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너 안형일(1927 – , 평북 정주)교수님이 그렇게 정정하신 줄 몰랐습니다. 예술의 전당 고학찬 사장님의 열의로 매년 가을에 열리는 음악회에서 녹화필름으로 현재명의 ‘고향 생각’을 부루시는 것을 봤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TV 화면을 몇 컷 찍고, 집에 있는 LP 자켙의 사진과 내용도 함께 올립니다.

고향생각을 부르셨는데, 고향이 평안북도 정주이시고, 연세가 90이나 되셔서 그런지, 가사 한 마디 한 마디가 깊은 감동을 주셨습니다. 성악하시는 분들의 말씀을 들어보면 안형일 교수님은 고음이 아주 아름답다고 하십니다. 아닌게 아니라,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황금빛 고음’이라는 찬사가 있습니다.

안교수님의 LP음반은 LP시대가 거의 끝나갈 무렵에 나왔습니다. 어떤 분의 표현을 빌리면, 그 당시가 “아날로그의 음질이 최고로 좋았을 때”라고 합니다. RCA에서 나온 선생님의 음반도 소리가 아주 좋습니다.


유한철 선생님이 글을 써 주셨는데, 유 선생님은, 자세한 기억은 안 나지만, 음악을 전공한 분이 아닙니다. 음악평론뿐만 아니라, 미스 코리아 대회의 단골 심사위원이셨고, 뭐, 취미로 코르넷을 불었다는 얘기도, 제 기억 자체를 믿을 수가 없습니다. 하여튼 ‘르네상스 맨’을 추구하셨던 분입니다.

서울사중창단’이 있었습니다. 소프라노 박노경, 앨토 이정희, 테너 안형일, 바리톤 오현명이 그 멤버였습니다. 나중에 모두 예술원 회원이 되셨습니다. 오현명 교수님은 한양대학교 교수로 정년을 마치셨는데, 아마 김연준 총장께서 꼭 붙잡고 계셨던 것 같습니다. 나머지 분들은 모두 서울음대에 계셨지요.

한양대학교 설립자이신 김연준 총장님은 음악애호가셨습니다. 본인께서 독창회도 하셨고, 몇 백 곡이 넘는 한국가곡을 작곡하셨습니다. 살아계셨을 때는, 뛰어난 음악가가 눈에 띄면, 무조건 한양대학교로 스카웃해 가셨습니다. 그런 분들은 대부분 몇 년이 지나면 서울대학으로 옮기셨습니다.피아노 반주를 잘 하셨던 정진우 선생님도, 처음에는 의학을 하셨던 분으로 기억이 됩니다. 한국의 ‘제랄드 무어’ 같은 정감있으신 분입니다.

벌써 몇 년 전이던가, 제가 이탈리아 로마에 2개월 있었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안형일 교수님의 큰아드님 내외가 로마에 유학중이셨는데, 함께 저녁식사를 한 적이 있습니다. 로마한인교회 한평우 목사님 내외분께서 저희 부부와 함께 초대를 해주셔서 마련된 자리였습니다.안형일 교수님의 건승을 비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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