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언각비 50> 사람답다는 것에 대하여

어느 무더운 여름날이었다. 도산서당을 두 젊은이가 찾아왔다. 한 젊은이는 퇴계 이황선생에게 예를 표했다. 그러자마자 도포를 벗고 땀을 닦았다. 그러나 다른 젊은이는 예를 갖춘 후에도 여전히 꼿꼿한 자세를 흩뜨리지 않았다. 농운정사로 가서 도포를 벗어던졌던 젊은이는 우물가로 향해 웃통까지 벗어젖힌 채 시시덕거리고 있었다. 다른 젊은이는 푹푹 찌는 방안에 단정한 자세로 엄숙하게 앉아 있었다. 퇴계는 두 젊은이 가운데 누구를 제자로 삼았겠는가. 퇴계는 앞의 젊은이 정구(鄭逑)를 제자로 받아들였다. 뒤의 젊은이 정인홍(鄭仁弘)은 돌려보냈다. 그 이유는 바로 인지상정을 무시했다는 것 때문이었다. 퇴계는 도학적 원칙을 추구했지만 이렇듯 인간적인 면모에 마음을 보냈다. 우리는 퇴계가 정인홍의 자세가 진지하고 신중하다고 보고 그를 선택했으리라 짐작하기 십상이지만 실제는 정반대였다.

심지어 이런 일도 있었다. 서울에 있던 손자며느리가 둘째를 출산한 후 증손자의 젖을 물릴 수 없게 되자 젖먹이가 있는 하인을 유모로 불러올리려고 했던 일이 있었다. 이에 퇴계는 내 아이를 살리자고 하인의 아이를 죽일 수 없다며 젖 대신 밥물을 먹일 것을 편지로 알렸다. 결국 증손자를 잃으면서까지 하인의 딸을 살렸다. 어미가 자식을 키우는 사랑과 정은 사람의 귀천에 차별이 있을 수 없음을 행동으로 가르쳐주었다.

열차를 타러 가는 두 사람이 있다고 하자. 김씨와 이씨 둘 다 모두 역에 늦게 도착해 열차를 놓쳤다. 김씨는 5, 이씨는 30분이 늦었다. 누가 더 화가 나겠느냐고 사람들에게 물었다. 십중팔구 김씨가 더 화날 것이라고 응답했다. 간발의 차이로 열차를 놓쳤기 때문에 더 아쉽고 억울하다고 느낄 거라는 이유에서였다. 그것이 인지상정이다. 같은 이유로 본다면 어떤 경기가 끝났을 때 동메달리스트가 은메달리스트보다 더 행복해하는 경우가 많다. 동메달리스트는 자칫하면 시상대에 오르지 못할 뻔 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흡족해한다. 반면 은메달리스트는 금메달리스트를 보면서 내가 저 자리에 있을 수 있었는데 하면서 아쉬워하기 때문이다.

어떤 거래에 대해 협상할 때 부드럽고 푹신한 의자보다는 딱딱한 의자에 앉는 것이 낫다고 한다. 상거래를 할 때 상대방에게 차가운 음료보다 뜨거운 커피를 마시게 하면 따뜻한 느낌을 갖게 돼 계약을 성사시킬 확률이 높아진다. 이성과 데이트를 할 때 촉감이 거친 물건을 치우고 식탁을 부드럽게 꾸며야 성공확률이 높아진다. 이들도 다 인지상정 때문이다.

수퍼마켓 계산대에 선 A는 행운의 10만 번째 손님이 돼 100달러를 경품으로 받았다. B는 다른 수퍼마켓의 계산대에서 1001 번째의 손님이 돼 150달러를 경품으로 탔다. 100만 번째 손님이 받은 경품은 1000달러였다. AB 중 누가 더 행복할까? 대부분의 응답자들은 A를 선택했다. B가 더 많은 돈을 받았지만 간발의 차이로 1000달러 대신 150달러를 받아 몹시 속이 상할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서로 죽도록 사랑하는 청춘남녀가 있다고 하자. 이들이 만일 헤어진다면상상하기조차 싫은 일이고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은 충격에 휩싸일 게 분명하다. 그러나 막상 그런 일이 닥치면 한동안은 갈피를 잡기 힘들만큼 괴로워해도 이내 평온을 찾게 된다. 그것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2차대전 중에 있었던 일이다. 처칠 영국 총리가 아이젠하워 연합군사령관을 만났다. 아이젠하워 장군이 시간표를 스케줄(schedule)’이라고 발음하자 총리는 쉐줄로 발음하라고 고쳐주면서 어디서 그렇게 배웠느냐고 추궁했다. 그러자 장군은 에서 배웠습니다라고 답했다. ‘스케줄쉐줄이라면 스쿨school(학교)’이라고 읽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비꼼이다. 처칠의 잘난 체가 못마땅했던 아이크의 반박이었다. 아이크가 이해된다. 사람이란 그런 것이다.

