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아이가 잠을 자다가 소스라치게 놀랍니다. 낮에 놀다가 장난감에 심하게 부딪친 일이 있었습니다. 그 일 때문에 잠꼬대하는가 싶었습니다. 시골에서 자란 나이든 사람치고 어릴 때 낮잠 자다가 마루에서 몇 번씩 떨어지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 때가 너무 오래 전 일이라, 지금 생각하면, 내가 실제로 마루에서 굴러서 토방에 떨어졌었는지, 꿈속에서 여러 번 떨어졌었는지, 구분이 안 됩니다. 토방 아래 빨갛고 노란 채송화들이 피어 있었습니다. 비가 지나가고, 쨍한 뙤약볕에, 맨드라미며 홍초, 봉선화들 모습이 선연합니다. 기억이란 참 묘한 것입니다. 실제 있었던 일이 꿈같기도 하고, 꿈이 실제인 것처럼 착각이 될 때도 있습니다.
봄에는 꿈을 많이 꿉니다. 늦잠을 잘 때가 많고 피곤합니다. 옛날 얘기로는 겨우내 푸성귀를 못 먹어서 비타민 C가 부족해서 그런다고도 했습니다. 봄이면 만물이 생동합니다. 노란 복수초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갑자기 일찍 피고, 수선화며 작약순도 어느 날 발밑을 내려다보면 뾰쪽하게 올라와 있습니다. 사람인들 왜 안 그러겠습니까. 우리들이 제대로 깨닫지를 못해서 그렇지, 온몸과 마음에, 새로운 기운이 용솟음 칠 것입니다. 사람의 뇌가 산소를 많이 쓴다고 하지 않습니까. 날씨가 따뜻해지면 활동량이 많아지고, 본능적으로 생명력이 꿈틀거리니, 몸은 더욱 피곤해질 것입니다. 우리가 봄이면 잡다한 꿈들을 꾸는 것도 그런 까닭으로 보입니다.
얼마 전, 어떤 자리에서 꿈 얘기가 나왔습니다. “꿈에 차를 어디다 주차를 했는지를 몰라 헤맬 때가 많아요.”라고 했더니, 이구동성으로, “어, 나도 그럴 때가 많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것도 무슨 ‘동병상린’이라고 조금은 위안이 느껴졌습니다. 꿈에 차를 어디다가 둔지 몰라서 헤매는 것은 사실 별 것이 아닙니다. 그런 꿈을 꾸게 된 동기가 문제입니다. 어린애가 자다가 괜히 놀라겠습니까. 실제 더 깜짝 놀랄 일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 사실이 그렇습니다. 그 전날 밤에 술을 마시고, 중화산동 어디에, 놓고 온 차를 찾으러 집사람 차를 얻어 타고 갔습니다. 제법 의기양양하게 찾아간 그 곳에 내 차가 보이지를 않았습니다.
“차를 어디다 둔거야!” “분명히 여기다 뒀는데, 불법주차로 견인이 됐나?” “새벽부터 견인은 무슨 견인이야!” “뭐, 그럴 수도 있지.” “어서 차에서 내려. 돌아다니면서 찾아 봐!” “음…”
지금도 어떻게 어디서 그 차를 찾았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집사람과 같이 갔다가 차가 없었던 곳은, 그 빈자리는,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그 얘기를 군산에 사는 친구에게 했더니 쾌재를 불렀습니다. 그 친구, 역시, ‘동병상린’이였습니다. 그 친구는 아예 경찰서에 차량 분실신고를 냈었답니다. 며칠 뒤에 어떤 분을 만났더니 그러더랍니다. “의원님, XX목욕탕에 자주 가시는가 봐요?” “예?” “지나갈 때마다 차가 그 앞에 있던데요?” “아? 예! 고맙습니다!”
사람은 꿈이 맑아야 합니다. 맑은 꿈을 꾸면 자다가도 기분이 좋습니다. 섬진강 상류에 있는 구담마을에 가면 징검다리가 있습니다. 물이 맑고 깨끗해서 돌과 돌 사이로 흘러가는 물살이 비단자락 같습니다. 비가 와서 조금 물이 불면, 다리가 넘쳐서, 냇가를 건너 갈수가 없습니다. 그 찰랑찰랑하게 넘치는 징검다리는 보기만 해도 마음이 행복해집니다. 꿈에 그 징검다리를 꿀 때가 있습니다. 꿈은 나빴던 일도 꾸지만, 좋았던 일도 꾸는 것 같습니다. 물이 불어 찰찰 넘치는 징검다리를 못 건너는 꿈을 꿔도 기분이 괜찮습니다. 오히려 무슨 좋은 일이 있을 것 같은 기분마저 듭니다. 맑은 물이 넘치는 꿈은 좋다고 들은 적도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공자님께서도 꿈 타령을 하셨던 모양입니다. 돌아가시기 얼마 전이라고 하니, 연세가 70이 넘어서 얘기입니다. “심하도다. 나의 노쇠함이여! 오래되었도다. 내가 다시 주공을 꿈속에서 뵙지 못한 지도.”라고 하셨답니다. 논어 ‘술이’편에 있습니다. 주나라는 세습제가 형제에 우선권이 있었답니다. 형이 붕어한 후, 주공은 왕위를 형의 아들에게 넘겼답니다. 9세에 즉위한 성왕입니다. 주공은 조카가 16세 될 때까지 섭정을 했습니다. 조카가 잘못하면, 동갑인, 친아들의 종아리를 때려 가르쳤다고 합니다. 공자님이 주공을 흠모했던 이유를 알만 합니다. 공자님의 한탄은, “요즘 내 꿈이 맑아! 주공도 내 꿈에 안 보이거든!”처럼 제게는 자랑으로 들립니다.
고등학교 때 은사님을 찾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철이 들기 시작할 때이고, 사회생활을 하는데 직접적인 영향을 가장 많이 받아서 그런 것 같습니다. 남성고등학교 교장을 지내셨던 정봉화 선생님은 저의 고등학교 3학년 때 담임이셨습니다. 선생님께서는 강암선생님 따님이신 서예가 이당 송현숙 선생님과 결혼하셨습니다. 정 교장선생님은 이당선생님을 무척 존중하셨습니다. 언젠가, “머릿속에서 곗돈이나 계산하면 글씨를 쓸 수가 없는 것이야.”하시면서 자랑스러워 하셨습니다. 글씨를 쓰면 수양이 된다고 하지만, 수양이 되어 있어야 글씨를 쓸 수 있습니다. 꿈이 맑아야 글씨도 맑습니다. 꿈은 우리들의 마음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중요한 척도입니다.
꿈도 삶의 일부입니다. “나비의 꿈속에 내가 있는 것인지, 나의 꿈속에 나비가 있는 것인지” 우리가 느끼는 것이 삶이라면, 어느 쪽이 진짜 삶인지 구분할 수가 없습니다. 봄이 되면 매번 시각적으로 전주천의 버드나무가 먼저 눈에 띕니다. “고향 앞의 버드나무 올 봄도 푸르다.”고 그리워하지 않습니까. 새벽녘 잠이 깨어서 이 생각 저 생각 뒤척여 봅니다. 삶은 잡다한 그런 것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생각을 하다가 잠이 들고, 꿈을 꾸고, 무슨 꿈을 꾸었던가, 되새겨보고, 그런 것들이 모두 삶 아닙니까? 세월호가 뭍으로 올라오고, 누구는 감옥에 갇혔습니다. 정화의 과정이 필요합니다. 모두 맑았게 씻어내야 합니다. 요즘 무슨 꿈을 꾸십니까?
을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