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럼> 진달래꽃

날이 풀리자 온갖 꽃들이 다투어 피고 있습니다. 각종 묘목들이 폭 넓게 유통 되다보니 예전에는 몰랐던 꽃들도 많습니다. 재래종인가 외래종인가 알 수가 없습니다. 저희가 사는 집도 뜰이 그다지 넓지는 않지만 제법 여러 가지를 심었습니다. 맨 먼저 복수초가 피고, 그 다음 순서는, 영춘화 매화 산수유 미선나무 서향 수선화 목련 살구꽃 등등으로 줄줄이 이어집니다. 이어서 벚꽃 복숭아꽃 배꽃 모란 작약 등등이 순서를 기다리는 터입니다. 김영랑의 모란이 피기까지처럼, 모란꽃은 해마다 허망하게 피었다가 지곤 합니다. 모란이 지는 늦은 봄부터, 장미꽃이 피는 초여름까지, 작약꽃이 피어서 좋습니다. 작약꽃은 모란꽃보다 향기가 더 짙습니다. 모란꽃도 그렇지만, 작약꽃도 품종을 다양하게 개량하였는데, 흰색과 노란색 계통은 향기가 유별나게 강합니다. 백목련은 제외하고, 흰 꽃들이 향기가 맑고 짙은 것 같습니다.

 

엊그제 구례 섬진강변 벚꽃을 구경하고 왔습니다. 곡성에서 구 도로를 따라 가다가 옛 침곡 기차역 근처에서 좌회전해서 섬진강을 건넜습니다. 그 곳부터 기차역이 있는 구례구까지가 강변을 따라 벚꽃이 피어 장관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오른쪽으로 옆에 섬진강을 끼고 만발한 벚꽃 터널을 지나는 길이 감동적이었습니다. 꽤 오래 전부터 구례읍에 가면 다슬기 수제비가 유명합니다. 몇 년 전 새로운 집이 또 생겼는데, 어느 집이나 모두 맛이 좋고, 곁들여 나오는 반찬들도, 장사가 잘 된다고 맛과 품질이 떨어지지 않고, 일정한 수준을 유지하며, 좋습니다. 오후에 돌아올 때도, ‘구례구쪽으로 되돌아가서, 이번에는 왼편에 섬진강을 끼고, 곡성까지 벚꽃 터널길을 따라 왔습니다. 흰 벚꽃 터널을 지나는 동안, 어느 순간에, 진달래꽃이 차창을 스쳤습니다. 그 날 진달래꽃이 주연은 아녔지만, 오래 그 모습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김소월(본명 김정식 1902-1934)의 시 진달래꽃, 요새말로, ‘명품입니다. 어느 분의 표현을 빌리면, 몇몇 시인들이 쓴 몇몇 명품들은 한글이라는 우리 부족의 언어를 더욱 아름답고 풍요롭게 만들었습니다. ‘진달래꽃은 평론가 유종호(1935- ) 선생님도 명품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특히 시인이 어떤 작품을 쓸 때 얼마나 고심을 하는지 예를 들어 설명하시는 말씀을 들어보면 감동적일 때가 많습니다. 초판본에는 어떻게 썼었는데, 언제 어떻게 다시 고쳤는지, 그렇게 고쳐서 그 시가 얼마나 좋아졌는지, 우리가 알지 못했던 그런 얘기가 눈물겹게 고마운 생각이 듭니다. 정지용(1902-1950)의 시 고향도 그랬습니다. ‘정지용시집(1935)’ 초판본에는 뻐꾸기 한참을 울건마는이었던 것을 그 다음 판본에서는 뻐꾸기 제철에 울건마는으로 고쳤다고 하시면서, 그 것 때문에 얼마나 시가 좋아졌냐고 하셨습니다.

 

소월의 진달래꽃은 잡지 <개벽> 19227월호에 처음 실렸답니다. 그 원문은 이렇습니다.

나 보기가 역겨워/가실 때에는/고히고히 보내 드리우리다//영변에 약산/그 진달래꽃을/한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가시는 길 발걸음마다/뿌려 놓은 그 꽃을/고히나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그 뒤에 고쳐서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진달래꽃의 전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나 보기가 역겨워/가실 때에는/말없이 고히 보내드리우리다//영변에 약산/진달래꽃/아름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가시는 걸음 걸음/놓인 그 꽃을/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나 보기가 역겨워/가실 때에는/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

이 시처럼, 소월은 천성적으로 청각적 상상력이 풍부하면서 섬세한 시인이었다고 합니다.

 

우리들은 문학인들이나 음악 미술 등등 여러 분야의 예술가들이 얼마나 고마운 분들인가를 잘 모릅니다. 사실, 다른 분야들, 예를 들어, 인문학자들이나 자연과학자들에 대해서도 모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어쩌다 같은 전공분야의 분들이 어떤 사람이 훌륭하다.’라고 언급을 해줬을 때에야 우리는 비로소 ? 그런가!’하고 느낄 때가 있을 뿐입니다. 예를 들면, 어느 시인이 다른 어떤 시인을 칭찬할 때, 우리는 곁에서 그 말을 듣고, ‘, 그런가!’라고 짐작하게 된다는 것 입니다. 우리가 추사 김정희 선생이 명필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가 있겠습니까. 서예나 역사 또는 다른 인문을 하시는 분들이 구체적으로 칭찬을 하니까 , 그런가!’할 뿐입니다. 음식도 그렇지 않습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음식의 맛을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자기 수준에서 자기 입맛대로 판단 할 뿐입니다. 어찌 일류 요리사의 조언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소월의 진달래꽃은 아무리 읽어봐도 명품입니다. 비록 다른 분의 설명을 들어서 그렇게 좋아하게 됐다고 하더라도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입니까. 우리는 각자 살아가는 투가 다르더라도 느슨하게라도 인간관계를 넓게 유지해야 할 것입니다. 내가 잘 모르는 것을 누가 알려주거나 경험담을 얘기해 주면 얼마나 좋습니까. 다슬기 수제비 한 그릇이라도 그렇고, 자장면이라도 성의가 있게 잘 만드는 사람이 있으면 널리 얘기해 줄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나라 정치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런 점이 부족하고, 어떤 사람은 그런 점이 아예 없지 않나 싶습니다. 소월의 시들은 노래로도 많이 작곡 되었고 각각 여러 성악가들이 녹음 하였습니다. ‘진달래꽃은 김노현 김동진 김성태 정회갑 하대응 등의 곡이 있습니다. 진달래꽃이 선명하게 핀 모습은 남원 백장암 올라가는 소나무 숲이 좋았습니다. 누구 기억하시는 이 계십니까?

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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