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친구들에게 “한글이 왜 명품이지?”라고 물은 적이 있었습니다. 대답들은 거의 대부분 비슷했습니다. “만든 사람이 뚜렷하고, 혼자서 배울 수 있을 정도로 읽고 쓰기가 쉽다.”라는 것이었습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는 어떤 사람은 “글자의 자획 형태를 발음기관의 모양에서 따왔다.”라고도 했습니다. 저도 아마 ‘한글의 탄생’이라는 책을 읽지 않았었다면 마찬가지로 대답을 하였을 것입니다. 그 책은 일본 사람 노마 히데키(1953 – )가 썼는데, 일본에서도 인기가 매우 높아서 ‘마이니치 신문사와 아시아 조사회’가 주최하는 ‘아시아 태평양상’의 대상을 수상(2010년)했다고 합니다. 저자가 직접 쓴 한글 번역판(2011년)의 머리말을 보면, 수많은 일본인과 한국 학자들의 도움을 받았답니다. 노마 히데키는 미술작가였는데, 한글에 매혹되어, 대학에 다시 입학, 한국어학을 전공했으며, ‘대한민국 문화포장(2005년)’까지 받은 학자입니다.
‘한글’이라는 명칭은 ‘위대한 문자’라는 뜻으로, 주시경(1876-1914) 선생이, 붙였다고 합니다. 주시경 선생은, 38년의 짧은 생애를 사셨지만, ‘국어문법(1910년)’을 저술하시고, 최초의 순 한글신문인 ‘독립신문’의 표기를 총괄하였으며, 무엇보다, 최현배(1894-1970) 김두봉(1889-?)같은 제자를 기르시기도 하셨답니다. 최현배는 해방 후 한국의 한국어학을, 김두봉은 북한의 조선어학을 이끈 학자들입니다. 1933년에 포스트–주시경학파라고 불러도 좋을 김윤경 이병기 등이 ‘한글맞춤법통일안’을 발표하여, 오늘날 남북한의 한글정서법이 큰 차이가 없도록 되었다 합니다. 주시경 이전의 한글 명칭은 ‘훈민정음’ ‘정음’ ‘언문’ 등으로 불렸답니다. <훈민정음> 해례본은 1940년 경북 안동의 한 고택에서 발견 되었는데, 목판으로 인쇄되었고, 앞 두 장이 없었는데 다른 문헌을 참조하여 보완됐고, 1962년에 대한민국의 국보로 지정이 되었습니다.
세종께서 집현전 학자들로 하여금 한글을 만들도록 한 뜻은 세종이 직접 썼다는 훈민정음의 머리말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우리나라 말은 중국과 달라 한자한문과 서로 통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한자한문을 모르는 어리석은 백성들은 말하고 싶은 바가 있어도 끝내 그 마음을 말하지 못하는 이가 많다. 나는 이것을 딱하게 여겨 스물여덟 자를 만들었다. 이는 오직 사람들이 배우기 쉽고 날마다 사용함에 도움이 되도록 바라는 마음에서이다.> 절제 된 필치의 명문 아닙니까? 우리가 역사시간에 배웠던, ‘최만리라는 학자가 한글창제를 극렬히 반대했다는 것’은 요즘 얘기로 말하자면, ‘앞으로 한문을 읽지 못해서 사서삼경도 이해 못하는 자들이 관직에 나아가 승승장구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을 것’을 염려한 것이라고 합니다. 한문을 통한 기득권층들의 지식에 대한 독점이 깨질 수도 있겠다는 그런 긴박감의 발로라는 것입니다.
제가 깜짝 놀란 것은 “한글은 소리를 상형문자화 했다. 특히 모음을 문자로 표현 했다.”라는 얘기였습니다. 서방에서 발생한 단음문자인 아랍문자는 선을 주체로 하여 자음을 표기한 문자랍니다. “신이 선을 긋고 사람이 점을 찍었다.”라고 하는데, 아랍문자는 들쑥날쑥한 곡선들 위 아래로 점들이 찍혀 있지 않습니까? 그것은 자음뿐인 문자에 위아래의 점들로 모음을 표시한 것이라 합니다. “자음은 선으로 신이 줬고, 모음은 점으로 인간이 찍었다.”는 얘깁니다. 한글 창제에는 음양오행의 자연법칙이 들어 있다는 것도 새로웠습니다. 모음의 ‘천지인’는 주역의 ‘삼재’를 뜻하고, ‘ㅏ’와 ‘ㅓ’는 ‘양과 음’이고, 자음은 ‘아–설–치–순–후’=‘목–화–금–토–수’=‘춘–하–추–계하–동’=‘각–치–상–궁–우’가 오행에 따른 것이랍니다. 특히, 가을 ‘추’ 다음에 오는 ‘계하’는 영어로는 ‘인디안 썸머’처럼 돼서, ‘과연 절묘하구나!’라는 감탄이 절로 나왔습니다.
훈민정음을 제정하고 나서 제일 시급한 것은 우리말로 한자를 어떻게 읽는지 통일하는 것이었습니다. ‘동국정운’이 바로 그것인데, 시를 지을 때, 운을 맞추기 위해서도 우리말로 통일성 있게 한자를 읽을 필요가 있었습니다. 우리들이 한자를 읽은 음은 신라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서 당시 당나라 장안에서 쓰던 방언에서 주로 왔고, 이후의 음층이 그 위에 겹쳐져 있다고 합니다. 세종은 중국에서 발음하는 대로 한글로 표기하고 싶어서 여러 방법을 고안 했답니다. 지금은 퇴화된 고저 악센트 시스템은 우리나라 동북방언(함경도)과 동남방언(경상도)에 흔적이 남아 있다고 합니다. 음을 분해하여 작은 ‘음소’로 시작하여 ‘자음+모음+자음’으로 만든 한글은 요즘 컴퓨터시대에도 여러 가지 다양한 디자인과 모양으로 입출력할 수 있어서, 살아있는 어떤 생명체처럼, 놀랄 만큼 빠른 속도로 스스로 진화를 거듭하고 있는 중이라고 합니다.
한글은 한자와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습니다. 우리들이 우리들 고유의 언어인 줄로 알고 있는 말들 가운데에도 알고 보면 한자에서 온 것이 많습니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면, ‘혹시 우선 과연 가령 설령 어차피 도대체 하필 여간 부득이…’ 등등, 모두 한자에서 온 말들 아닙니까. 한글과 한자는, 어쩌면, 유전정보가 담긴 디엔에이 분자구조처럼, ‘이중나선’으로 이해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말을 잘 하려면 우리말의 ‘속뜻’을 알아야 합니다. 한글이 제정 된 이후에 우리말은 시조를 비롯하여 판소리와 국문소설 등 눈부신 발전을 거듭했습니다. ‘조침문’이나 ‘동명일기’ 등을 보면 규방에서 여성들도 얼마나 좋은 글들을 많이 썼습니까. 궁체를 비롯한 각종 한글 서체들은 또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우리 글로 된 문학작품은 우리가 평생 부족함이 없이 즐길 수 있을 만큼 많고, 또 쌓이고 있습니다. 우리 한글, 정말 절묘한 명품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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