만종으로 유명한 화가 밀레는 지금은 세계적으로 유명하지만 처음부터 그의 그림이 인정받은 것은 아니었다. 밀레는 젊은 시절 몹시 가난해 싸구려 누드 그림을 그려 겨우 생계를 이었다. 그의 그림을 눈여겨 본 것은 평론가들이 아니라 자연으로 돌아가라의 사상가 루소였다. 가난에 허덕이던 밀레에게 어느 날 루소가 찾아왔다. “친구야, 드디어 자네의 그림을 사려는 사람이 나타났네.” 밀레는 친구 루소의 말에 기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의아해했다. 그때까지 밀레는 작품을 팔아본 적이 별로 없는 무명화가였기 때문이었다.

좋은 소식이야. 내가 화랑에 자네의 그림을 소개했더니 적극적으로 구입하겠다고 하더군. 이것 봐, 나더러 그림을 골라달라고 선금을 맡기더라니까.” 루소는 이렇게 말하며 밀레에게 300프랑을 건네줬다. 거금이었다. 입에 풀칠하기조차 힘들만큼 막막하던 밀레에게 그 돈은 감로수와 같았다. 또 자신의 그림이 인정받았다는 희망을 안겨줬다. 밀레는 생활에 안정을 찾았고 더욱 그림에 몰두할 수 있게 됐다. 몇 년 후 밀레의 작품은 화단의 호평을 받아 비싼 값에 팔리기 시작했다. 경제적 여유를 찾게 된 밀레는 어느 날 루소의 집필실을 찾아갔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몇 년 전에 루소가 화랑의 부탁이라면서 사간 접목하는 농부가 그의 거실 벽에 걸려있는 것이 아닌가. 밀레는 그제야 친구 루소의 깊은 배려의 마음을 알고 그 고마움에 눈물을 글썽였다. 가난에 찌들어 있는 친구의 자존심을 지켜주기 위해 사려 깊은 루소는 남의 이름을 빌려 친구의 그림을 사주었던 것이었다. 그 우정은 참다운 인간다움의 발로였다.

수양대군을 도와 최고로 권력의 맛을 봤던 자가 한명회다. 그가 시를 지었다. 젊어서는 사직을 붙잡고(靑春扶社稷) 늙어서는 강호에 묻힌다(白首臥江湖)

그럴싸하다. 하기는 역적도 음풍농월하는 혓바닥은 있게 마련이다. 이 싯구를 가만 두고 볼 수 없던 이가 생육신중 한 어른 매월당 김시습이었다. 그가 이 시의 각 행 한자씩을 바꿔 한명회를 시궁창의 쓰레기로 만들었다. 첫 행의 부()대신 ()’, 둘째 행에서는 ()’대신 ()“자를 넣어 고쳐버렸다. 바뀐 뜻은 젊어서는 나라를 망치고 늙어서는 세상을 더럽힌다아닌가. 최고의 조롱이자 능멸이었다. 매월당의 이런 천재적 시감각을 따를 수는 없다 할지라도 고친 싯구는 오늘 이 시절에 사무치게 공감하게 만든다. 그런 역량의 빼어남을 살리지 못하고 스님이 된 것을 안타깝고 애석해 했던 율곡 이이도 혀를 내둘렀다. 율곡 선생은 이렇게 말했다. “그의 문장은 물이 솟구치고 바람이 부는 듯하며 산이 감추고 바다가 머금은 듯, 신이 메기고 귀신이 받는 듯 특출한 표현이 거듭거듭 나와 사람으로 하여금 실마리를 잡을 수 없게 하였다.” 율곡선생이 쓴 매월당전에 나오는 글이다. 참으로 인지상정이다. 시를 쓸 힘은 없다 할지라도 모두가 공감할만한 구절 아닌가.

