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럼> 이 봄이 낯설기만 합니다.

봄이 왔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느냐는 듯이 어느 해보다도 더 싱싱하게 꽃들이 만발했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던가 싶기도 하고 노상 그래 왔었던 듯싶기도 하는 이 봄이 낯설기만 합니다. 봄이 되면 곧 코로나 백신을 맞을 수 있고 모두 새로운 생활이 시작될까도 싶었는데 그것도 아닌 듯합니다. 언제쯤 모든 사람들이 백신접종을 할 수 있을지, 아마 찬바람이 불어 올 때쯤이나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때쯤이 되면 또 다른 악성 코로나 변종이 확산 될지도 모를 일입니다. 어차피 세상은 바뀌고 있습니다. 무엇은 조금 빨리 올 수도 있고 어떤 것은 더디게 변화하는 차이뿐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앞으로 사람들이 더욱 내면화되고 마음들이 단단해질 것 같습니다. 무엇인가에 대하여 서운하고 노엽지만, 그렇다고 전염병에 대하여 화를 낼 수도 없지 않겠습니까. 며칠 걸러 미세먼지가 가득한 것조차 분노 비슷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우리가 언제부터 저 머나먼 이집트 수에즈운하 모래톱에 뱃머리가 박힌, ‘에버기븐 호라는, 남의 나라 컨테이너선까지 걱정을 하게 됐습니까. 무슨 배 한 척이 길이가 400m나 되고 폭이 60m나 된 답니까.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채우던 갖가지 토픽이 아니더라도 별별 뉴스들이 넘쳐 납니다. 수에즈운하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이번에야 알았습니다. 사람의 몸으로 말하면, 수에즈운하는 사람의 목구멍쯤 되는 듯싶었고, 파나마운하는 남자들의 전립선쯤 되는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그 거대한 컨테이너선이 밀물이 차오르면서 겨우 모래톱을 빠져나왔다니, ‘수도선부(水到船浮)’ 라는 말이 실감났습니다. 거의 일 주일 만에 배가 빠져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후두염과 전립선의 문제가 해결이 된 듯 그렇게 시원했습니다. 고대라면 델포이신전에 신탁이라도 했을 해난사고의 답이 수도선부라는 옛말 속에 있었다니 슬며시 웃음이 났습니다.

 

제가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을 처음 알게 된 것은 무슨 좋지 않은 일로 이명박 대통령이 TV에 나왔을 때, 사무실에 水到船浮라는 액자가 걸린 것이 봤을 때입니다. 그 한문 글자가 생각이 안 나서, 인터넷에서 물이 차면 배가 뜬다.’를 검색했더니, ‘크리스천투데이에 실린 <김진홍의 아침묵상>에 눈길을 끄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김 목사님에 따르면 이명박 대통령이 임기 마지막 날 동작동 현충원을 찾았답니다. 그 당시 방명록에 남긴 글이 水到船浮랍니다. 그 글귀를 김진홍 목사는 해석을 참으로 묘하게 했습니다. <<“욕심을 부려 억지로 하지 않고 내공(內功)을 쌓아 기다리면 큰일도 어렵지 않게 이룰 수 있다는 말이다.>>고 풀이를 한 것입니다. 이번 컨테이너선 사건의 경위와 얼마나 귀신같이 딱 들어맞는 해석입니까. 그렇지만 저는 국민들의 신망을 얻어야 큰일을 할 수 있다라는 뜻으로 봐야한다고 읽혔습니다.

 

우리나라 어느 도시를 가도 헌책방이 많았을 때가 있었습니다. 그 많은 책들을 읽은 사람이 오늘날 우리나라의 발전를 이뤘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약용(1762-1836) 선생이 강진 유배지에서 아들에게 책을 읽어야 된다.’ 라고 쓴 편지는 간절함이 담겼습니다. <<우리 집안은 폐족(廢族)이 되었다. 다른 부와 권세를 갖고 있는 청족(淸族) 자녀는 옷만 깨끗하게 입고 다녀도 귀한 대접을 받는다. 우리는 그렇지 못하다. 우리가 한의원을 갈 때도 3대에 걸친 집을 찾아가듯, 공부도 몇 대를 거쳐서 계속해야 된다. 나도 공직에 있느라 책을 가까이 못 하다가 나이가 들어서 겨우 늦게야 책을 읽게 되었다. 부디 책을 읽어다오. 너희가 책을 안 읽는다면, 내가 더 살아서 책을 쓸 이유가 없다. 제발 나를 살려주는 셈치고 책을 읽어다오.>> 유배지에서 집안의 앞날을 내다보면서 아들에게 보낸 눈물겨운 호소가 문득 가슴을 치게 만듭니다.

 

우리들은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여러 가지 새로운 경험들을 하고 있습니다. 강대국들의 코로나 백신 확보 경쟁은 약육강식 그대로였습니다. 정글에서 먹고 먹히는 야만적인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줬습니다. 어려울 때 친구가 진정한 친구라고 했습니다만, 강대국들은 무작정 백신 확보만 했지 제대로 관리하지도 그다지 큰 효과도 보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집단 면역이 이루어질 때까지, 마스크를 쓰는 등, 엄격하게 공중 방역정책을 병행해야 하는데 그러지를 못 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위급한 상황을 있는 그대로 알리고 국민들의 호응을 이끌어내야 되겠는데, 아직 끝도 안 보이고, 장기간에 걸쳐 긴장이 지속되다 보니, 위험성에 대한 타성이 생긴 듯합니다. 이제 어떤 종교가 됐든 지도자가 어떻게 이끄느냐에 따라 사이비화 할 우려가 있다는 것도, 어느 종교도 그 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도 드러났습니다.

 

서울시장과 부산시장이 미투, 보궐선거를 하게 되었습니다. 1960년대 중국에서 모택동은 홍위병를 앞세워 문화혁명을 주도했었습니다. ‘문화혁명은 사실상 문화파괴 운동이었는데, 해리슨 솔즈베리(1908-1993)에 의하면, 혁명이 지속되는 동안 홍위병들의 남녀관계가 문란해지기 시작하자 혁명이 곧 끝날 것을 예견 할 수가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럴 만큼 정신적으로 해이되었다는 징표였던 것입니다. 들리는 바로는, 서울이나 부산이나, 야가 정권심판이냐, 부동산 투기냐를 두고 싸운답니다. 양비론이기는 하지만, 정권심판을 부르짖을 일도 아니고, 부동산 투기했다고 탓할 일도 못되는 상황으로 보입니다. “이해충돌 방지법이라고 부르는, 공무원들의 직접적인 이익 챙기기를 막는 기본적인 법적제도적 장치도 없이 부동산 투기는 막을 수 없고, 정권심판을 부르짖기에는 그들 자신들이 촛불혁명의 유발자들 아닙니까?

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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