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대통령 선거에 이어 지방선거에서도 ‘국민의 힘’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지방선거에서는 17곳의 광역 시도단체장 가운데 여당인 ‘국민의 힘’이 12곳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5곳에서 당선되었으니 가히 여당의 압승이었습니다. ‘더불어민주당’으로서는 2년 후인 2024년 4월에 실시될 22대 국회의원선거까지도 걱정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대통령에 이어 지역구 단체장까지 여당인 상황에서 국회의원으로 또다시 당선되기가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누구보다도 국회의원들은 선거구민들의 표심에 예민할 수밖에 없습니다. 선거구의 표심이 어렵다고 느껴진다면, 불만을 어떤 형태로든 표출하게 될 것이고, 자칫 ‘자중지란’에 빠질 수 있을 것입니다. 표면으로 내세우는 것은 선거에 패배한 지도부의 책임론이겠지만, 내심으로는 본인의 지역구에서 차기 국회의원선거가 어떻게 될 것이냐는 것일 수밖에 없습니다.
‘촛불혁명’으로 출범했던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의 쇠락은, 일부 보수언론들의 의도적인 폄하에도 그 원인이 있겠지만, 대부분은 자신들만이 옳다는 지나친 자만심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입니다. ‘지나친 자만심’을 가졌기 때문이라면 ‘더불어민주당’으로서는 억울하게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문재인 정부 초기부터 소위 ‘운동권 인사’들을 너무 많이 내세웠던 것은 ‘자만심’으로 밖에 다르게 읽힐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갓 출범한 윤석열 정부 역시, 한동훈을 법무부 장관에 임명하는 상황 등을 볼 때, 스스로 터무니가 없는 ‘자만심’에 빠져 있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이 나라를 위해서는 누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더라도 자기만 옳다고 막무가내는 식으로 밀어붙이는 방식으로는 지지와 신뢰를 얻기 힘들 것입니다. 심지어는 많은 사람의 생각과 너무 동떨어졌던 박근혜 정부는 임기를 다 채우지도 못했었지 않습니까?
우리는 자신의 삶과 직접적으로 큰 관련이 없는 일들에 너무 지나친 우려와 관심을 가진 것이 아닌가 싶을 때가 있습니다. 들리는 바에 의하면 퇴임한 문재인 대통령 사저 근처에서, 연일 확성기로 외쳐대면서, 몇몇 단체들이 집회를 열고 있다고 합니다. 집회를 열고 있는 내용이 무엇이 됐던 무언가 잘못된 것은 아닌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렇게 해결하고 싶은 민원이 있다면 그것을 자신이 사는 지역의 자치단체 의원이나 국회의원에게 청원하여 해결하는 것이 오늘날의 ‘대의민주주의’가 아닌가 싶기 때문입니다. 민주주의가 잘 작동되고 있는 국가라면 각종 선거가 끝나면 모름지기 자신들의 권한을 위임한 정치가들에게, 임기 동안에는, 역할을 맡겨야 할 것입니다. 우리 국민은, ‘대의민주주의’ 정치제도에서는, 아예 어느 특정한 정당에 들어가거나, 임기가 끝날 때마다 열리는 선거를 통해서 정치적 견해를 표현할 뿐입니다.
사람이 분수를 지키며 산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 같습니다. 무슨 일이든 자신의 능력을 돌아보고, ‘내가 무엇이 부족한지’ 나아가서, ‘내가 무엇을 어떻게 노력해야 하는지’, 자신을 돌아보면서 살아가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길도 잘 모르면서 가이드를 하겠다고 나선다면 얼마나 황당하겠습니까. 누가, 모악산도 못 올라가는 체력으로 히말라야에 오르겠다고 설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선거를 통하여 어떤 자리에 선출된 어떤 사람이 그 직종의 업무를 수행할 능력이 없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런 것이 바로 우리나라가 채택하고 있는 소위 ‘대의민주주의’의 맹점입니다. 능력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이 제발 다른 사람의 권한을 위임받아 행사하겠다고 하지 말아줬으면 좋겠습니다. 임기 동안, 그런 사람이 있다면, 잘 봐뒀다가, 다음 선거 때에는 절대로 그런 사람에게는 표를 주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사람이 우리 사회에서 꼭 어떤 관직을 가지고 어떤 역할을 맡아야만 세상을 살아가는 재미가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라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우연한 기회에 중국의 저명한 철학자 펑유란(馮友蘭 1895-1990)의 가계를 살피면서 들었던 생각입니다. 물론 펑유란 본인은 중국에서 베이징대학교를 나왔고, 미국 컬럼비아대학교에서 박사학위(1924년)를 받았으며, 갓 39세에 명저인 ‘중국철학사(1934년)’를 썼고, 평생 대학교수로서 활발하게 사회활동을 했었던 뛰어난 학자였습니다. 말년에는 ‘중국철학사 신편(1990년)’이라는 방대한 저서를 마무리했고, 그 모든 내용을, 직접 참고문헌을 일일이 들여다보지 않고, 기억력만으로 저술했답니다. 그의 집안은 시골에서 부유한 편이었는데, 아버지가 진사에 합격은 했으나 관직은 맡지 않았고, 부모 모두 책을 읽는 선비들이었답니다. 어떤 그런 생계 수단만 있다면 그렇게 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온 세상이 어지럽습니다. 2001년 9월 11일 뉴욕의 무역센터가 극단주의자들에 의하여 테러를 당한 이후 세계 최강대국 미국의 정책이 바뀌었습니다. 어떤 집단이나 국가가 미국에 대하여 테러를 가할 가능성이 있으면 선제공격도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세계가 험악해졌습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해도, 러시아와 맞서 싸우기 위해 우크라이나에 파병하는 나라는 아직 없습니다. 미국도 국력이 예전과 같지 못한 상황에서 동맹들과 역할을 나누려는 정책을 펴고 있습니다. 미국–일본–호주–인도를 ‘쿼드(quad)’, ‘미국–영국–호주–캐나다–뉴질랜드’는 ‘파이브 아이즈(five eyes)’라고 묶었습니다. 누구는 어느 칼럼에서 그런 미국의 정책을 ‘외주 패권국(outsourcing hegemon)’이라 했습니다. 우리가 어떤 삶은 꿈꾸며 살아가야 하는지가 더욱 중요한 세상이 되었습니다. 우리 모두 조용히 힘을 비축해야만 될 때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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