장을 말하는가. 흔히 그렇게 아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면장이 세상사 를 두루 알고 있어야 지역 주민의 이해와 요구를 적극 수용할 수 있다고 여겼을 법하다. 아마 면장은 누구보다 면내 사정에 훤할뿐더러 면 단위에서는 거의 전지전능한 사람이라고 여겼기 때문일 게다. 허나 그건 그렇지가 않다.

답은 공자(孔子)가 가지고 있다. 면장은 본디 면면장이었다. 공자가 아들 리()에게 수신제가(修身齊家)에 힘쓰길 강조하는 대목의 면면장(免面牆)에서 유래했다. 담장()에 얼굴()을 대고 있는 상황을 벗어난다()는 의미의 면면장을 줄여 쓴 말이다. 얼굴이 담장을 마주보고 서면 무엇이 보이겠으며 얼마나 답답하겠는가. 이런 상태가 바로 면장(面牆)이다. 그렇다면 이런 면장 상황이 되지 않기 위해 어떻게 하면 될까? 이 답답함을 면하는 방법이 바로 책을 열심히 읽고 공부하여 세상살이에 눈을 뜨는 것이다. 그래서 면()자를 븉여 면장에서 벗어나다는 면면장(免面墻)이 됐다. 그 뒤로 (이 탈락되고 면장(免牆)’만 남아 지금에 이르렀다.

공자는 어느 날 공부에 게으르고 촐싹거리는 아들 리에게 일침을 놓았다. “너는 시경(詩經)의 주남(周南)과 소남(召南)을 배웠느냐? 사람으로서 주남과 소남을 배우지 않으면 마치 담장() 앞에서 얼굴()을 바로 대고 서있는 것 같아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느니라논어 양화(陽貨)편에 나온다..

공자의 말씀을 쉽게 풀어보면 이런 뜻이다. 시경은 모두 300편으로 돼 있다. 이 가운데 최소한 주남과 소남의 편수인 25편은 배워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알지 못하니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하니 듣지 못하고 알지 못하니 내딛지 못하고 알지 못하니 공포스러운 거다.

결국 아는 것이 부족해 답답하고 거북한 마음이 면장(面牆)이고, 이 면장에서 벗어나는 것이 면장(免牆)이다. 공부에 힘써야 이처럼 앞이 내다보이지 않는 상황을 벗어나 사람다운 행동을 할 수 있다는 의미다. 무엇인가 부지런히 배우고 읽혀야 답답함을 면할 수 있다는 공자의 말씀에서 유래한 속담이 바로 알아야 면장을 하지이다. 그런 뜻을 정확히 모른 채 면()자를 떼어버리고 쓰면서 우리에게 익숙한 면장(面長)으로 잘못 받아들인 거다.

알아야 면장을 하는 상황이 작금에 벌어지고 있다. 마침내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구속되기에 이르렀다. 그는 참으로 알아야 하는 막중한 책임자의 위치에 있었다. 하지만 그는 아는 것에 소홀했고 무신경했고 관심도 없었다. 오로지 제 몸치장에만 온통 신경을 곤두세웠다. 그러니 세월호가 침몰, 에꿎은 국민 수백명이 죽어가는 순간에도 자기 몸단장에 여념이 없었다. 아뿔싸! 한 나라 최고의 원수 자리가 부끄러울 처신이었다. 그는 아마 무엇을 잘못했는지조차 모르는 듯 싶다. 자신의 과오와 부작위의 죄를 죄라고 깨닫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흔히들 인지부조화라고 말하는 그 결과다. 자신의 모든 행위가 나라와 국민을 위하는 행위라고 믿어버리는 그 착란과 손쉬운 자기과신이 빚어낸 난센스다. 그래서인가. 자기 잘못에 대해 뉘유칠 줄 모른다. 한번도 국민들께 진심어린 사죄를 하지 않는다.

반면에 진정코 지나치게 많이 알아서, 면장을 지나쳐 이 땅에 자신의 이상을 펴보지도 못한 이들도 있다.