찰스 다윈은 아버지가 그를 법률가로 만들려고 했다. 아버지는 그러나 아들 다윈이 따라주지 않자 법대에서 신학대학으로 전학시켜 아들을 목사로 만들고자 했다. 당시 법률가나 목사는 부모들이 가장 선호하는 직업이었다. 다윈은 신학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도 빈둥거렸다. 목회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오로지 자연에 흥미를 쏟아 부었다. 그러던 다윈에게 기회가 왔다. 남아메리카로 가게 됐다. 그의 조국 영국에서는 볼 수 없는 생물들을 관찰하는 일을 맡게 됐다. 바라던 일이었다. 몇 달 동안 배를 타는 일도, 새로운 생물들을 만나는 일도 남들은 모두 다 귀찮아하며 기피했지만 다윈은 달랐다. 온 몸의 전율을 느꼈다. 함께 배를 탄 사람들은 몇 달 동안의 거칠고 지루한 항해로 지쳐 쉬고 있을 때 그는 관심을 가졌던 새로운 세상에 더욱 열중했다. 고국 영국으로 돌아와서도 그의 연구는 계속됐으며 깊이를 더해갔다. 끝내 다윈은 진화론을 탄생시켰다. 아버지의 욕심은 아들을 법률가나 목사로 만들어내지 못했다. 하지만 다윈은 스무 살이 지나 관심 분야에서 기회를 얻자 이를 놓치지 않고 온 힘을 쏟아 그가 뜻하는 바를 이뤄냈다. 오늘날 다윈 없는 과학을 생각할 수 있을까. 사람의 업적과 공로는 누가 억지로 시켜서 되지 않는다. 그게 사람이다.

군군신신(君君臣臣) 부부자자(父父子子)라는 말이 있다. 공자께서 해주신 말이다.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한다는 거다. 부모는 부모다워야 하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는 말이다. 제각기 각자의 도리를 알고 각자 맡은 바를 다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렇다. 우리 모두 자신의 분수를 넘지 않고 소임을 제대로 지킬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쉬운 듯하지만 참으로 지키기 어렵다. 단순하고 쉬워 보이는 것이 뜻밖에 힘이 든다. 대개는 그래서 실천을 못한다. 그런 부작위가 저자거리 김씨이씨라면 큰 허물이 될 것도 없다. 하지만 책임 있는 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가장 큰 권한을 가진 자는 가장 큰 책임을 진다. 헌데 권한만 행사하려하지 도통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자가 있다. 오늘의 대통령이다. 더 말해 무엇하랴.

선인들이 말하는 지혜로운 사람이란 쉬운 일을 어려운 마음으로 하고 어려운 일을 쉬운 마음으로 하는 사람이다. 때문에 하지 못할 일이 없다는 거다. 세상 사람들이 바르게 살고자 하고 또 살아가는 모든 이치가 이 말속에 다 들어있다. 가만히 마음을 가다듬고 이 말을 한번 생각해보자. 임금과 신하, 부모와 자식 안에 세상 모든 사람이 다 들어간다. 이런 이치대로만 한다면 굳이 인간이 만든 어떤 제도와 법이 필요 없다. 임금과 신하가 각자 제 할 일을 제대로 하는데 나라가 망할 일이 어디 있으며, 부모와 자식이 제 도리를 다하는데 가정이 화목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세상 사람들이 이 도리를 모르는 게 아니다. 알면서도 지키지 못하니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뒤죽박죽이 되어 혼란스러워진다. 콩켸팥켸다. 서로가 임금이 되려 하고 자식과 부모 사이에도 신뢰하지 못하고 저마다 각자 지켜야 할 도리를 지키지 못한다. 하여 세상은 실타래가 엉키듯 엉망이 되고 만다.

오늘날 이렇다 저렇다 말 많은 세상에 무슨 군소리가 필요할까. ‘내일 죽을 것처럼 살고 영원히 살 것처럼 배우라위대한 간디가 한 말이다. 끊임없이 배워야 한다. 그것이 사람이다. 배운다는 것은 곧 깨우친다는 거다.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길이다. <화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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