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언론문화원 주최로 5월 18일 열렸던 특강 원고를 옮겨싣습니다.
“안개 속을 헤매는 것 같은 이 모든 논의들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선생님께서는 귀족이고, 저도 귀족입니다. 그냥 귀족의 명예를 걸고 이 논제는 참이라고 말하십시오. 제게는 그거면 충분합니다.”
18세기에 수학 수업을 받던 한 제자가 스승에게 말했다는 일화입니다만, 당시로서는 충분히 있을 법한 얘기입니다. 오늘날 우리들도 누구와 얘기를 나누다가 보면, 어떤 것이 사실인지 아닌지, 맞는 말인지 틀린 말인지, 애매할 때가 있습니다. ‘백문(百聞)이 불여일견(不如一見)’이라고 하고, ‘보는 것이 믿는 것이다.(Seeing is believing.)’라고도 합니다만, 문제는 우리가 그렇게 확신을 가지고 있는, 시–청–후–미–촉(視聽嗅味觸), 5감이 그리 믿을 것이 못 된다는 점에 있습니다. 증명되지 않은 현상은 인정할 수가 없다는 것은 과학의 기본적 자자세입다. 어떤 일로 인하여 급속하게 사태가 발전되어 나아가는 것을 ‘방아쇠효과(trigger effect)’라고 부릅니다. 주로 생태계에 급격한 변화를 유발하는 ‘조그만 사건’을 뜻하지만, 과학의 발전에 중요한 계기가 되는 경우에도 씁니다. 인류는 오랜 기간에 걸쳐 점진적으로 발전해 왔습니다. 사회 구조를 송두리째 바꿔 놓은, 기술적인 면에서, 최초의 방아쇠효과는 방직기에 증기기관을 연결(1787년)했을 때 이뤄졌습니다. 영국에 설치된 방직기계 수는 1813년까지 2400대였던 것이 1833년에는 85000대로 증가했다고 합니다. 전기로 동력이 바뀐 것은 1866년 지멘스가 발전기를 만들면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과학은 1900년을 기점으로, 모든 분야에서,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수학은 과학적 사실을 표현하는 언어입니다. 과학적인 현상들은 엄격한 추론 끝에 그 결과가 논리적으로 증명이 되어야 정설로서 인정을 받게 됩니다. 시대가 발전하면 그에 따라 언어도 달라집니다. 과학을 표현하는 언어인 수학도, 과학이 발달함에 따라, 새로운 체제, 달라진 패러다임이 필요하게 됐습니다. ‘수학이란 무엇이어야 하고, 어떤 방법으로 발전 시켜야 될 것인가’에 대해 많은 수학자들이 고심을 했습니다. 소위, ‘수학 기초론’이라는 것입니다. 수학분야의 발전에서 방아쇠효과는 ‘공리(axiom)란 무엇인가’에 대한 견해에서부터 비롯됐습니다. 수학이란 공리를 바탕으로 전개해야 한다는 것은 그리스 시대, 유클리드(300? B. C.), 이래의 전통이었습니다. 다만, ‘공리’에 대한 견해가, ‘너무 당연한 사실’이라는 관점에서 ‘필요한 가정들’로 바뀐 차이가 있을 뿐이었습니다. 오늘날의 인류문명은 산업혁명 이후, 중산층이 두터워지면서 눈부신 발전을 했습니다. 수학에서 공리는 새 시대의 다양성을 담을 수 있게 되었고, 과학적 표현이 풍부한 언어가 됐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수학은 기호의 학문입니다. 사실 우리들이 쓰고 있는 낱말 자체가 기호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대상’을 두고, ‘빨갛다’라고 부른다면, 그 대상에 대한 일부분의 특징을 표현한 셈입니다. ‘빨갛다’라는 말 가운데는, 우리가 봤던 ‘대상’ 말고도, 수많은 또 다른 ‘대상’들도 포함하고 있게 됩니다. 기호화는 추상화입니다. ‘빨갛다’라는 말 대신에 ‘노랗다’로 바꿀 수도 있고, 아예 ‘x x x’로 쓸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추상화는 개념을 일반화 시키고, 적용할 수 있는 대상을 확장하게 합니다. 어떤 개념을 얼마만큼 확장 시킬 수 있느냐가, 어떤 면에서는, ‘지성인의 척도’라고 말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면, ‘같다’라는 말을 수학에서는 ‘동치관계’로 대상을 일반화 시키고, 나아가서 추상화 시킵니다. ‘같다’를 수학적으로 해석해보니까, ‘반사–대칭–추이’적이더라, 그런 성질이 있는 관계라면 ‘같다’라고 볼 수도 있다는 것이지요. 시인들이 언어를 활용하듯이 과학자들은 수학을 다양하게 만들어서도 씁니다. 그것은 목수가 어떤 가구를 짜기 위하여 새로운 연장을 대장장이에게 부탁하여 만드는 것과 같습니다. 마치 바이올린의 앞뒷면 테두리에 ‘퍼플링(Purfling, 세 겹 나무 띠를 넣은 상감)’을 위해 특수한 연장이 필요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예를 들면, ‘평균’이라는 것도 그렇습니다. 어떤 경우는 산술평균(A+B/2)을 쓰고, 대상이 달라지면, 어떤 때는 기하평균 √AB/2 을 쓰기도 합니다. 또 다른 경우에는, 조화평균 2AB/(A+B)도 쓰고, 헤론의 평균(A+√AB+B)/3을 쓰기도 합니다. A=1, B=2인 경우, 수열 ‘1 < 2×(1×2)/(1+2) < (1+2)/2 < 2’는 ‘1 < 4/3 < 3/2 < 2’이 되어, 각각 순정률 음정 ‘도 < 화 < 솔< 도’가 됩니다. 헤론의 평균은 원뿔대의 윗면적과 밑면적의 넓이가 각 각 A, B일 때, 같은 체적의 원기둥의 단면적을 구할 때 사용할 수 있습니다. 수학적 성질들은 묘하게 서로 관련이 되어 있습니다. 원주율인 π는 수학의 각 분야 곳곳에서 출몰합니다. 하나의 정리가 일반화 되어 다양한 경우에 적용되기도 합니다. ‘피타고라스 정리’는 유명합니다. 그 내용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듯이, ‘직각삼각형에서 빗변의 제곱은 다른 두 변들의 제곱의 합과 같다(c²=a²+b²)’라는 것입니다. 이 정리는 직각삼각형이 아닌 경우에도 확장이 가능합니다. 밑변과 높이 사이의 각을 α 라고 한다면, c²=a²+b²╶ 2ab cosα의 관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기하적인 증명방법도, 직각삼각형인 경우 각 변을 한 변으로 하는 정사각형들이였다면, 일반 삼각형인 경우 각 변을 한 변으로 하는 평행사변형이 되는 차이만 날 뿐 방법은 같게 됩니다. 나아가, 일반사면체에도 피타고라스 정리가 적용될 수 있는 것을 보면, “수학이란 참 신비한 것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은 많습니다. 수학은 현상의 특징을 추상화하여 보다 폭 넓고 다양한 세상을 꿈꿉니다. 복잡한 상황을 단순화 시켜서 모의실험(시뮬레이션)을 할 때도 있습니다. 그 결과들은 현실적인 것일 수도 있고, 언젠가 실현이 될 수 있는 것도 있습니다. 그것이 수학 자체가 갖고 있는 가치(its own right)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상의 여러 현상을 수학이라는 언어로 표현하고 바라본다는 것은 참으로 고귀하고 아름다운 일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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