허균(許筠) 선생이 지은 한정록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어떤 선비가 가난에 쪼들린 나머지 밤이면 향을 피우고 하늘에 기도를 올리되 날이 갈수록 더욱 성의를 다하자, 어느날 저녁 갑자기 공중에서 말소리가 들려왔다. “상제(上帝)께서 너의 성의를 아시고 나로 하여금 네 소원을 물어오게 하였노라.”

선비가 대답하기를, “제가 원하는 바는 아주 작은 것이요, 감히 지나치게 바라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이승에서 의식이나 조금 넉넉하여 산수 사이에 유유자적하다가 죽었으면 족하겠습니다라고 했다.

그러자 공중에서 크게 웃으면서, “이는 하늘나라 신선의 낙인데, 어찌 쉽게 얻을 수 있겠는가. 만일 부귀를 구한다면 얻을 수 있을 것이다라고 했다.

생각해보자. 의식이 조금 넉넉하여 산수 사이에 유유자적하는 것은 참으로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낙()이다. 그렇건만 하늘이 매우 아끼는 바이기에 사람이 쉽게 얻을 수 없는 것 아닌가. 하지만 비록 필문 규두(篳門圭竇 섶나무 울타리 사립문과 모나고 둥근 허술한 창문이라는 뜻으로, 가난한 집을 이르는 말)에 도시락 밥 한 그릇 먹고 표주박 물 한 잔 마시고서 고요히 방 안에 앉아 천고(千古)의 어진 이들을 벗으로 삼는다면 그 낙이 또한 어떠하겠는가. 어찌 반드시 낙이 산수 사이에만 있겠는가. 조선시대 신선이라 불리는 허균의 한정록에 있는 금뢰자가운데 한 대목이다. 신선의 낙을 산수에서만 찾지 말고 사람 속에서도 찾을 수 있다는 이런 성찰이 들어 있다. 가히 종이권(鍾離權:漢鍾離라고도 함)을 비롯한 ·여동빈(呂洞賓:呂祖라고도 함) 등 팔신선을 넘볼만하다.

홍길동전의 저자인 허균은 은퇴 후 유유자적한 생활을 하고 싶어 한정록(閑情錄)’을 썼다. 이 책은 기구한 운명 속에 태어났다. 허균은 그동안 몇 차례 탄핵으로 관직이 박탈되지만 뛰어난 재능 덕분에 복직을 거듭할 수 있었다 그러나 고위직에 올라 인목대비 폐비론에 앞장서게 되자, 정적들이 생겨났고 급기야는 반역죄로 몰렸다. 다행히 무혐의로 풀려나자 그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이 책을 마무리했다.

허균은 성리학이 조선을 지배하던 시대, 이단자였다. 그는 대과급제를 통해 관직에 등용되지만, 신분제도에 반기를 들어 서얼의 인재 등용을 주장하고 남녀 애정에도 거침없는 태도를 보였다. 게다가 자유분방한 그의 사고는 성리학에 머물지 않고 불교, 도교를 자유롭게 넘나들었고 심지어 중국 사행을 통해 서양 천주교의 지식마저 접하게 됐다.

하지만 아쉽게도 허균은 자신의 생각을 실행해 보지 못했다. 이듬해 다시 반역죄로 몰리게 되자 이번에는 벗어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는 서둘러 자신의 문집과 장서들을 사위 집에 비밀리에 옮겨놓은 뒤 외손자에게 후일 이를 편찬해줄 것을 당부했다. 결국 그는 가장 참혹한 능지처참형으로 생을 마친다. 뿐만 아니라 세월이 흐른 뒤, 인조반정 이후 광해군 시절 희생된 대부분의 선비들이 사면복권되지만, 허균만은 조선이 패망하던 날까지 끝내 반역죄인으로 남았다. 그나마 다행히 외손자에게 전해진 자료들이 살아남아 그의 사상과 학문을 재평가받게 된다

이상향을 꿈꿨던 허균도 유유자적을 말한다. 도피나 은둔이 아닌 변혁과 개혁을 위해 부단이 알고자 했던 혁명가다. 그런 그도 꾸준히 알고자 했다. 면장을 하기 위해서였을 게다.

