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럼> “찔레꽃 필 무렵”

막걸리 집 안주로 미나리김치가 나왔습니다. 살짝 데쳐서 김치를 담갔는데도 꽤 질겼습니다. “처갓집 세배는 미나리 꽃 필 때 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바쁜 봄철 농사일이 끝나고 가도 된다는 뜻입니다. 옛날에는 지금보다 모내기철이 늦었습니다. 시골에서 미나리꽝은 우물곁에 있었습니다. 미나리가 꽃이 필 때쯤이면 뽑아내고 왕골을 심습니다. 왕골은 가을에 수확하고, 다시 그 자리에, 미나리를 심었습니다. 못자리를 하고 모내기를 하기까지 농촌에서는 눈 코 뜰 새 없이 바빴습니다. 부엌에 몽당 빗자루까지 일을 거들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아이들도 학교에 가지 말고 농사일을 도와줘야 했습니다. 농촌은 물론 웬만한 도회지도 농번기 방학이 있었습니다. 얼마 전에 돌아가신 고모님이 할머님께 학교 못 가게하고 일 시켰다.’고 하시는 푸념을 들은 적도 있습니다.

 

어머님 손을 잡고 외갓집에 갔던 기억이 납니다. 저의 고향 춘포에서 용지 외갓집까지 가려면 만경강을 건너고 백구면 공술마을을 지나야 했습니다. 멀고도 멀었습니다. 공술 마을 앞쪽의 갯버들 고목들이 늘어선 것이 보이면, 어머님은 이제 거의 다 왔다.’고 하셨습니다. 외갓집은 거기서도 한참을 더 가야 했습니다. 공술마을 뒤를 지나면 낮은 산길이 이어졌습니다. 붉은 황톳길입니다. 저의 기억 속에는 끈적끈적한 오리나무 새순이며, 넝쿨진 맹감나무, 찔레꽃도 있고, 대나무 죽순, 그런 것들이 있습니다. 외갓집에는 일 년에 두 차례, 6월과 10월쯤, 다녀왔을 텐데, 그 계절이 겹쳐서 생각이 떠오릅니다. 집으로 돌아올 때는 언제나 부용에서 기차를 타고 이리(익산)역을 거쳐서 대장촌(춘포)역으로 왔습니다. 왜 외갓집에 갈 때는 걸어가고 집으로 돌아 올 때는 기차를 타고 왔는지 나이가 들어서야 겨우 생각이 되었습니다.

 

네 아빠를 마지막 봤을 때는 뱃속에 너를 가진지 3개월 되었을 때다. 요즘 여자들 같았으면 알았을 텐데, 나는 애기가 들어섰는지도 몰랐었다. 그 때, 네 얘기를 했으면, 그 후 어떻게 됐을지도 몰랐을 텐데 하는 생각도 해봤다.” 언제쯤이었을까, 못내 아쉬운 듯, 어머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어머님과 함께 자던 윗방에는 벽시계가 있었습니다. 태엽 구멍이 두 개였는데, 태엽감개를 구멍에 꽂고 각각 안쪽을 향해 감았습니다. 몇 살쯤이었을까, 제가 탁자를 밟고 올라가 태엽을 감으면 어머님께서 칭찬을 하셨습니다. 시계 문자판에 붉은 한문글씨로 쓰인 축 결혼이 지워져 있는 것이 무슨 까닭인지 눈여겨 본 것은 아마 제가 중학교에 다니던 때쯤이었을 것입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저는 어느 누구에게도 물어 볼 수 없었습니다. 그냥 어쩌다, 할머님이 말씀하시던 것, 어머님이 혼자 말씀하시던 것을 들었을 뿐입니다.

 

시골에 살게 되면서 꽃나무들을 여기저기서 이것저것 구해서 심었습니다. 꽃이 아주 없어서 허전하지 않도록 피는 시기를 생각도 했습니다. 봄부터 꽃들이 제 차례대로 피고지고 합니다. 서향이 퍼지고, 복수초부터 시작해서 팥꽃이며 아그배 사과 모과 모란 작약 해당화, 줄줄이 경염을 벌립니다. 마지막 늦가을 11월에 구골 목서가 피면 한 해가 갑니다. 영춘화나 복수초 미선나무 같은 꽃은 갑자기 피어서 놀라게 해주는 재미가 있다면, 모란이나 작약은 붉은 순이 올라오는 것을 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꽃 중에서도 유난하게 향기가 좋은 꽃들이 따로 있습니다. 특히 흰색 꽃들이 향기가 좋습니다. 서향도, 모란과 작약도 흰색이 향기가 강합니다. 흰색 찔레꽃도 어느 꽃향기 못지않습니다. 그런 꽃향기에는 어린 시절 어머님의 냄새가 납니다. 아침저녁으로 화장대에 앉아서 화장을 하시던 그 냄새가 찔레꽃의 향기와 같았습니다.

 

저의 할머님은 제가 고등학교 2학년 때 돌아가셨습니다. 위암수술을 받으시고 1년 더 사신 것입니다. 할머님은 숙부님이 계신 김제 희남 초등학교 학교 관사에서 계셨습니다. 익산에 있는 고등학교에서 토요일 수업이 끝나면 버스로 백구면 영상리 득룡교에서 내려서, 김제 애통리 희남 초등학교까지 걸어갔습니다. 영상리에서 애통리까지는 일제시대 때 비행장으로 쓰였다고 합니다. 가도 가도 황토길, 드문드문 호밀이 심어져 있었습니다. 애통리부터 희남 초등학교까지는 군데군데 솔밭이 있었습니다. 찔레꽃이 피고 뻐꾸기가 울었습니다. 뻐꾸기는 잿빛입니다. 여간해서 민가에는 내려오지 않고 숲속에서 웁니다. 그 길이 호젓해서 그랬을까, 뻐꾸기 두어 마리가 길을 안내하듯 앞서거니, 뒤서거니 날아다니면서 길섶 소나무에 앉으며 울었습니다. 어머님의 손목을 잡고 외갓집 가던 생각이 났습니다. 할머님은 그 다음 주에 돌아가셨습니다.

 

명부허전이라는 TV 프로에서 유종호 선생님께서 정지용 시인이 1932년 발표한 고향이라는 시를 낭송해 주셨습니다. “… 산꿩이 알을 품고/뻐꾸기 제철에 울건만,//마음은 제 고향 지니지 않고/머언 항구로 떠도는 구름,//오늘도 메 끝에 홀로 오르니/흰 점 꽃이 인정스레 웃고,…” 처음에 시를 발표할 때는 뻐꾸기 한창을 울건만이었답니다. 그 뒤에 제 철에로 바꿨답니다. 얼마 전 막걸리 집에서 미나리 김치를 먹으면서 그 얘기를 나눴습니다. 진동규 시인, 박종수 화백, 송국현 교장 선생님, 모두 찔레꽃 필 무렵이면 가슴속에 슬픈 사연들을 갖은 분들입니다. 송교장은 국가유공자 자녀입니다. 송교장선생님은 어릴 때 외갓집에서 자랐답니다. 언젠가 제가 송국현 교장께 여쭈어 봤습니다.

그때 백구 마전은 무슨 일로 가셨습니까?”

, 거기에 외갓집이 있어


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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