허균이 책의 서언에서 적기로는 기러기나 봉황이 멀리 날 듯 매미가 허물을 벗듯 초연히 어지러운 세상을 벗어난 옛날의 어진 이와 나를 비견해 보니 그들의 지혜와 나의 어리석음의 차이가 어찌 하늘과 땅의 차이에 그치겠는가. () 그리하여 마침내 이 네 사람의 책에서 뽑은 것을 합하고 그 사이에 내가 보고 기록한 바를 덧붙여 () 모두 열편으로 한정록이라 이름하였는데 이는 내 스스로를 반성하려는 것이다라고 했다. 이처럼 성찰하고 자신을 돌아봤다.

법정스님 역시 생전 어떤 글에서 한정록을 펼쳐들고 옛사람들이 자연과 가까이 하며 조촐하게 살던 안빈낙도의 삶을 음미하고 있다. 몇 해 전에 이 책을 처음 읽고 나서부터 허균을 좋아하게 되었다고 추천한 바 있다.

아 선비가 이 세상에 나서 어찌 벼슬을 더럽다 하여 버리고 산림에서 홀로 살기를 바라겠는가. 그러므로 다만 그 도()가 세속과 맞지 않고, 그 운명이 때와 어긋난다 하여 고상함을 빌미로 세상을 피한 자의 그 뜻은 역시 비장한 것이다.

성성옹(惺惺翁 허균 자신을 말함)의 말이다. 그는 21살에 상투를 싸매고 과거를 보아 조정에 나갔다. 그러나 경박하고 거침이 없는 행동에 당세 권세가에게 미움을 받게 되어 나는 마침내 노장(老莊)이나 불교(佛敎) 같은 데로 도피하여, 형해(形骸)를 벗어나고 득실(得失)을 구별 없이 하나로 보는 그런 것을 좋게 여겼다. 그리하여 세상일 되어 가는 대로 내맡기어 반미치광이가 되었다.

그래서 그는 술회한다. 금년으로 내 나이 이미 42세가 되었다. 그러나 이제는 머리는 희끗희끗하고 무엇인가 할 만한 일도 없고, 세월은 유수같이 흐르는데 공업(功業)은 아직 이루지 못하였다.

내 스스로를 가만히 생각하니 슬퍼지누나. 제일 멋지게 산 저 당의 사마승정(司馬承禎)이나 후한 때의 방덕공(龐德公)처럼 산과 계곡에 마음과 뜻을 자유롭게 팽개쳐놓지도 못했고, 이들보다 못하지만 그 다음으로 멋지게 산 저 후한때의 상장(向長)이나 나라의 도홍경(陶弘景)처럼 자녀의 혼인을 끝내고 멀리 유람하거나 관직을 사직하고 여행을 떠나거나 하지도 못했으며, 또 그들보다 못한 것이지만 마지막으로 저 남조(南朝) ()의 사강락(謝康樂)이나 당의 백거이(白居易)처럼 벼슬을 하다가 자연 속으로 돌아와 정회를 푼 것과 같이 하지도 못했다. 그리고는 형세에 급급하여 끝내 한가하지 못하여 조그마한 이해에도 어긋날까 마음이 두렵고, 보잘것없는 자들의 칭잔이나 비방에도 미음이 동요됐다. 이렇게 되자 발걸음을 멈추고 숨을 죽이며 혹시 함정에 빠질까 여겨 거기서 벗어나고자 했다. 이처럼 자신을 돌이키고 살폈다.

손방(孫昉)의 호는 사휴(四休)거사다. 송나라 황정견이 그 호의 뜻을 물었다. 그러자 그가 웃으며 답했다. “거친 음식을 먹어도 배만 부르면 그만이고, 누더기옷을 입어도 몸만 따뜻하면 그만이고, 불평과 불만도 시기가 지나면 그만이고, 탐욕과 질투도 나이가 많아지면 그만이다.” 이에 황정견이 말했다. “이것이 곧 안락법(安樂法)이다. 무릇 욕심이 적은 것은 자기 공로를 내세우지 않는 집이 되고, 만족함을 아는 것은 극락(極樂)의 나라가 된다.“

손방의 집에 백여 평의 동산이 있어 꽃과 나무가 뮤성한데, 손님이 찾아오면 차를 달이고 술을 내놓고는 사람의 기쁜 일들을 서로 담론하다가 주객이 모두 차와 술이 식어버리는 것을 모르고는 했다. (‘옥호빙(玉壺氷)’)

욕심 네가지를 쉬게 하는 안분과 지족의 마음가짐과 그 실천 또한 면장의 한 방편임이 분명하다.

 

세상의 뜻과 흐름에 맞지 않아 숨어든 사람들도 있다.. 은자라 일컫는 그들은 누구인가. 은자라는 말이 최초로 언급된 것은 장자(莊子) 선성편이다. 이에 따르면 세상의 형세가 크게 잘못돼 몸을 숨겨 드러내지 않거나, 입을 닫고 말하지 않거나, 지식을 숨기고 드러내지 않는 자들이 은자다. 도덕이 무너져 버려 자신이 세상에 도움을 주지 못하게 되자 덕을 감춰 세상에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존재들이다.

은자는 이처럼 세상에 몸과 마음을 숨기지만, 뜻은 남다르다. 후대의 많은 사람들은 세상을 떠나 명예와 이기을 구하지 않고 세속을 초탈하여 속세 밖을 자유로이 떠도는 모습으로 은자를 받아들였다. 은자의 다른 호칭인 처사일민유민일사은군자고사 등도 마찬가지다.

은자들이 모두 고상하게 자신의 일만을 했는지, 잘못된 사회의 문제점이나 탐욕스러움을 깨치는 역할을 했든지 간에 ,적어도 사람들의 인식 속에서 은자의 오습은 우러름의 대상이고, 배움의 본보기였다. 그러나 율곡처럼 은자는 은둔에 편향하게 되니, 중도를 가는 것이 아니다라고 비판하는 견해도 무시할 수는 없다.

은자들은 일생을 목숨을 겨우 부지할 정도의 음식과 차를 마시는 등의 궁핍한 생활을 했지만 정신만은 부유하다. 그것을 즐기며 자족한다. 그리하여 물외(物外)의 경지를 뛰어 넘어 한가롭고 깨끗하게 지냈다. 무심히 지내는 듯 해도 자연과 법도의 이치를 깨우쳤다.

은둔이란 어떤 상태를 말하는가. 주역 둔괘에서는 여유 있게 은둔하니 이롭지 않음이 없다(上九, 肥遯, 無不利)”라고 한다. 이를 정전에서 ()라는 것은 가득 차고 크고, 넓고, 여유있다는 뜻이다. ()이라는 것은 정처없이 떠돌아 멀리 가는 것이니, 얽매여 머무르지 않는 것을 말한다라고 했다. 은둔이란 것은 나 스스로 천명을 알아 즐거워하며 인위적으로 무엇인가를 하려고 애쓰지 않고 여유롭게 지내면서 정신적으로 굳게 지키며 변함없이 자신의 자리에 거처함이다. 현실에 대한 반감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한걸음 더 나아가서는 하나의 이상향을 꿈꾸는 것을 이른다. 곧 노자의 소민과국사회를 지향하거나 도연명의 시에서처럼 도화원 같은 신선의 경지를 꿈꾸는 거다. 때문에 은둔은 방외인(方外人)의 정신적 자유다.

은자의 태도와 가치관을 보면 ,그들은 자신의 본성대로 행동하는 참돰()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겼다. 또한 선함(善)을 천명을 지킬 수 있는 도덕기준으로 삼았다. 대부분의 은자는 맹자가 성선설에서 제시한 대로 인간 본성의 선함과 능동성을 지지했다.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인간이 객관 대상에 대해 미의식을 갖게 되면 세상의 모든 것은 아름다움이다. 인간 자체가 심미의 대상이고, 인간의 창조물에서도 아름다운 이상이 있다. 그래서 자연의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산과 강 등이 즐거움을 제공하고 낙도의 상대가 된다.

생각해보면 의식이 조금 넉넉하여 산수 사이에 유유자적하는 것은 참으로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극락이건만 하늘이 매우 아끼는 바이기에 사람이 쉽게 얻을 수 없는 것이란 성찰이 들어 있다. 때문에 은둔도 세상에 대한 적극적인 자기표현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다만 면장을 위한 은둔일 때만 그렇다.

<화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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